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울산의 한 어린이집에서 23개월의 A군이 사망했다. A군은 집안 사정으로 6살인 형과 함께 24시간 운영하는 이곳에서 생활하던 중이었다. 당시 20대 원장부부는 A군이 피아노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A군의 몸은 끔찍한 상처투성이였다. 채 자라지 못한 고사리 손등에는 방어흔(防禦痕, 공격을 당할 때 무의식적으로 이를 막으려 하면서 생긴 상처)이 가득했고, 감긴 양쪽 눈 주변은 온통 피멍이었다. 의사의 사망 소견은 장 파열에 따른 복막염이었다.
원장부부는 구속, 불구속 기소됐고, 검찰은 상해치사죄의 최저형량인 징역 3년을 각각 구형했다. 법원은 업무상 과실치사죄를 적용해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당시 검찰 구형량과 법원 판결에 대한 불복 청원에 수만 명이 서명했지만, A군 사건은 세월이 흐르면서 잊혔다.
7년여가 지나 이 사건은 영안실에서 찍은 A군의 마지막 모습과 함께 SNS를 통해 재조명되고 있다. 최근 인천의 한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가 네 살배기 여자 아이의 머리를 후려치는 사건이 벌어져 사회문제가 된 까닭이다.
심하게 맞아본 기억이 있는 사람은 그 순간이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것인지 잘 안다. 맞지 않을 수만 있다면 어떤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던 그 기억은, 어떤 이에게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는다. 인천의 보육교사는 한 번의 폭행이라고 했지만, 맞아본 사람은 또한 안다. 네 살짜리가 느닷없는 폭행에 2, 3m를 나가떨어지면서도 금방 일어서 교사 앞으로 돌아오려고 버둥거리는 모습에서, 제멋대로 놀던 아이들이 약속이나 한 듯 한쪽 구석에 열을 지어 무릎을 꿇은 모습에서 그 폭행은 한 번이 아니라 여기에 열과 백을 곱한 숫자였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사건이 불거진 사흘 만에 정부는 대책을 내놨다. 어느 때보다 대처가 빨랐던 것은 정부의 기민함이 아니라 수없는 반복학습 효과 때문이다. 그러니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식의 재탕인 것은 새삼스럽지가 않다. 대표적인 것이 단골 메뉴인 어린이집 내 CCTV 의무 설치다.
2005년 이후 4번의 법안발의가 있었지만, 3건은 폐기되고, 한 건만 소위에 계류 중이다.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인권침해라는 보육교사의 반발과 복지부의 예산 부족 때문이다. 그러나 전국 5만2천여 곳의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아우르는 관련 단체의 강력한 항의와 반발 때문이라는 것이 사실에 훨씬 가깝다.
법은 양심과 도덕에 따라 당연히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강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린이에 대한 폭력은 언제, 어디서든 용납할 수 없는 추악한 범죄다. CCTV 의무 설치는 보육교사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잠재적인 희생자로 만들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대책이다. 2005년에 이 법을 만들었다면 A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모두가 가해자인 셈이다.
초등학생의 기상천외한 대답이라는 우스개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할 수 없는 경우를 한 가지만 써라'라는 6학년 사회문제에 한 학생은 '대통령이 바른 정치를 하지 못했을 때'라고 썼다. 한낱 우스개지만, 대통령이 반드시 눈여겨봐야 할 정답이 있다.
아이를 돌봐달라고 맡긴 곳이 오히려 아이를 폭행하고, 죽음으로까지 내모는데도 이를 제대로 막지 못하는 것이 대통령의 잘못하는 정치 때문이라고 한다면 억지인가? 청와대와 정부의 그 숱한 회의 때, 대통령이 가끔 이 문제를 거론하며, 관계부처의 철저한 관리 감독을 압박해달라면 무리한 것인가? 이 요구가 억지인지, 무리인지 따질 필요는 없다. 바로 그 중심에 '훈육'이라는 탈을 쓴 명백한 폭력에 희생당하는 '우리 아이'가 있어서다.
CCTV 의무 설치 등 징벌성 대책은 실효를 거두기 어렵고, 인권 등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답한다. 빈대를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워서는 안 되지만, 한 번쯤은 초가삼간을 태우는 어리석음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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