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샤를리다."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을 보고 많은 유럽인들이 이렇게 외쳤다. 이 목소리의 주인들은 자신을 테러의 희생자들과 동일시했다. 하지만 테러의 심리적 충격이 어느 정도 가시자, 한쪽에서 조심스레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 이 목소리의 주인들은 자신을 희생자들과 동일시하기를 거부한다. 테러는 비난받아 마땅하나, '샤를리 에브도' 역시 문제라는 것이다.
이는 무슬림들만의 생각이 아니다.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이미 프랑스에서도 '샤를리 에브도'가 쓸데없이 도발을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었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필리핀 방문길에 기자회견을 통해 타 종교를 모욕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하여 파리의 테러 사건은 유럽인들에게 그 어느 쪽으로도 대답하기 어려운 실존적 물음을 남겼다. '나는 샤를리인가? 아닌가?'
샤를리 에브도는 테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 위협에 굴하지 않았다. 당연하다. 프랑스는 대혁명의 나라답게 강력한 '반(反)성직자주의'의 전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라는 단두대 위에서는 위대한 신이라도 풍자의 칼날 아래 목을 드리워야 한다. 반면, 이슬람 문화에서 '풍자'는 낯선 것이다. 풍자는 숭고함을 비웃음으로써 그것의 권력을 해체하는 기법이다. 그 칼날을 신이나 예언자에 들이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이 샤를리라 생각하든, 샤를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든, 풍자에 폭력으로 대항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대부분의 무슬림도 비록 만평이 눈에 거슬려도 그것을 폭력으로 막는 데에는 반대한다. 문제는 극단주의자들이다. 그 젊은이들은 왜 고작 만평 몇 컷에 자기들의 목숨까지 버려가며 분개해야 했을까? 아마도 그 만평을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자 위협이라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정체성(identity)이란 자신을 어떤 슈퍼에고와 동일시(identify)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테러를 일으킨 젊은이들이 모두 프랑스 국적자였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왜 자신을 프랑스라는 국가가 아니라, 이슬람이라는 종교와 동일시했을까? 물론 이민자의 자손으로 프랑스 사회에 제대로 동화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자신이 자라난 나라와 동일시할 수 없게 되자, 그 대안으로 자신들을 제 나라 밖의 다른 집단과 동일시하게 된 것이다.
동일시의 대상이 되는 그 슈퍼에고를 정신분석학에서는 '대문자 아버지'(le Père)라 부른다. 나를 모욕하는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내 아버지를 모욕하는 것은 참을 수 없지 않은가. 젊은이들은 문제의 만평을 보며 소문자 아버지(le père)가 모욕당하는 것 이상의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다. 소문자 아버지는 내게 육체를 주었지만, 대문자 아버지 무하마드는 내게 영혼을 주었기 때문이다. 영혼을 보존할 수 있다면 육체는 기꺼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북한이 대북전단이나 3류영화 따위에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북한 사람들에게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은 자기들에게 이 세상에 존재할 의미를 부여해 주는 대문자 아버지들이기 때문이다. 이게 어디 북한만의 일인가? 최근에 개봉한 어느 영화도 비슷한 소동을 일으켰다. 어느 평론가가 그 영화를 비판하자 보수매체와 보수우익들이 일제히 분노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아니, 영화평까지도 국론통일을 해야 하나?
그들은 왜 그렇게 분노해야 했을까? 그 영화에 나오는 소문자 아버지 위에 박정희라는 대문자 아버지가 오버랩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리라. 물론 감독은 그 영화가 자신의 소문자 아버지에 대한 헌사이며, 또 그렇게 받아들여지도록 일부러 대문자 아버지의 모습을 지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흔적이 적어도 저 무지막지하게 무딘 감성들의 눈에까지 띌 만큼은 뚜렷했나 보다. 그렇게 대문자 아버지는 영화 속에서 디페랑스, 즉 부재하면서 존재하는 어떤 것이 되었다. 베냐민이 말한 부정신학, 즉 신 없는 신학이라고 할까?
진중권 동양대 교수
1963년 서울생. 서울대 미학과. 독일 베를린 자우대학 철학과 박사 수료. 중앙대 겸임교수. 카이스트 겸직교수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포항 찾은 한동훈 "박정희 때처럼 과학개발 100개년 계획 세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