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골목이 바다를 향해 머리칼 같은 달빛을 빗어내고 있었다. 아니 달이 바로 얼기빗이 있었다. 흥부의 사립문을 통하여서 골목을 빠져서 꿈꾸는 숨결들이 바다로 간다. 그 정도로 알거라.
사람이 죽으면 물이 되고 안개가 되고 비가 되고 바다에나 가는 것이 아닌것가. 우리의 골목 속의 사는 일 중에는 눈물 흘리는 일이 그야말로 많고도 옳은 일쯤 되리라. 그 눈물 흘리는 일을 저승같이 잊어버린 한밤중, 참말로 우리의 가난한 숨소리는 달이 하는 빗질에 빗어져, 눈물고인 한 바다의 반짝임이다.
(『춘향이 마음』. 1962)
앞서의 글에서, 가끔 세월이 지난 시들을 보면 우리는 그 시간의 공백과 변화를 분명하게 느끼게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1962년 이전에 만들어진 박재삼의 이 시는 지금의 것으로 읽힌다 해도 어색하지 많다. 그의 시가 가진 리듬과 늠실늠실 넘어가는 이미지는 참으로 탁월하다. 흰 달이 쓸어내리는 빗질에 드러난 날카로운 겨울밤의 길들을 나는 상상한다. 고백하자면, 그의 울음들이 조금은 빈번하게 양식화된 것이라 해도, '누님'의 눈물 고인 한 바다의 반짝임은 나의 사춘기를 따라온 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반세기를 넘긴 이 시가, 혹은 그 가난의 눈물이 왜 아직도 현재적일 수 있는지 나는 가슴이 아리다.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일까? 그러나 지금도 '가난' 앞에 반짝이는 눈물밖에 보탤 것이 없는 이 땅의 시인들, 시인의 마음을 가진 이들이 안타깝고, 그리하여 아름답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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