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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그리면서 한티를 모르다니요

팔공산 천주교 순교 성지, 을해박해 피한 공동체 터…내년 43km 순례길 조정

한티순교성지의 모습. 매일신문DB
한티순교성지의 모습. 매일신문DB

"이곳은 순교자들이 살고 죽고 묻힌 곳입니다."

한국 천주교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 그리고 길이길이 전해지고 있는 영성을 한데 느낄 수 있는 성지가 우리 근처에 있다. 최근 인근에 40여㎞에 이르는 순례길이 조성되고 있어 세계적인 순례 명소인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 같은 천주교 순례 명소로 도약하고자 하는 곳이다. 또 머무르면서 순례'묵상'기도를 할 수 있는 피정 시설도 이미 잘 갖춰놓았다. 칠곡군 동명면 팔공산 기슭에 있는 '한티순교성지'다.

◆한국 천주교 뿌리 된 순교자들 흔적

한티는 큰 고개, 큰 재라는 뜻이다. 천혜의 은둔지인 이곳은 임진왜란 때는 주민들의 피란지로 쓰였다. 1815년부터 1827년 사이에 천주교를 탄압한 사건인 을해박해 및 정해박해가 일어나자 청송'진보'안동'상주 등에 살던 천주교 신자들이 체포돼 대구에 있는 감영에 수감됐다. 그러자 붙잡혀간 신자들의 가족과 형제들이 이곳에 와서 공소(신자 공동체)를 이루고 살기 시작했다. 숨어 살기 좋은 곳인데다 가족과 형제들이 붙잡혀 있는 대구감영 인근에 있어 연락 및 옥바라지 하기 좋은 곳이어서 였다.

한티순교성지 주변 산에는 모두 37기의 순교자 묘가 있다. 모두 1868년 한티마을에서 순교했다. 초대 공소 회장이었던 조 가롤로와 그의 가족(최 발바라, 조 아기) 묘 3기 및 서태순 베드로 묘 1기가 있다. 나머지 33기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무명 순교자의 묘이다. 이들의 삶과 신앙의 흔적은 현재 초가집 여러 채가 복원돼 있는 한티마을에서도 볼 수 있다.

이후 이곳은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초석이 됐다. 대구본당 초대 주임신부인 프랑스 선교사 김보록(로베르) 신부가 1882년 성사를 집행한 곳이다. 당시 신자 수는 39명이었고, 20명이 고백성사를, 19명이 영성체를, 3명이 세례를 받았고, 1쌍의 혼배(혼인)도 있었다. 1900년대에는 신자 수 80명 이상을 유지했다. 이후 1960년대에 대구대교구 주관으로 순례를 시작했고,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맞아 순교성지로 개발되며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40여㎞ 순례길 조성, 한국의 '산티아고 가는 길'로

한티순교성지는 '한티 가는 길'의 종착지다. 이 길은 내년 5월 준공을 목표로 칠곡군이 칠곡군 개청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조성 중이다. 칠곡군 왜관읍 가실성당에서 신나무골을 거쳐 한티순교성지를 잇는 모두 42.9㎞ 구간이다. 여영환 한티순교성지 담당사제는 "칠곡군이 조성하고 있는 '한티 가는 길'은 한티순교성지 입구에서 끝난다. 여기서 한티순교성지 내 4㎞ 거리의 오솔길을 더 걸으면서 37기의 순교자 묘를 참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이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첫 순교자인 야고보 사도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에서 끝나는 것처럼, 한티 가는 길을 거쳐 한티순교성지 내 오솔길의 순교자 묘를 모두 지나며 비로소 마음을 울리는 순례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이를 위해 한티순교성지는 37기의 묘 중 맨 위쪽에 있어 접근이 어려웠던 31~37번 순교자 묘 주변을 새로 단장했다. 특히 가장 위쪽에 있는 33번 순교자 묘 옆에는 옛적 순교자들이 생계를 위해 참나무로 숯을 굽던 가마터도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한티순교성지는 순례자를 위한 다양한 시설 및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한티피정의 집은 한 번에 180명이 숙박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성당과 강의실과 회의실, 식당 등 각종 부대시설도 마련돼 있다.

수시로 피정프로그램도 운영한다. 31일(토)부터 다음 달 1일까지 1박2일 일정으로 여영환 신부가 '고해성사와 미사의 기쁨'을 운영한다. 3월 2일(월)에는 예수마음기도 영성수련으로 유명한 권민자 수녀가 '기도와 치유'를 진행한다. 한티피정의 집 성물방에서는 다양한 성물을 판매한다. 현재 한티의 아름다운 사계를 담은 달력을 1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순례 및 피정 문의 (054) 975-5151. 홈페이지(www.hanti.or.kr).

황희진 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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