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석하의 영국 여행 길라잡이]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제1코스

세인트 앤드류 코스 세계 골퍼들의 로망

스코틀랜드 가장 아름다운 성 중 하나인 블레어 성은 18세기 중엽 잉글랜드에 대한 봉기의 중심이었다.
스코틀랜드 가장 아름다운 성 중 하나인 블레어 성은 18세기 중엽 잉글랜드에 대한 봉기의 중심이었다.
영국 골프 초창기 전설의 골퍼 톰 모리스 홀이라고 불리는 세인트 앤드류 올드코스 18번 홀 그린.
영국 골프 초창기 전설의 골퍼 톰 모리스 홀이라고 불리는 세인트 앤드류 올드코스 18번 홀 그린.
새해부터
새해부터 '권석하와 떠나는 영국 여행'을 연재합니다. 필자인 권석하 씨는 봉화 출신의 재영 칼럼니스트 겸 여행작가입니다. 영남대학교 무역과 졸업 후 1980년 무역회사 주재원으로 영국 파견 후 현재까지 런던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저서로 '영국인 재발견'이 있고 번역서로'영국인 발견'이 있습니다.

여행은 천천히 해야 한다. 도보, 자전거, 버스, 기차, 자동차 여행의 순으로, 뒤로 갈수록 많은 것을 봐도 느끼는 것은 적어진다는 게 아주 단순한 여행의 진리이다. 그러나 어쩌겠나? 시간도 주머니도 여유가 없는 보통 사람들은 아쉬우나마 자동차로라도 일정 내에 다녀올 수밖에. 영국이 한국과 다른 오른쪽 운전석이라고 겁먹지 말자. 인생은 어차피 도전이지 않은가? 첫 10분의 두려움과 그다음 1시간의 긴장을 투자하면 그 보상은 그런 모험을 해 본 사람들만 안다. 자! 이제 자동차로 영국을 여행해 보자.

스코틀랜드는 에딘버러를 중심으로 북쪽을 하이랜드, 남쪽을 로우랜드라고 부른다. 내가 하이랜드 1코스라 부르는 동부해변과 내륙지방을 둘러보는 700㎞는 쉬지 않고 달리면 10시간의 거리에 불과하나 제대로 보려면 최소한 3박 4일은 되어야 하는 일정이다.

에딘버러를 떠나 첫 목적지인 세인트 앤드류까지 80㎞는 스코틀랜드 동부 해안의 진면목을 돌아볼 수 있는 길이다. 에딘버러를 출발해 하이랜드 바다 위에 걸린 인상적인 포스로드 브리지를 건너자마자 바로 오른쪽 도로 A921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 해변 길을 돌아가기 위함이다. A955-A915-A917 도로를 차례로 따라가면서 발음하기도 힘든 이상한 철자의 어촌들, 달게티 베이-아베르두어-번트 아일랜드-킹혼-커콜디-룬딘 링크스-엘리-크레일 같은 어촌을 천천히 섭렵한다. 해변마을 어디에서나 차를 세우고 동네 펍에 들러 차도 한 잔 하고, 보통 에버딘 앵구스라고 불리는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뿔 달린 소고기 등심스테이크로 점심식사도 한다. 그리곤 마을의 기념품 가게도 들르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점심식사를 위해 펍에 들렀다면 주의할 점이 있다. 동네주민들과 이야기를 시작하지 말라는 것이다. 잘못하면 잡혀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워낙 친절한 작은 어촌 사람들은 외지인 특히 동양인을 보면 심심하던 차에 잘됐다는 식으로 맥주까지 사주면서 말을 걸어 길손의 발길을 잡기 일쑤이다. 같이 신을 내서 대화를 하다 보면 결국 다음 행선지는 포기해야 하는, 런던에서는 평생을 가도 겪어 보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섬뜩하게 짙은 북해와 편안한 들판과 따뜻한 마을을 감상하면서 가다 보면 어느샌가 세인트 앤드류 마을에 도착한다. 이 조그만 마을은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왕세손 윌리엄과 그의 아내 케이트 미들턴이 만난 세인트 앤드류 대학이 있기도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코스이며 골프 규칙을 만드는 세인트 앤드류 올드코스가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세계의 모든 골퍼들은 이곳 올드코스에서 단 한 번이라도 골프 치기를 꿈꾼다. 사실 올드코스는 시골 농부의 아낙처럼 차라리 초라하고 단순하다. 유명코스가 이것밖에 안 돼(?) 하는 골퍼는 골프를 칠 자격이 없는 졸부 출신 골퍼들이다. 아름다움이 반드시 화려해야 할 필요가 없다면 올드코스가 바로 그 표징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올드코스에서 골프를 칠 수 있는 행운은 두 종류의 사람들만 가질 수 있다. 인근 호텔이 만들어 놓은 골프 프로그램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돈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들이거나, 전날 무작위 추첨에서 당첨된 엄청난 행운아들이다.

세인트 앤드류에서 올드코스 기념품이나 산 뒤 아쉬움에 못내 뒤를 돌아보며 차를 몰아 A95 도로를 타고 왼쪽으로 꺾으면 바로 하이랜드 내륙지방 특유의 들판과 구릉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금방 멜 깁슨 주연의 '브레이브 하트' 영화에서처럼 얼굴에 인디언 같은 회칠을 하고 '퀼트'라고 불리는 체크무늬 치마를 입은 하이랜드 전사들이 말을 타고 나타날 것 같은 경치이다. 이 길로 들어선 이유는 스카치위스키를 생산하는 스코틀랜드 다섯 지역 중 하나인 스페이사이드의 중심 마을 더프타운을 가기 위함이다. 보통 스페이사이드 위스키는 이 지방 토탄 냄새 때문에 다른 곳보다 향이 매캐하면서도 좀 더 달다. 세계적으로 싱글몰트 유행을 불러 일으킨 글렌피딕의 블랜딩 마스터는 "싱글몰트는 온더록의 얼음보다는 상온의 생수를 10% 정도 타서 마셔보라"고 권했다. 물론 50년 산이긴 했지만 위스키가 달다는 느낌을 처음 받아 보았다.

이제 차를 몰아 A95-A939-B9090로 들어서면 무인지대라는 말이 실감 날 만큼 인적이 없다. 셰익스피어 '맥베드'의 등장인물 코드르 백작의 성을 들렀다가, 네시라는 확인되지 않은 신비의 괴물 때문에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찾아오는 네스호를 간다. 네스호를 내려다보는 언덕에는 다 무너진 발음하기도 어려운 어르카트 성이 하나 있을 뿐인데도 하루 평균 1천 명 이상이 찾아온다.

이제 에딘버러로 돌아가는 남행 코스이다. 다시 인버네스를 거쳐 남으로 향한 A9도로로 250㎞ 거리를 간다. 중간에 하이랜드 특유의 나무 한 그루 없는 풀만의 독특한 구릉지대를 감상하면서 하얀색의 인상적인 블레어 성과, 스코틀랜드 왕들이 대관식을 했다는 스털링 성을 들를 수 있다.

다음 회에는 귀에 들리는 것이라고는 귀를 스쳐가는 바람 소리와 코에서 나온 숨소리뿐인 빙하호수와 관목만 늘어선 고원의 하이랜드 2코스를 가본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코스이다.

권석하 재영 칼럼니스트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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