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 땅 구석구석 힐링 트레킹] 충주 사적지 답사 기행

비운 장수 신립 恨 서린 탄금대…중앙탑 첨탑 끝엔 피안의 세계

겨울의 고산은 장엄하다. 흰 눈을 백떡처럼 머리에 이고, 억겁의 담금질로 풍화를 이겨낸 조령산, 백화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기맥이 주흘산과 삼합으로 절경을 이룬다. 새해의 첫 여행지로 선택한 곳은 충주이다. 임경업, 신립 장군의 넋이 깃든 땅이다. 차는 연풍을 지나 임경업 장군을 모신 충주 충렬사에 도착한다. 임경업은 선조 27년(1594년), 충렬사가 있는 이곳에서 태어났다. 광해군 10년 무과에 급제, 인조 2년 이괄의 난에 공을 세우고, 병자호란 때는 의주 백마산성을 지켰다. 청의 요청으로 명을 공격하기 위해 출병했으나 도리어 명을 돕다가 청의 포로가 되었다. 심기원의 모반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사 조선으로 송환, 인조의 친국을 받다가 형리에게 장살되었다.

충렬사의 현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이다. 유물 중 추련도는 임경업 장군이 친히 사용한 보검으로 칼날이 서릿발 같다. 섬뜩하다. 칼 옆에 새겨진 28자 검명시를 읊어본다.

時呼時來否在來(때여, 때는 다시 오지 않나니)

一生一死都在筵(한번 태어나고 한번 죽는 것이 모두 여기에 있도다)

平生丈夫報國心(대장부 한평생 나라를 위한 마음뿐이니)

三尺秋蓮磨十年(석자 추련검을 십 년 동안 갈고 갈았도다)

솟구치는 기백에 두 눈이 충혈된다. 진눈깨비 내리는 허공에 추련검을 휘두른다. 대장부 한번 나고 한번 죽으리. 나라를 위해 추련검으로 적폐를 벤다. 환상이었다.

충렬사를 나와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탄금대로 향한다. 장중한 남한강의 물줄기가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탄금대는 가야의 우륵이 이곳에서 가야금을 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호젓한 산길을 따라 포장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충혼탑이 보인다. 해방 이후 순국한 충주 출신 2천833인의 넋을 추모하고자 1956년에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충혼탑이다.

'충혼탑'이라는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썼다.

충혼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은 시인 권태응 선생의 감자꽃 노래비도 만난다.

자주꽃 핀 건/ 자주 감자/ 파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 감자

자주빛 감자꽃은 어머니의 꽃, 하얀빛 감자꽃은 누이의 꽃이다.

남한강이 바라다보이는 열두대에 도착한다. 벼랑 아래로 산빛 머금고, 푸른 기다림으로 얼어가는 겨울 강이 곤혹스럽게 아름답다. 임란 때 왜군과 격전 당시 신립 장군이 열두 번 오르내리면서 활줄을 강물에 식혔다는 열두대는 비망의 언덕이다. 강가의 옛 나루로 간다. 그 옛날 정선에서 시작되는 뗏목이 여기에 닿으면 뗏목장이 섰다. 순식간에 장사가 끝나고 뗏목꾼들은 떼돈을 번다. 떼돈은 번다는 말은 여기서 생겼다. 생명력 넘치는 한의 정선아라리 노래가 남한강 허공을 타고 흩어지는 듯하다. "수수밭 삼밭을 다 지내놓고서 빤빤한 잔디밭에서 왜 이렇게 졸라, 아우라지 건너갈 때는 아우라지더니 가물재 넘어갈 때는 가물 감실하네…."

탄금대에서 보는 충주벌판이 아스라하다. 임진년, 1592년 음력 4월 28일(양력 6월 7일) 당시 선조가 가장 신임한 명장 신립은 상방검을 하사받고 출정했다. 조선군 8천은 충주성과 탄금대로 나누어 진을 쳤다. 왜군은 고니시 유키나가군의 1만8천700명이었다. 단월역 쪽에 약졸로 보이는 왜군 이천이 진을 치자. 신립은 충주성 탄금대의 양군을 모아 단숨에 적을 깨뜨리고자 주력인 기병으로 공격했다. 중앙 돌파를 두 번이나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왜군은 오다 노부나가가 나가시노 전투에서 가이의 다케다 신겐의 정예기병을 격파한 새 전술로 방어했다. 게다가 왜의 좌군은 달천강을 끼고, 우군은 야산을 끼고 좌우에서 협공했다. 왜의 후군은 충주성을 점령한 뒤 조선군의 배후로 쳐들어왔다. 사면을 포위당한 조선군은 지리멸렬 일시에 붕괴되고 말았다. 왜적이 풀을 쳐내듯 장칼을 휘둘러 마구 찍어대니 흘린 피가 들판을 적시고 물에 뜬 시체가 강을 메웠다. 탄금대로 후퇴한 신립은 열두대에서 남한강으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 그 후 시신은 찾지 못하고 여주에서 어부가 잡은 잉어의 배에서 신립의 옥관자가 나와 그날을 정해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이제 탄금대를 떠나 중앙탑을 둘러볼 시간이다. 국보 제6호인 탑평리 칠층석탑은 현재 남아있는 신라탑 중 가장 고아하다. 신라 원성왕 때(8세기경) 국토의 중앙에 조성되었다 하여 중앙탑이라 불리기도 한다. 처음 이 탑 앞에 섰을 때 나도 모르게 아아 하고 불시에 탄성을 질렀다. 1958년 가을, 소련이 스푸트니크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영화를 보았다. 거대한 로켓이 무서운 속도로 우주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나는 자신도 모르게 아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그날은 창조주나 신처럼 인간이 우주에서 자신의 별을 내려다보게 된 첫날이기도 했다. 진한 감동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스푸트니크가 과학의 힘으로 인간을 우주로 데려가는 매개체라면, 중앙탑은 인간의 마음을 싣고 피안으로 데려가는 불교적 매개체라고나 할까. 그래서 중앙탑을 보는 순간 스푸트니크가 떠올랐던 모양이다.

겨울여행은 낮달이 잠자는 충주호에서 종결된다. 겨울의 남한강을 건너지 못하는 것은 수평선에 닿지 못한 그리움이 바람에 출렁이기 때문이다.

김찬일(대구문학인트레킹회 회장)

kc12taegu@hanmail.net

*트레킹 길: 충주 충렬사~탄금대'충혼탑'열두대~중앙탑과 충주박물관

*찾아가는 길: 대구-경부고속도로-김천분기점-중부내륙고속도로-충주IC

*충주공용버스터미널(043-853-0114), 철도청(1544-7788), 시내버스 안내(043-844-4112)

*충주시 관광과: 043)850-7610, 문화관광 해설사 043)850-6713.

*주위의 볼거리: 충주누암리 고분군, 충주미륵대원지, 창동마애불, 충주청룡사보각국사탑, 충주호 선착장, 조동리 선사유적박물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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