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는 불타는 청춘, 그 끝날 것 같지 않던 환희에 찬 미래와 사랑에 대한 송가이다. 타오르기만 하던 열정과 치기에 '안녕'이라고 말하며, 삶에 대한 기대와 희망,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살아가는 시간들에 매일 이별을 고하며 조금씩 현실을 자각해 가는 것의 애잔함. 이는 마치 외사랑 끝의 좌절을 눈물로 곱씹는 한 청년의 쓸쓸한 자기인식과도 닮아있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부르며 보낸 나의 30대는 그래서 가슴보다는 두 다리를 더 단단하게 현실 속에 뿌리 박고자 하였는지도 모른다. 매일매일 과거의 그 무엇과 이별하며 살고 있지만, 더 이상 낙관적이지만은 않은 미래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잠시 감상 따위는 접어두자고….
하지만 서른 살의 그 가슴 시린 날들이 지난 후 더 당당히 깨닫게 된 것은 하나. 서른 살의 영혼이 짊어지고 가기에 그 미래는 너무나 불확실하고도 무겁기만 하다는 것. 그래서 더 이상 즐겁지 않은 미래보다는 완전히 이별하지 못한 과거와의 조우가 더 반갑다는 것. 어쩌면 지금 유행처럼 번지는 1990년대로의 복고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쓴 소주를 들이켜며 마주하는 새벽의 안개처럼, 마흔을 살아간다는 것은 서른 살 때의 허망함과는 다른 너무나 치열하면서도 비현실적인 일종의 추상적 풍경을 살아낸다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경제적 불안함에서 기인하는 바가 가장 클 것인데, 얼마 전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경제적 행복지수' 조사 결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낮은 연령층 역시 40대 남성이라고 한다.
2000년대에 마흔 살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래서 1900년대의 서른 살을 살아가는 것보다도 더 애잔하다. 아파트 대출금에 아이들의 교육 비용, 한 해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와 불안한 노후 전망, 저축할 여력이 점점 상실되어 가는 것이 안타까워 맞벌이라도 하지만 또다시 연로한 부모에 대한 걱정과 진급에 대한 불안으로 하루하루를 동분서주해야만 하는 나이. 한 시인은 마흔다섯을 '귀신이 와 서는 것이 보이는 나이'라고 했다. '참대밭같이 겨울 마늘 냄새를 풍기며 처녀 귀신들이 돌아와 서는 것이 보이는 나이. 귀신을 기를 만큼 지긋하지는 못해도 처녀 귀신하고도 상면은 되는 나이.' 시인 서정주가 이야기한 마흔다섯은 아마도 두려움 없이 세상과 조우하며 세상의 비밀을 조금씩 깨달아가는 나이였던가 보다.
그 나이에 내가 와 있다. 하지만 지금부터 내가 볼 세상의 비밀은 무엇일까?
하이쿠의 구절처럼, 인생을 방랑하며 비록 병은 들었지만 꿈만은 마른 들판을 헤매어 다니게끔 풀어놓고 싶은 심정. 이것이 어찌 나 혼자만의 은밀한 욕구일 수 있겠나.-'방랑에 병들어 꿈은 마른 들판을 헤매고 돈다'('마츠오 바쇼오'의 하이쿠)
이성호 문화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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