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희망의 사다리를 놓자

영화 '국제시장'이 '1천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다. 한 영화평론가가 '정말 토가 나온다'고 독설을 퍼부었던 영화가 이토록 흥행에 성공한 비결은 뭘까. '국제시장'은 그저 1950년 6'25전쟁 이후 대한민국을 꿰뚫은 전쟁과 이별, 가난과 극복의 세월을 담담하게 그려낸 영화일 따름이다.

굳이 답하자면 주인공 '덕수'의 삶에 많은 관객들이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6'25전쟁과 1'4 후퇴 피란길에 헤어진 아버지와 여동생, 졸지에 어머니와 두 동생의 삶을 책임지게 된 어린 소년 덕수. '소년 덕수'가 아버지가 되고, 또 할아버지가 되기까지의 고단했던 삶의 여정. 그 속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대한민국 근대사가 우리 주변 그 누군가와 오버랩 되지는 않았을까.

영화 속 '덕수'의 삶은 따져보면 우리 모두의 삶이었다. 그때 그 시절 우리 주변에 수많은 '덕수'가 있었음은 말할 나위 없다. 내가 '덕수'고, 내 아버지가 '덕수'고, 내 할아버지가 '덕수'였다. 힘든 시절을 이겨내고 어엿한 중산층으로 거듭나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주인공들이다. 그러니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라는 '덕수'의 마지막 독백이 낯설지 않다.

생각은 오늘날 젊은이들이 소년 '덕수' 같은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어찌 되었을까로 이어진다. 빈곤층에서 탈피해 중산층으로 혹은 상류층으로 계층 상승의 사다리를 탈 수 있었을까. 영화 속 '덕수'처럼 나중에 '이만하면 잘 살았지 않느냐'고 고백할 수 있을까.

아쉽게도 우리 사회는 자꾸 이와는 멀어져 가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빈익빈 부익부가 갈수록 심해지고 신분 상승은 과거보다 훨씬 어렵게 됐다. 이를 조장하는 계층은 음지에서 움직이고, 우려하는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두드러진 신분 상승 수단이 고시였다. 부모의 재력이나 신분에 관계없이 그나마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실력을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 필기시험이고 대표적인 것이 고시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필기시험을 통해 인재를 뽑는 고시가 사라지고 있다. 인생 역전의 발판 노릇을 했던 사법시험이 2017년을 마지막으로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빈자리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신이 메운다. 사법시험을 폐지하고 로스쿨로 대체하는 것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로스쿨에 입학해 졸업하기까지는 학비와 생활비가 1억원이 더 든다. 웬만한 부모의 소득수준으로는 넘보기 어렵다. 어렵게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손 치더라도 혈연 지연 학연을 들이대지 않으면 괜찮은 로펌에 취직하기가 어렵다. 사시는 성적순으로 판'검사 임용을 받지만 변호사 시험은 자격시험일 따름이다.

5급 공채 시험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부터 매년 5급 공채 비율을 10%씩 줄이겠다고 했다. 직무능력과 전문성에 따라 필요한 직무별로 필요한 시기에 전문가를 뽑아 쓰라는 것이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2017년이면 5급 공채비율은 50%로 줄어든다. 말이 좋아 전문가를 뽑겠다지만 면접과 스펙으로 뽑아야 하니 이 역시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렵게 공부한 학생들보다는 국내외서 편안히 공부한 석'박사 출신들이 전문가라는 미명아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리되면 신분 상승의 사다리도 사라진다. 가뜩이나 좋은 직장은 알음알음 대물림되고 소위 '빽'없는 이들은 임시직 일용직으로 내몰리는 세상이다.

가난하고 없는 이들을 위해 희망의 불씨는 살려둬야 한다. 이들이 가난을 대물림하며 개천에서 용이 나는 희망을 앗아서는 우리 사회의 미래도 어둡다. 정부가 희망의 사다리를 놓아주지는 못할망정 걷어차는 일은 더욱이 없어야 한다. 요즘 젊은이들도 '덕수'처럼 먼 훗날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라고 말할 수 있도록 사회가 나서 도와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모두가 잘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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