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배한성의 새론 새평] 무릎 꿇음의 의미

乙들의 무릎 꿇음은 굴욕과 수모, 佛 언론의 꿇지 않는 무릎은 국격

1945년 김천생. 서라벌예술대학 방송연예학과 졸업. 한국성우협회 이사장 역임
1945년 김천생. 서라벌예술대학 방송연예학과 졸업. 한국성우협회 이사장 역임

폴란드인들에 사죄 브란트 독일 총리, 그의 무릎 꿇음은 위대한 역사적 행동

중학교 2학년 때니까 오래전 일이다. 담임 선생님이 찡그린 얼굴로 교실에 들어오시더니 6, 7명의 학생 이름을 불렀다. 교탁 앞으로 오라기에 엉거주춤 나가자 출석부로 머리를 치며 꿇어앉으라고 하는 것이었다. "월사금 밀린 놈들 말로 해서 안 되니 벌을 줘야겠다"고 하시며 두 손까지 들라고 했다. 반장이었던 내가 별안간 노예나 범죄자로 전락한 것처럼 참담했다. 긴 수업의 종료종이 울리자마자 책가방 들고 뛰쳐나온 후 학교를 그만두었다. 내가 돈을 벌어 사는 형편이다 보니 힘든 일이 많았지만 무릎 꿇고 손들고… 그런 굴욕과 수모는 처음이었다.

소위 땅콩 사건의 무릎 꿇림에 이어 백화점 아르바이트생 무릎 꿇리기 소식도 들렸다. TV 뉴스 화면만 잠깐 봤으니 전후 사정은 잘 모르지만 백화점의 그 고객은 엄청나게 화난 것 같았다. 물건을 내동댕이치며 "내가 이럴 만한 사람이니까 이러는 거야"라고 소리쳤다. 백화점 직원이 말리느라 손을 잡자 어디서 감히 내 손을 잡느냐며 더 크게 소리쳤다. 내가 이럴 수 있을 만한 사람이라고 큰소리치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신분이고 어떤 특권을 갖고 있기에 저럴 수 있나 의아했다. 고객은 왕인데 왜 황녀로 모시지 않느냐는 것인가?

요즘은 갑과 을의 갈등도 조금은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손님이라고 모두 왕이 아니라 친구입니다'라고 표어처럼 써 붙인 가게도 있고 '친절은 없고 따듯한 밥이 있습니다'라는 메모를 붙여놓은 당당한 을도 있다고 한다. 고객이 정당하지 못한 요구를 하면 거부할 권리가 있으며 윤리적 의무도 있다고 하는 미국의 윤리 전문가 블루스 와인스타인의 주장도 스마트하다.

어떤 사회나 치부, 모순, 불합리 등등 문제가 있다. 치유에는 시간이 걸리고 시행착오도 있지만 개선도 되어 간다.

우리나라는 3천만 대의 CCTV가 있는 무시무시(?)한 나라라고 한다. 3천만 대의 휴대폰이 누군가의 손에 쥐어져 있기 때문이다. 범죄는 물론 사회를 불편, 부당하게 하는 언행은 여지없이 그 누군가의 휴대폰에 찍혀 온 나라에 공개되는 세상이니 어찌 무섭지 않겠는가. 자동차엔 블랙박스, 거리엔 독수리의 눈 같은 CCTV, SNS, 인터넷 천지니까 말이다.

오만하고 경박한 갑질은 오래전 중동에도 있었나 보다. 심술 사납고 오만방자한 술탄이 있었는데 그는 특히 유럽의 외교관들이 몹시 못마땅했다. 세상 누구랄 것 없이 자기에게 경배의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데 그들은 꼿꼿하게 버티고 서서 존경의 표정은커녕 목례만 까딱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기발한 꾀를 찾아냈다. 접견장으로 들어오는 복도를 한 사람만 겨우 기어들어 올 수밖에 없도록 좁은 굴로 개조했다. 며칠 후 영국대사가 첫 알현을 하는 날이었다. 거만하게 솟아있는 코는 납작해지고 무릎 꿇고 기어올 꼴새를 상상하며 낄낄거리고 있는데 대사가 힘겹게 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잠시 후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술탄이 비명을 지르며 비칠비칠대더니 기절을 했다. 술탄이 본 것은 대사의 납작코가 아니라 넓적한 볼기짝의 커다란 엉덩이였던 것이다. 몸의 방향을 거꾸로 한 대사의 작전(?)이었다.

미국에서 많은 논란 끝에 개봉한 영화 더 인터뷰나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의 충격적인 사건에도 무릎을 꿇을 것인가 말 것인가가 국제적인 핫이슈였다. 그런 경우 정부와 국민들은 우왕좌왕의 논란과 흥분으로 지지와 반대의 혼란에 빠져들기 쉬운데 두 나라는 그렇지 않았다. 단결의 질서 정연함과 결속의 신속함으로 대처 의지가 굉장히 확고하고 단호했다. 비열한 공갈 협박과 테러로 날뛰는 상대의 공격에 굴복하지 않는 의연함을 세상에 보여주었다. 그 나라의 국력보다 더 부러운 국격의 힘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경우에도 무릎을 꿇지 않는 것은 아니다. 1970년 12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폴란드를 방문한 독일 사람이 나치 정권 시절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비 앞에서 애도의 묵념을 올렸다.

잠시 후 무릎도 꿇었다. 그 사람은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였다. 무릎 꿇음이 비굴한 굴종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역사적인 행동이 될 수 있음도 보여주었다. 세계의 언론은 그 장면을 이렇게 기록했다. '무릎 꿇은 것은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

성우/서울예술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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