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일의 생각] 졸업식, 부모님을 모시자

초등학교 때는 물론이고 중고등학교 때까지도 졸업식에는 어머니와 할머니가 와주셨던 것 같다. 할머니는 꼭 오셔서 등을 쓰다듬어주시고 담임 선생님을 만나 인사를 드리곤 하셨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중학생만 되어도 부모님들이 졸업식에 못 오시게 하는 경우가 있는 모양이다. 초등학교 졸업 때까진 엄마 아빠가 꽃다발도 사주고 사진도 찍어주곤 했던 아이들인데 말이다. 졸업식 참석을 허락(?)받은 부모들도 곧 찬밥 신세가 되기 일쑤라고 한다. 식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자기네들끼리 노래방이나 시내로 놀러 간다고 부모들을 그 자리에서 돌려보내 버린다는 것이다.

직장도 하루 쉬고, 혹은 상사 눈치 봐가며 어렵게 빠져나와 축하해준 부모들은 약간은 허탈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자식 손에 지폐 몇 장을 쥐여주고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내 대학 졸업식 날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집에선 아무도 오지 않으셨던 것 같다. 아마 못 오시게 내가 미리 선포를 했었던 게 아닌가 한다. 딱히 상을 받는 것도 아니고 별 할 일도 없는데 어른들을 오시게 하기가 싫었던 것일까.

그런데 같은 날 함께 졸업한 여자친구에게는 부모님뿐만 아니라 큰오빠 부부,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이던 여동생까지 온 가족이 거의 총출동을 했었다. 오전 내내 그분들과 사진도 찍고 시간을 보냈다. 학교 앞 다방에 가서 차도 마셨던 것 같다. 그러곤 끝. 그 자리에서 식구들을 쫓아내듯 보내버렸다. 둘이서 다른 모임에 가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멀리서 두 시간씩이나 차를 타고 오신 분들이었는데 학교 앞에서 그냥 돌아가시도록 했다. 어른들은 그렇게 돌아가시고 우리 두 사람은 선배들과의 모임을 위해 시내로 가서 늦게까지 놀았다. 어른들이 딸의 졸업식에 오셔서 딱히 할 일이야 있었겠는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섭섭함과 허전함이 없지 않았을 것 같다.

이제 어른이 되고 자식을 키우다 보니 예전 그때의 생각이 한 번씩 난다. 대학을 졸업할 나이가 되었으면 어느 정도 '시근'이 들기도 했을 텐데, 멀리서 자식 보러 오신 분들을 그렇게 내려가시게 해버렸으니 참 한심하고 어렸었다.

내 자식이 대학을 졸업할 때는 꼭 그 자리에 함께하고 싶다. 그래서 함께 축하해주고 하루라도 함께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 자식이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더라도 그날만은 부모인 우리에게 양보해주기를 요구하고 싶다. 마음먹은 대로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식이 끝나자마자 그 자리에서 그냥 돌아오는 것은 좀 서글프지 않겠는가. 내 딸아이가 자기 남친이랑 시간을 보낼 거라며 '엄마 아빠 집에 먼저 가세요' 하면 은근히 약이 오를 것도 같다. 아마 말은 못하겠지만.

다음 달이면 수많은 자식들이 졸업식장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예비 졸업생들이여, 오늘 저녁 부모님께 이렇게 졸라보자. "엄마 아빠 이번 제 졸업식에 꼭 오셔야 해요~? 끝나고 나서 우리 가족끼리 맛있는 짜장면도 먹고 노래방도 가요, 예?"

홍헌득 특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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