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와 크리켓은 경기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대표적인 종목이다. 1981년 미국 마이너리그 야구에서 연장 33회 말까지 8시간 7분이라는 최장 기록이 나왔다. 1984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밀워키 브루어스의 메이저 경기도 연장 25회, 8시간 6분이라는 신기록을 썼다. 승부가 나야 끝나는 미국 야구 규칙 때문이다.
야구와 게임 틀이 비슷한 크리켓 경기 시간도 만만찮다. 크리켓 경기 중 국가대표 간 게임인 '테스트'(Test) 매치의 경우 무려 5일간 진행된다. 'ODI'(One Day International) 매치는 경기 제한 시간이 하루, 인기있는 'T20'(Twenty 20) 매치는 3시간이다.
야구와 크리켓에서 경기 시간을 좌우하는 최대 변수 중 하나가 '아웃'이다. 공격자가 아웃되지 않으면 무한정 경기를 계속할 수 있고 그 반대도 성립된다. 1845년 야구 규칙이 처음 만들어질 당시 3번 헛스윙하지 않는 한 아웃은 없었다. 파울은 스트라이크로 계산되지 않았고, 스트라이크존이 없으니 루킹 삼진도 없었다. 치기 좋은 공이 올 때까지 무한정 기다리면 됐다.
이리 경기가 길어진 이유는 근대 스포츠 태동기 무렵 스포츠 게임이 부유층의 취미이자 사교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여유 있는 사람에게 시간은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1857년 21점 선취제에서 9이닝제로, 9개이던 베이스 온 볼스(포볼)가 4개로 줄면서 경기 시간은 크게 줄었고, 유료 관중제 도입으로 점차 시간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승부도 길어지면 흠이 되는 시대적 흐름 때문이다.
요즘 공직 사회에서 원스트라이크 아웃, 2진 아웃이라는 용어가 심심찮게 들린다. 기획재정부가 내년부터 302개 공기업'공공기관 임직원 업무평가에서 2회 연속 최하위 등급을 받으면 퇴출시키는 '2진 아웃제'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기계연구원 등 몇몇 정부 출연 연구소는 이미 10년 전부터 삼진아웃제를 시행하고 있고, 서울시 등 일부 지자체는 공금 횡령이나 금품'향응 요구 등 비리로 '정직' 이상의 징계를 한 차례만 받아도 곧장 해임하는 '1진 아웃제'를 시행하고 있다.
문제는 룰은 엄한데 실제 퇴출은 없다는 점이다. 크리켓만 해도 타자가 아웃되면 그날 타석에 다시 들어설 수 없는데 공직에는 룰만 있고 아웃은 없다. 노조가 반대하면 제도 도입도 허사다. 이런 황당한 경기를 봐야 하는 국민 심정은 오죽할까 싶다. 입장료 돌려달라는 소리가 안 나오려나.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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