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렸다는듯이 판매업자 단속하다니, 이런 정부에 정말 세금 내고 싶지 않아
부산역 건너편 허름한 골목에 들어서면 40계단이란 곳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 실향민들이 헤어진 가족을 찾기 위해 아침마다 들르던 장소다. 관할 구청이 끊어진 기찻길도 깔아 놓고 뻥튀기하는 노인, 젖 먹이는 가난한 아낙네들의 모습을 청동상으로 재현해 놓았다. 이른바 영화 국제시장 세대로 불리는 아버지 세대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이다. 40계단이 등장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박재홍이 부른 '경상도 아가씨'다. '굳세어라 금순아'와 함께 6'25전쟁의 상처와 슬픔을 담은 상징적인 노래다. 40계단 층층대에 앉아 우는 나그네를 위로하는 경상도 아가씨와 피란살이하는 실향민의 아픔을 담았다. 노랫말에 '고향길이 틀 때까지 국제시장 거리에/ 담배 장사 하더래도 살아 보세요'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등장하는 담배장사는 '까치 담배'를 의미한다. 너무나 가난해 담배 한 갑을 사기 어렵던 시절, 한 개비를 사고팔던 그 시절의 쓰라림이 노랫말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내가 미국 유학 생활을 하면서 가장 놀란 것은 차량 운전에 관한 것들이다. 미국의 경우 자동차 운전은 그야말로 운전자 맘대로다. 좌회전, 유턴, 주차 등등 금지 표시가 따로 없으면 어떤 경우도 운전자가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운전뿐만 아니다. 하지 말라는 특별한 표시만 없으면 어떤 일이든 맘대로 할 수 있다. 물론 금지 표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위반했을 때에는 철저하게 책임을 묻는다. 이른바 네거티브 시스템(negative system)이다. 이 시스템은 원래 무역 용어로 수출입 자율화가 허용된 제도에서 특정 품목에 한해서만 수출입을 제한, 금지하는 방식이다. 지금은 사회 전반에 걸쳐 폭넓게 쓰인다. 특별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개인의 자율에 맡기는 시스템이다. 이처럼 '누구 맘대로' 할 수 있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이 같은 자율이 인류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 왔다.
우리는 어떤가? 주차를 하려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주차 허용 표지판이나 주차장을 찾게 된다. 유턴이나 좌회전을 할 경우도 허용하는 표지판이 있는지부터 살피게 된다. 오로지 허용된 경우만 제외하고 모든 것이 금지되어 있는 나라다. 교통량이 아주 뜸한 교외 길에도 유턴이나 좌회전 허용 표지가 없으면 할 수 없는 나라다. 어디 후미진 곳까지 멀리 가서 돌려 오거나 아니면 딱지 떼일 각오를 하고 맘 졸이며 방향을 튼다. 이처럼 모든 것을 관이 정하고 이를 어기면 여지없이 처벌이 등장한다. 대통령은 앞장서서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가자고 야단이지만 대한민국 관료 사회는 꿈쩍도 않고 있다.
우리의 시민의식도 이제 많이 변했다. 좁아지는 도로에서는 한 대씩 차례대로 진입한다. 수십만 명이 참가한 거리 축제도 사고 소식은 없다. 사회가 몰라볼 정도로 성숙했다는 좋은 증거가 된다. 문제는 정부다. 개인과 사회에 대한 관의 간섭은 예전 그대로다. 아직도 시민을 무지몽매한 백성쯤으로 여기는 강압적인 대책들이 하루가 다르게 튀어나온다. 일찍이 일제가 지배 전략으로 전파한 '조선 사람은 총칼로 조져야 한다'는 비하 의식이 정부 주변에는 여전히 유효한가 보다.
국가는 부유해져 가지만 개인의 삶은 하루가 다르게 팍팍해져 간다. 잊혀 가던 까치 담배, 소주 낱잔 판매가 달동네 주변에 다시 등장하고 있다. 특히 담뱃값이 껑충 뛰자 까치 담배 판매가 인기라고 한다. 그러자 당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판매업자를 영업정지 처분하겠다며 엄포를 놓는다. 까치 담배, 누군들 사고 싶어 사겠는가? 이처럼 절대 빈곤층이 사고파는 까치 담배까지 단속하겠다는 정부에 정말이지 세금 내고 싶지 않다. 그렇게 할 일이 없으면 낮잠이라도 잤으면 좋겠다.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 까치 담배 판매가 등장하는 사회는 불안하고 위험한 사회다. 담배 장사 하더라도 살아가야 하는 것이 서민의 삶이다.
김동률/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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