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I라는 미국 과학수사 드라마가 있다. 수년 전 한 케이블 방송이 처음 방영하면서 골수팬을 거느리게 된 이 드라마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과학적, 문화적 수준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미국의 거대한 힘에 저절로 압도당하게 된다. 이처럼 추리드라마는 대부분 그 나라의 과학이나 문화 수준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몇 년 전 일본의 근대문학 관련 학회에서 1930년대 조선에서 발표된 탐정소설의 작가 문제와 관련해서 논쟁이 빚어진 일이 있다. 논쟁의 핵심은 김상규라는 조선인이 일본어로 창작했다는 탐정소설이 과연 조선인의 작품이 맞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유는 그 작품이 탐정소설로서 너무 우수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논란은 식민지 시기 탐정소설 전문작가였던 김내성이 일본 유력 탐정소설 전문잡지에 작품을 발표했을 때에도 동일하게 나타난 적이 있다. 당시 일본 평론가들은 이 작품이 과연 조선인이 창작한 것이 맞는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나타냈던 것이다.
1930년대 일본평단과 2010년대 일본학계가 서로 다른 두 조선인 작가의 탐정소설에 대해서 이와 같은 반응을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인의 오만함, 혹은 뿌리 깊은 차별의식이라는 상투적인 대답을 한다면 우리는 이 문제의 본질에 영원히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경성제국대학이 법문학부와 의학부를 중심으로 설립된 것이 1924년, 이공학부가 만들어진 것이 1938년의 일이다. 당연히 화학 실험실이 구비된 것도 이 시점의 일이었다. 말하자면 1930년대 조선에는 과학이 발전할 여지가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과학의 발전이 이 상태이고 보니 과학과 밀접하게 연관된 탐정소설의 수준 역시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채만식의 '염마'(艶魔, 1934)는 그 하나의 사례이다. '염마'의 탐정 백영호는 백만장자로 집에 화학실험실을 갖추고 실험을 하는 것이 취미이며, 문학과 예술에 조예가 깊고, 스포츠에 능하다. 그러나 '염마'가 논리적 추리과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한 편의 진부한 모험활극으로 흐르는 바람에 백영호의 멋진 취미는 아쉽게도 진가를 발휘할 틈이 없어져 버리고 만다. 사실주의 문학의 대가였던 채만식이 왜 이런 실수를 했던 것일까. 그 답은 단순하다. 채만식이 그리려고 한 탐정소설 속의 근대적 상황이 당시의 조선에서는 '사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선 탐정소설과 관련해서 1930년대의 일본 평단과, 2010년대의 일본 학계에서 보인 반응은 불쾌하기는 하지만 상당한 개연성을 지닌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처럼 '불편한 진실'을 감당하고, 수용할 수 있는 심적 여유를 지니고 있는가이다. 특히 식민지 조선 근대문학에 대한 평가는 이 '불편한 진실'과 연관되어 있을 때가 많다. 이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식민지의 어두운 기억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정혜영 대구대 기초교육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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