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 망에서 떼어 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 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짐짓 /몸 전체로 망을 밀고 가도 좋을 게다 /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아홉/ 홀로 망을 짜던 거미 마음을 엿볼 나이 /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이면우의 '거미' 중에서)
어떤 마음으로 정책을 진행해나갈까 하는 생각을 먼저 했습니다. 언제나 정책은 힘들었습니다. 현장의 풍경, 선생님과 아이들의 풍경은 늘 무너지는 담벼락과 만나는 기분이었습니다. 벼랑 끝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외로울 때도 많았습니다. 나도 현장에서 여기로 왔는데 왜 이렇게 현장과 거리가 멀어졌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것을 말하면 저것을 대답하는 경우도 많았고, 달을 보라고 하면 손가락만 가리키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모든 것이 나 스스로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한 탓이기도 하겠지만 개별적인 사람들의 마음의 길이 제각기 다르다는 것도 그 이유이기도 하겠지요.
그래서 가능하면 개별적인 마음이 지닌 풍경을 그대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진행하고자 노력도 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만들어나간 풍경조차도 단지 정책에 이용한다고 비판하는 언어를 접할 때는 정말 입을 다물어야 했습니다.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시간도 길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면우 시인의 '거미'라는 시를 만났습니다. 시인은 우연히 오솔길을 걸어가다가 거미줄에 걸린 고추잠자리를 보게 됩니다. 망에 걸린 고추잠자리는 온몸으로 발버둥을 칩니다. 거미는 느긋하게 발버둥치는 고추잠자리를 지켜보기만 합니다. 물론 그 풍경은 일상입니다. 누구나 느끼는 감정은 고추잠자리에 대한 연민이겠지요. 그것이 사람의 본질이니까요. 약육강식(弱肉强食)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약자에 대한 연민의 마음은 누구나 같을 테니까요.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리 생각하진 않겠지만, 그것은 환경이 그들을 지배했기 때문이지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인의 사고는 그러한 현상을 넘어선 지점에 존재합니다. 시인은 거기에서 우리들의 삶을 봅니다. 그러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만약 자신이 열아홉 살이었다면 고추잠자리를 거미줄에서 떼어내 날려 보내주었을 겁니다. 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몸 전체로라도 거미줄에서 고추잠자리를 떼어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시인의 나이는 이미 마흔아홉. 시인은 고추잠자리만이 아니라 거미의 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텅 빈 공간에 밤새 고통스럽게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 그 배고픔과 외로움 속에서 현재와 같은 시간을 기다린 거미의 고독을 생각하게 됩니다. 어쩌면 거미의 뱃속에는 수많은 알을 안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게 삶이 만들어가는 자연스러운 풍경입니다.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 이면우 시인의 직업은 배관공입니다. 아파트 지하실이나 공사장에서 시인은 수많은 거미줄을 보았을 겁니다. 시인이 시집을 낸 이유도 어린 아들에게 자신이 시를 쓰는 사람임을 보여주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인문학의 마음입니다. 모두가 그렇게 보는 현상에 대해서도 그것이 결코 완전한 진리가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그것.
존재하는 세상은 일종의 현상입니다. 고정된 실체입니다. 그럼에도 세상이 다른 이유는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시선은 우리가 살아온 길과 우리가 만나는 마음들이 만들어냅니다. 세상을 단순한 실체로만 이해하기는 불가능합니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그 자체가 세상의 풍경인 것입니다. 인문학에 대한 공부는 바로 그 시선을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시선의 다양성까지도 인정하는 과정입니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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