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의 소리와 울림] 대통령 비서실장

정확한 정보'합리적 판단 자료 제공, 성공한 대통령 뒤에는 좋은 비서실장

1951년 서울. 경기중고·서울법대·중앙대 법대 교수·학장.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독단·권력지향적일 땐 대통령 망쳐, 역사의 교훈 모두가 깨달아야 할 때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야당과 언론으로부터 사임 압력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이 올 정도라면 김기춘 실장은 이미 사임했어야 마땅하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통령을 보좌하고 또 보호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이유 여하를 떠나서 이런 상황을 초래한 데 대해 책임을 져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문제는 물론 박근혜 대통령이 김기춘 실장을 내보내지 못하는 데 있을 것이다.

대통령 비서실장에 누구를 임명하고 또 어떤 역할을 맡기는가는 전적으로 대통령의 재량이다. 역대 대통령 비서실장 중에선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 9년 동안 실장을 지낸 김정렴 씨가 역할을 잘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전두환 대통령은 7년 재임 중 비서실장을 7명이나 임명했지만 그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전 대통령은 김경원, 함병춘 같은 학자와 이범석, 강경식 같은 엘리트 관료를 비서실장으로 기용해서 자신의 부족한 면을 보충토록 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서울대 교수 출신인 노재봉 씨를 비서실장으로 기용하고 이어서 국무총리로 임명해서 주목을 샀다. 노 대통령 임기 후반기에 비서실장을 지낸 정해창 씨는 법무장관을 지낸 중량급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임기 초에 나중에 국회의장을 지내게 되는 박관용 씨를 임명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민정당 출신인 김중권 씨를 비서실장으로 기용했다. 두 김 대통령이 임명했던 비서실장 명단을 보면 역시 정치를 아는 대통령들이었음을 알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 경험이 많은 문희상 씨를 비서실장으로 임명해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우려 했다.

대통령제의 본산인 미국에선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에 비로소 대통령 비서실장이란 직책이 생겼다. 아이젠하워의 비서실장을 오래 지낸 셔먼 애담스는 주지사를 지낸 중량급이었으나 불미스러운 일로 사임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케네스 오도넬은 로버트 케네디의 친구였다. 오도넬은 케네디 대통령의 댈러스 방문을 기획한 장본인이었는데, 케네디가 댈러스에서 암살되자 죄책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케네디에 이어서 대통령이 된 존슨은 비서실장이란 직책을 두지 않았다.

닉슨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밥 할데만은 닉슨의 오랜 측근이었는데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하고 감옥에 가야만 했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도널드 럼스펠드와 딕 체니는 당시 공화당의 세대교체 혁명을 이루어낸 주역이었는데,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국방장관과 부통령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주도하게 된다. 카터 대통령은 오랜 측근인 해밀턴 조던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는데, 조던이 이끌던 조지아 출신들은 국정을 감당하기에는 함량이 부족했고 카터는 재임에 실패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조지 H. W. 부시 부통령의 참모를 지낸 제임스 베이커를 비서실장으로 임명하고 자신의 참모인 에드윈 미즈와 마이클 디버로 하여금 그를 돕도록 했다. '백악관 3인방'으로 불리는 이들은 레이건 1기를 성공으로 이끌었고, 제임스 베이커는 가장 성공적인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평가된다.

레이건 2기에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도널드 리건은 이란-콘트라 사건을 야기하는 등 문제가 많았고, 레이건은 결국 그를 해임해야만 했다. 레이건에 이어 대통령이 된 조지 H. W. 부시는 주지사를 지낸 존 수누누를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는데, 그는 정부 비행기에 친지들을 태우고 휴가를 가는 등 문제를 많이 일으켜서 사임해야 했다. 매사에 독단적이었던 수누누는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는 데 기여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8년간 재임하는 동안 4명의 비서실장을 두었는데, 두 번째 실장이던 리언 패네타는 백악관을 재정비해서 클린턴이 재선에 성공하는 데 기여했다. 조지 W. 부시는 아버지 정부에서 교통장관을 지낸 앤디 카드를 비서실장에 임명했다. 임기 7년 차를 맞는 오바마 대통령은 비서실장을 6명이나 두었으니 평균 재직기간이 고작 1년인 셈이다.

성공한 대통령에게는 대통령에게 여론을 전달하고 정확한 정보와 합리적인 판단 자료를 제공했던 좋은 비서실장이 있었다. 반면에 비서실장이 독단적이거나 권력지향적인 경우에는 대통령 자체가 실패하고 말았다. 이 같은 역사의 교훈을 우리 모두 깨달아야 한다.

중앙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