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범안로 무료화, 시장 결단 문제다

2002년 10월 조해녕 당시 대구시장은 취임 100일을 맞아 유료화를 전제로 민자를 유치해 건설 중인 매천대교의 무료화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재정난에 허덕이던 대구시 형편에 600억원이 넘는 민자 투자비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았으나 유료도로로 인한 칠곡 주민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결단이었다. 2012년 8월 무료화된 국우터널 역시 비슷한 과정이었다. 민자 상환잔액이 300억원 가까이 남아 있었으나 김범일 당시 대구시장의 결단으로 대구시가 이를 부담하기로 하면서 무료화가 이루어졌다.

범안로 무료화를 공약으로 내건 권영진 대구시장이 최근 시의회 답변에서 "아직 스터디가 덜 되었다"고 밝히면서 범안로 무료화 문제가 다시 공론의 무대에 올랐다. 대구시의 재정난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무료화가 어렵다는 공무원들의 반대 이유도 마찬가지다. 권 시장은 어려운 이유로 사업자와의 협의, 사업권 매입을 위한 기채 발행 등을 내세웠지만 일이 되는 쪽으로 보면 필요와 방법은 명확하다.

첫째, 무료화가 공익적으로 타당한지 살펴보자. 범안로에 있는 삼덕요금소와 고모요금소에서 얻어지는 순수입은 연간 20억~30억원으로, 무료화할 경우 대구시가 지원해야 할 금액이다. 그런데 대구경북연구원이 2008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범안로 무료화로 통행량은 장차 73%까지 늘어나고, 이를 경제적으로 환산하면 연간 200억원의 가치가 있다고 한다. 대구 동부지역의 교통 혼잡이 줄어들고, 서부지역의 산업단지와 동부지역의 연결이 원활해지는 데 따른 효과다. 결국 범안로 무료화는 연간 20억~30억원의 예산으로 연 200억원의 경제성을 가진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는 셈이다.

둘째, 수성구 범물동과 달서구 상인동을 연결하는 앞산터널로와 연결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앞산터널로는 40분이 걸리던 범물과 상인 지역을 10분 만에 연결해주는 도로인데도 개통 1년이 넘도록 계획 통행량의 40%대에 그치고 있다. 공사비 4천655억원을 들인 도로가 제 기능을 못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요금 부담이다. 대구 동부와 서부지역을 오가는 주민들 입장에서는 소형차 기준 범안로 통과에 1천100원, 앞산터널로 통과에 1천400원을 내야 하니 이용을 꺼릴 수밖에 없다. 범안로가 무료화되면 앞산터널로의 통행량도 확연히 증가할 것이다. 계획통행량의 50%가 넘을 경우 대구시가 재정을 지원해야 하는 문제가 있지만 사업자와의 협의를 통해 충분히 조정할 수 있다고 본다.

셋째, 대구시는 최근의 금융 동향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은행 대출금리가 매우 낮은 현실에서 범안로 운영사업자가 사업권 인수를 위해 발행한 회사채의 이율이 4.2%나 되는 것은 과하다. 이 채권은 대구시가 재정지원금으로 원리금 지급을 보장하는 사실상의 지방채나 다름없으므로 대구은행에 사업권 인수를 제안하고 싶다. 인수대금에 상당하는 2천여억원의 범안로 사업권 인수펀드를 시민공모로 모집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자율을 1%만 낮출 수 있어도 연간 20억원의 차익을 볼 수 있는 일이니 대구시가 망설일 이유가 없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대구시민들이 권 시장을 선택한 이유는 변화와 혁신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정체된 대구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해 공무원들부터 변화의 대열로 과감하게 이끄는 혁신적인 리더를 원했기 때문이다. 대구에 대한 이해를 위해 권 시장에게 '스터디'가 필요한 건 사실이겠지만 공무원들의 논리에 갇혀 대구에 꼭 필요한 결단을 내리는 데 주저해서는 안 된다. '오로지 시민행복'을 생각하는 권 시장이라면 틀에 박혀 안주하려는 관료의 벽부터 깨야 한다. 권 시장의 결단으로 2015년이 범안로 무료화 실현의 첫해가 되어 대구시민들의 행복이 더욱 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진훈/대구 수성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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