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4'에서는 1994년 서울 신촌의 모습을, '응답하라 1997'에서는 부산의 1990년대 모습을 조금씩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대구는 어떠했을까? 대구에 살고 있거나 혹은 대구에서 1990년대를 보낸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추억의 장소를 물어봤다. 추억의 장소가 동성로에만 모여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들이 10, 20대를 보낸 그곳들은 안녕한지 기자가 그들 대신 추억 찾기 여행을 다녀왔다.
◆열린공간 Q=문화평론가 박지형
"90년대 학번을 가진 사람이라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 재즈 바람, 그리고 예술 영화 찾아보기 바람을 기억할 거예요. 90년대 후반에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면서 예술 영화를 많이 보기도 했지만 그에 대한 평론과 담론 생산도 매우 활발했어요. 90년대 대구 젊은이들의 예술적 목마름을 해결해주던 공간이 바로 '열린공간 Q'였어요. 그곳에서 예술 영화도 보고, 세미나도 했죠. 지금은 없어지고 창고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그 뒤로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네요."
95학번인 문화평론가 박지형 씨는 90년대 추억의 장소로 대구 수성구 수성4가에 있었던 '열린공간 Q'를 말했다. '수성극장'이라는 작은 극장이었던 이곳은 1993년 8월 문을 연 뒤 2000년대 중반 문을 닫았다. 동성아트홀이 예술영화 전용 상영관으로 지정되기 전 열린공간 Q는 대구에서 각종 예술 영화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고, 대구 시네마테크 운동이 처음 시작된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그 자리에는 '수성구재활용센터'가 들어와 있었다. 수성구재활용센터 관계자는 "지금은 열린공간 Q가 문 닫은 지 10년이 넘었기에 열린공간 Q를 알고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경북대 인문대 건물 앞 잔디밭=이동우(35) 씨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대학생들이 주로 놀았던 곳은 뻔했죠. 당구장이나 생긴 지 얼마 안 된 PC방에서 공강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낮에도 인문대 앞 잔디밭이나 일청담 주변에서 술잔을 기울이곤 했어요. 아마 우리 나이대가 그렇게 대학교에서 낭만을 즐긴 마지막 세대가 아닌가 싶어요.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부터는 다들 취업 준비다 뭐다 해서 팍팍한 삶이 지속됐으니까요."
99학번인 이동우 씨는 90년대에 가진 추억으로 '학교 잔디밭에서 술 마시던 추억'을 꼽았다. 당시만 해도 대구경북지역 각 대학교 잔디밭은 맥주나 막걸리를 나눠 마시며 세상을 이야기하고 사랑을 이야기하던 곳이었다. 마치 '응답하라 1994'의 모습처럼 말이다. 지금 그 잔디밭은 경북대 글로벌플라자 건립과 동시에 사라져 지금은 보도블록과 조경수가 심어진 공간으로 변했다. 또 학교 잔디밭에서 술을 마시며 인생을 논하기보다는 학교 도서관에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취업을 논하는 모습이 더 많이 보일 만큼 캠퍼스 풍경도 변했다.
◆동성로 떡볶이 골목=이진아(31) 씨
"고등학생 때였으니까 동성로는 학원 오갈 때 많이 갔었어요. 봉산육거리 근처에 있는 학원 갔다가 오면서 음반가게도 가고 스티커 사진을 찍기도 했었죠. 몇몇 친구들은 콜라텍도 갔다는데, 가장 많이 갔던 곳은 '동성로 떡볶이 골목'이었어요. 아무래도 한창 분식이 당길 나이니까요. 친구들이랑 모여서 떡볶이 먹고 놀았던 기억이 제일 많이 나요."
이진아 씨는 고등학교 때 동성로를 본격적으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당시 청소년들이 자주 가는 곳이라고 해야 분식집과 영화관, 음반가게 정도였는데, 그중 떡과 어묵, 라면 사리, 쫄면 사리를 듬뿍 넣어 먹던 매콤한 동성로 떡볶이집에는 여고생들의 발길이 끊일 날이 없었다. 지금도 동성로 떡볶이 골목에는 5곳의 가게가 성업 중이다.
사실 동성로에는 먹거리를 파는 노점상이 정말 많았다. 지금 맥도날드 동성로점 앞은 '시계탑 오뎅'이라고 하면 다 알 정도로 어묵 노점상들이 동성로를 지나는 행인들의 식욕을 자극했고, 호떡, 붕어빵 등은 기본으로 있었다. 하지만 이런 노점상들은 2008년쯤 동성로 중심가에서 로데오 골목과 2'28기념공원 근처 등 외곽지로 옮겨졌다.
◆동아백화점 수성점 근처 오락실=신창재(32) 씨
"수성구에 살던 청소년들은 동성로는 너무 멀다고 잘 안 갔어요. 학원도 몰려 있고 놀거리가 몰린 곳도 지산동, 범물동 근처였어요. 그때 한창 많이 가던 곳이 동아백화점 수성점 근처 오락실이었는데, 제일 많이 한 게임은 당연히 '펌프'였죠. 최근 오락실에 갈 기회가 있어서 다시 가 봤는데, '펌프' 기계가 아직 있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했더니 몸이 그 스텝을 기억하고 발이 막 움직여지더군요. 달라진 게 있다면 예전에는 발판 뒤 안전바를 안 잡고 뛰었는데 지금은 안전바를 안 잡으면 조금 휘청거린다는 정도죠."
동아백화점 수성점 근처에 신창재 씨가 자주 갔을 법한 오락실이 딱 한 군데 남아있었다. '와우게임랜드'라는 상호의 이 오락실 구석에 신 씨가 말한 그 오락기계가 아직 남아 있었다. 원래 이름은 '펌프 잇 업'이지만 줄여서 '펌프'라고 불리던 이 리듬게임 기계는 90년대 말 일본에서 넘어온 '댄스댄스레볼루션'(DDR)과 함께 오락실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지금은 '오락실'이라는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줄어들었고, 그와 동시에 '펌프'의 위세도 많이 줄어들었다.
기자도 옛날 생각에 500원짜리 동전을 넣고 뛰어봤다. 신 씨 말대로 몸이 그 스텝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10대 때보다 스텝 옮기는 속도가 느려져서인지 예전에는 S등급을 받았던 'Com' Back'이 지금은 A나 B등급을 받는 정도의 실력이 됐다.
◆(구)TCR 뮤직스토어
이번에는 1984년생인 기자의 추억의 장소를 말해볼 차례다. 당시 90년대 말 대구에는 꽤 큰 규모의 음반가게들이 여럿 있었다. 대구백화점 맞은편에 있던 타워레코드는 쉽게 구하기 어려운 해외음반 컬렉션이 꽤 여러 종류 구비돼 있었고, 지금 2'28공원 자리에 있었던 대음뮤직프라자와 같은 작은 레코드 가게도 더러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음반가게는 TCR 뮤직스토어였다.
TCR 뮤직스토어는 현재 교보문고 뒤 커피빈 대구 중앙로점 자리에 1호점이, 현재 뉴발란스 동성로점 근처에 2호점이 있었다. 1호점에는 타워레코드보다 더 많은 청음시설이 있었고, 2호점 가게 입구에 설치된 큰 TV에서는 매일같이 최신 뮤직비디오가 나왔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나 최신곡 뮤직비디오가 나오면 동성로를 지나던 행인들은 길을 멈추고 그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게 동성로의 한 풍경이었다.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사라진 TCR뮤직스토어의 모습은 그만큼 음반을 사는 사람들이 사라진, 음악 소유의 애착을 가진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해 마음 한구석을 씁쓸하게 만든다.
이화섭 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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