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강남 1970

대한민국 1%의 땅 강남을 탐하다

#강남 개발 이권다툼에 뛰어든 두 남자의 화려한 액션 느와르…70년대 정권 '흑역사' 파헤쳐

5천만 한국인 중 1천만 명이 서울에 살고, 그중 인구 57만 명이 강남에 산다. 대한민국 1%가 거주하는 곳 강남은 마치 한국의 모든 것인 양, 선망과 질시의 대상이다. '강남 1970'은 수십 년간 한국을 떠돌던 강남 콤플렉스의 기원을 보여주는 영화다. 단순한 액션 갱스터 영화가 아니다. 개발독재시대를 살며 역사적 소용돌이에 이리저리 맞추어 살아야 했던 민초의 희망과 절망의 드라마이다.

시인에서 영화감독으로 변신하여 갱스터 거리 3부작을 완성시키기까지 다채로운 영화를 선보여 왔던 유하 감독, 젊은 배우 중 드물게도 진한 남성적 매력으로 성공한 한류스타 이민호, 미남 스타에서 개성파 연기자로 거듭나고 있는 김래원 등 세 남자의 결합만으로도 영화는 시선을 사로잡는다. 거기에다 요즘 미디어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복고 트렌드와 남자 이야기, 현재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시대인 유신시대에 대한 조명, 그리고 강남이 합쳐지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만하다.

때는 1960년대 후반, 고아로 넝마주이 생활을 하며 친형제처럼 살던 종대(이민호)와 용기(김래원)는 유일한 안식처였던 강남 무허가촌의 작은 판자촌마저 빼앗긴다. 이어서 두 사람은 건달들이 개입된 야당 전당대회 훼방 작전에 얽히게 되고, 둘은 그곳에서 헤어진다. 몇 년 후, 종대는 조직 두목 출신 길수(정진영)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지고, 잘 살고자 하는 꿈을 위해 건달 생활을 시작한다. 그는 정보와 권력의 수뇌부에 끈이 닿아있는 복부인 민마담(김지수)과 함께 강남 개발의 이권다툼에 뛰어들고, 그러는 가운데 명동파 중간보스가 된 용기와 재회한다.

1970년대 이전에 정부는 서울 확장 계획을 발표하며 영등포 동쪽이라는 뜻의 영동 개발을 시작한다. 여기에는 1968년 북한 무장공비 김신조의 청와대 습격으로 인해 신변의 위협을 느낀 박정희 정권의 불안심리가 깔려 있다. 논과 밭 외에 아무것도 없는 강남은 정권에 의해 주목받고 조성된다. 강남개발은 핍박받는 넝마주이의 삶을 벗어날 기회를 노리던 종대에게는 절호의 기회이다. 자기 땅 한 평이 없어 자다가도 쫓겨나야 했던 그에게 땅은 일생일대의 꿈이자 한이다. 밑바닥 인생을 살던 종대는 복부인을 만나고 이어서 정권의 실세들과 만나며 온몸을 바쳐 그들의 땅 투기를 위한 실행자가 되고, 그로부터 나오는 콩고물을 거둬들이며 미래를 기약한다.

부의 상징이 된 강남은 부패의 상징으로부터 출발했다. 땅은 정치권 및 군부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고, 밑바닥에서 시작한 이들이 사다리에 올라가기에는 한계가 있는 법. 영화는 종대와 용기의 성공을 향한 몸부림 과정에서 여러 차례 거친 몸싸움을 삽입한다. 건달패의 야당 전당대회 훼방에서부터 정치권의 비호를 받은 라이벌 조폭 파벌 간의 다툼 등 여러 번의 처절하고 화려한 액션 장면이 펼쳐진다. 그리고 갱스터 영화의 공식에 따라 주인공들의 욕망은 화를 부른다. 비리와 불법에 연루된 이들이 처벌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회 시스템의 밑바닥에 자리한 자의 성공을 순순히 내버려둘 세상이 아니다. 갱스터 영화의 결말은 세상의 비정함을 강조한다.

영화는 잔인하고 폭력적이다. 두 명의 한류 스타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영화가 지니는 의미는 크고 이것을 대중적인 즐거움으로 형상화하려는 노력도 효과를 발휘한다. 그러나 잦은 액션 신은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기 힘들어서, 그저 뒤엉킨 몸들의 향연을 구경하는 정도로 남고 만다. 짙은 여운이나 비애감 또한 약하다. 영화적 구성과 연기자들의 앙상블, 편집의 세련됨 등이 다소 결여되어 있는데, 영화적 표현방식의 진부함은 주제를 인상적으로 각인시키는 데 장애가 되고 만다.

하지만 표현의 폭력성은 유신시대의 폭력성을 상징하는 효과적인 장치가 된다. 부자들은 강남으로 모여들었고, 남북대결의 결과물이 되어버린 강남은 영원한 권력으로 남고자 하는 무리들의 탐욕의 상징물이 되어가고 있다. 영화는 우리나라 부의 상징이 어디에서부터 꼬여버렸는지를 추적하며, 이전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여전한 부패와 비리가 난무하는 세상, 그리고 물욕이 드러나는 추악한 얼굴을 응시한다.

<영화평론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