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교통수단도 서민들에겐 경제적 고통이다. 값싼 교통수단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상대적으로 고가(高價)인 KTX(고속철도)나 우등 고속버스는 증가하는 반면, 저렴한 요금의 새마을'무궁화호 열차와 일반 고속버스는 감소하거나 아예 사라지고 있다. 한 푼이 아쉽지만 선택권은 없다. 한정된 운행횟수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KTX나 우등 고속버스를 이용하고 있다.
◆대구 가는 길이 서글프다
경북 영주시에 사는 60대 안분호 씨의 한 달 교통비는 8만~9만원이다. 이 중 90% 이상이 대구와 영주를 오갈 때 쓰는 교통비다. 안 씨는 호흡기 질환 치료를 위해 3년 전부터 한 달에 두 차례씩 대구를 찾고 있다. 안 씨의 주요 이동 수단은 우등 고속버스. 대구~영주 우등 고속버스 요금은 1만2천600원이다. 택시비에 왕복 고속버스 이용료를 더하면 안 씨가 대구를 한 번 찾는 데는 대략 3만5천원이 필요하다. 안 씨는 "병원에 약만 받으러 가는 날에는 병원비보다 교통비가 더 많이 든다. 대구에 갈 때마다 교통비 부담에 허리가 휘청거린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렴한 일반 고속버스(9천원)와 경로우대가 가능한 무궁화호 열차(경로우대 적용 7천원)가 있지만, 안 씨에겐 그다지 쓸모가 없다. 운행횟수가 많지 않아 탑승시각을 맞추기가 어렵다. 고속버스의 경우 대구~영주 하루 운행횟수는 일반 4회, 우등 17회다. 이 운행표대로라면 안 씨가 이용할 수 있는 일반 고속버스는 현재 없다. 하루에 병원 검사를 다 받고 집으로 돌아가려면 오전 9시쯤에는 병원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궁화호 열차도 마찬가지. 분 단위로 촘촘하게 배차된 KTX와 달리 무궁화호는 대부분 시간 단위로 띄엄띄엄 배차되어 있다. 안 씨가 영주에서 무궁화호를 이용하려면 오전 6시 이전에 출발하는 첫차를 탈 수밖에 없다. 다음 열차는 오전 9시 54분에 출발한다. "병원을 오가는 3년 동안 길에 버린 돈만 수백만원입니다. 영주와 대구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기 때문에 저렴한 일반 고속버스나 무궁화호를 이용하고 싶지만 방법이 없어요."
◆없어서 못 타는 무궁화, 비싸서 못 타는 KTX
열차든 고속버스든 운행배차 결정기준은 결국 '시장논리'다. 흑자를 보는 쪽은 늘리고, 적자를 보는 쪽은 줄인다. 지난해 발표된 국회 국토교통위 보고서에 실린 '2012년 운송사업별 영업손익 현황'에 따르면 KTX는 5천136억원의 흑자를, 무궁화호 등 일반열차는 4천537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 보고서에서 코레일은 운송사업 수익성 제고 방안의 하나로 '수익성이 낮은 일반열차 운행 축소'를 제시했다. 2012년 하루 395회 운행되던 일반열차를 2018년에는 하루 275회로 줄이겠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반면 KTX는 서비스 지역을 확대하고 속도 경쟁력을 높여 신규 수요 창출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코레일 입장에서 '만성적자'를 가져오는 무궁화호 등 일반 열차는 감축대상일 뿐이다. 이는 동대구~서울 구간 열차 운행횟수를 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주말 기준으로 지난해 동대구~서울 구간 KTX는 180회, 무궁화호는 42회 운영됐다. 지난 2011년에 비해 KTX는 26회 늘어난 반면, 무궁화호는 2회 줄어든 수치다.
무궁화호 이용객이 적은 것도 아니다. 무궁화호 이용객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12년 철도서비스 평가 결과'에 따르면 무궁화호는 지난 2010년 대비 주말 승객 수가 3천800만 명 증가했다. 하지만 주말 열차 운행횟수는 2010년보다 2012년에 21회 줄었다. 같은 기간 KTX 주말 이용객은 1억1천100만 명이 늘었고, 덩달아 열차 운행횟수도 56회 늘어났다.
이 때문에 무궁화호는 갈수록 혼잡해져 승객 불편이 늘어나고 있다. 위 보고서에 따르면 2년 사이 무궁화호는 1㎡ 공간의 입석 승객 수가 0.81명에서 2.2명으로 증가했다. 다른 사람이 지날 때 불편을 느끼는 입석 밀도는 1㎡당 1.4명 이상이다.
KTX 위주 배차는 고령자 등 사회적 약자 이용객의 지갑을 더욱 얇게 만들고 있다. 서울~대구를 오가는 주말부부인 박경민(57) 씨는 무궁화호 표가 매진돼 2배나 비싼 KTX를 이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박 씨는 "주말 퇴근 시간 같은 '황금시간대' 무궁화호 표는 하루 전에 좌석예매가 끝나기 때문에 미리 온라인으로 예매를 해둬야 한다"며 "혁신도시가 생기면서 무궁화호 표 구하기가 예전보다 더 어려워진 것 같다. 표가 없어서 입석을 이용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보이지 않는 손'에 따라 움직이는 고속버스
운임료가 비싼 교통수단 중심으로 배차 정책을 세우는 건 고속버스도 똑같다. 업계에 따르면 노선별 일반과 우등 고속버스 배차 비율은 보통 3대 7로 유지된다. 8개 고속버스 회사가 가입된 전국고속버스운송사업조합의 경우 지난해 12월 현재 일반 고속버스는 656대, 우등 고속버스는 1천753대가 운영되고 있다. 저렴한 요금으로 고속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10번에 3번꼴이라는 셈. 일반과 우등 고속버스 운임은 많게는 8천~9천원 차이가 난다.
이에 대해 고속버스 업체들은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우선 고속버스는 정부지원 없이 순수 민간업체에서 운영하고 있다. 시내버스나 시외버스, 일반 기차처럼 부가가치세 면제 대상에 속하지도 않는다. 고속버스 업체 입장에서는 굳이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인기 노선에 수익이 덜 나는 일반 고속버스를 배차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전국고속버스운송사업조합 관계자는 "노선별 수요 등 다양한 이유에 따라 배차를 결정한다. 장거리일수록 좌석이 편한 우등 고속버스를 찾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우등이 일반보다 많다"며 "고속버스도 KTX에 걸맞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고급화된 우등 고속버스를 늘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고속버스 이용객 입장에서는 우등 고속버스 위주 배차가 야속할 수밖에 없다. 일반 고속버스의 경우 대구~서울 기준 요금이 1만7천원으로, 기차보다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아예 일반 고속버스가 폐지되고 우등 고속버스만 남는 경우도 있다. 직장인 정보민(34) 씨는 "예전에는 고향인 마산에 갈 때 일반 고속버스를 타고 갔었는데 이제는 선택할 여지도 없이 우등 고속버스만 이용하게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우등 고속버스가 과도하게 늘어나 우려스러운 것은 사실"이라며 "노선마다 일반과 우등 고속버스 비율을 최소 3대 7로 유지하도록 고속버스 조합 측에 계속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권성훈 기자 cdrom@msnet.co.kr 신선화 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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