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발전의 근간에는 무엇이 있을까.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겠지만, 가장 밑바닥에는 사람과 교육이라는 기본이 항상 존재한다. 사상 최대의 경기불황을 맞고 있는 포항 역시 가장 원동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현재 흔들리는 현 포항지역 대학들을 보면 결코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상아탑의 위상을 되찾고, 지역 발전의 도약력을 얻을 수 있는 상생 방안은 없는 것일까.
◆얼룩진 상아탑
이달 13일 포항 선린대학 본관 앞에는 29명의 교수들이 모였다. 19개 학과 전임교수 50명 중 절반이 넘는 숫자다. 모두 현 전일평 총장과 대학 정책을 규탄하는 피켓을 든 모습이었다.
자신들을 '선린대학의 발전을 기원하는 교수 일동'이라 밝힌 이들은 대학 납품업체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입찰을 방해한 혐의(업무상 횡령)로 1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전 총장의 퇴임을 강력히 촉구했다.
포항지역 대학들의 경우 총장으로 기인한 악재들이 많다. 먼저 선린대학 전일평(63) 총장의 경우 지난해 10월 대학 신축공사 과정에서 시공업체 선정 대가로 3억원을 받아 챙기고, 납품업체를 통해 비자금 1억5천여만원을 조성한 혐의 등으로 1심 판결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해당 사건은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포항의 또 다른 전문대학인 포항대학도 지난해 1월 하민영(72) 전 총장이 국가보조금 횡령 및 학생 장사 등의 혐의로 징역 4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해당 사건은 특히, 학생들을 보내주는 대가로 고등학교 3학년 담임교사들에게 돈을 건네던 소위 '학생 장사' 관례를 밝혀낸 사건으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하 전 총장은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포항대학은 해당 문제의 책임을 물어 총장을 교체한 상태다.
비리 사건은 아니지만, 포스텍(옛 포항공대)도 김용민 현 총장의 연임이 유보되면서 뒤숭숭한 상황이다. 올해 8월 임기가 끝나는 김 총장에 대해 교수, 교직원 등 대학 구성원 다수가 연임을 반대하며 성명을 발표하는 등 집단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텍 학교법인은 총장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총장 후보자를 3~5명(현 총장 포함) 압축해 새 총장을 선임할 예정이다.
대학의 비리와 혼돈은 개인보다는 대학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한 점이 더 크다. 갈수록 학생 인구가 줄어들면서 대학들의 충원율이 힘겨워지고, 부족해진 학생 수를 충당하기 위해 무리한 모집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무리한 활동은 지금처럼 비리 등 잡음을 발생시키고, 다시 정부의 구조개혁 아래 칼바람을 맞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지금은 학교의 발전보다는 생존 모색에 급급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포항시의 한 공무원은 "포항에는 개별적으로 지역발전을 함께 고민하는 '교수'는 있어도 함께 고민하는 '대학'은 없다"며 "솔직히 포스텍은 수도권만 바라보는 대학이고, 한동대는 기독교 재단의 특성 때문인지 폐쇄성이 강하다. 지역과 함께 하려면 대학 구성원들의 인식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했다.
◆동반 추락하는 포항지역
상아탑의 추락과 지역의 위기 상황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 포항지역 대학들의 이미지 실추는 포항 자체의 이미지도 함께 하락시킨다. 또한 대학을 중심으로 진행돼야 할 연구 역시 단순 실적 쌓기에 치중되면서 지역 연계 및 공헌도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지역 사회단체와 전문가들은 대학이 지역과의 연계 고리를 다시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글로벌대학' 혹은 '특성화대학'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앞세우면서도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요구치를 무시한다면 정작 지역대학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포항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휘 집행위원장은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고 전제한 후 "대학이 본연의 자세로 기초학문을 발전시키고, 이를 실용화시킬 수 있는 전문화 기관을 만들어 지역 밀착형 성장동력을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위원장은 "대학이 지역과 상생할 수 있는 전문화 과정에 실패하면 지역민의 외면 속에 운영이 어려워지고 다시 구조조정의 칼날을 받아들이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지금처럼 대학이 단순한 지역사회 문제에 대한 상담이나 조력자로 행세해온, 안일한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지역에 좀 더 밀착해 생생한 동향을 연구하고 실정에 맞는 연구개발 성과를 내놓는 등 공급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여기에는 '지금껏 지역 대학들이 정작 포항에 필요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적극적으로 지역과 함께 동반성장하기 위해 노력해왔는가' 하는 뼈아픈 반성의 의미도 함께 갖고 있다.
물론 대학들도 불만은 있다. 아무리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고, 다양한 벤처 아이템을 내놓아도 정작 포항이 이를 수용할 인프라를 준비해 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지금껏 지역대학이 일궈놓은 인재들과 각종 아이템들이 포항의 인프라를 감안하지 않은 '탁자 속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박승대 포항지역발전협의회장은 "포항에는 포스텍과 한동대 등 국내 굴지의 대학들과 포항대학, 선린대학 등 전문 특성화대학들이 있지만, 이들이 과연 포항지역에 얼마만큼 기여를 해왔는지는 의문이다"며 "지금 포항에서 무엇이 만들어지고 있고, 무엇이 부족한지 대학 스스로가 제대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지역의 덩치가 커지면 당연히 해당 대학을 찾는 발걸음도 많아진다. 서로 머리를 마주하고 함께 고민할 때 양측의 문제를 해결할 해법이 떠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 박승혁 기자 psh@msnet.co.kr 포항 신동우 기자 sdw@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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