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종문의 한시 산책] 하늘 동쪽에 붉은 해 꿈틀!

하늘 동쪽에 붉은 해 꿈틀!

[봉사입금(奉使入金)]-진화(陳화)

西華已蕭索(서화이소삭) 서방 중국은 이미 빛이 바랬고

北寨尙昏蒙(북채상혼몽) 북쪽 금나라는 아직도 매 그 모양

坐待文明旦(좌대문명단) 문명의 새 아침을 벅차게 기다림에

天東日欲紅(천동일욕홍) 붉은 해 꿈틀대네, 하늘 동쪽에

*奉使入金(봉사입금): 왕명을 받든 사신이 되어 금나라에 들어감. *西華(서화): 서쪽에 있는 중국. 南宋(남송)을 말함. *蕭索(소삭): 쓸쓸함. *北寨(북채): 북쪽 울타리. 금나라를 말함. *昏蒙(혼몽): 어두움. 미개함. *天東(천동): 하늘 동쪽. 고려를 말함.

중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보는 중세적 세계관에 입각해서 보면, 세계 제일의 문화적 선진국은 중국이다. 중국의 바로 옆에 있으면서 중국에 못지않은 찬란한 문화를 이루었던 나라는 우리나라다. 이와 같은 구도 속에서 북방민족이나 섬나라 일본은 무지하기 짝이 없는 미개 집단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진화가 이 시를 지을 무렵인 고려 무신 집권기에는 세계 제일의 눈부신 문화를 자랑하던 중국이 북방의 강자인 금나라에 쫓겨서 마지막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찬란하던 문화도 그 빛이 쓸쓸하게 바래가고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반면에 금나라는 아시아를 호령하는 강자가 되었지만, 문화적으로는 여전히 몽매한 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사신이 되어 금나라로 들어갔던 작자가, 문명사에 대한 자신의 벅찬 갈망을 시적 구도 속에 웅혼하게 포착한 것이 바로 이 시다.

작품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진화가 살았던 시대는 세계사의 거대한 전환기였다. 이와 같은 전환기적 상황 속에서 시인은 세계 문명의 새 아침이 우주의 동쪽에 있는 고려에서 환하게 열릴 날을 뜨겁게 기다리고 있다. 정말 아쉽게도 난데없는 몽고의 침입으로 진화가 바랐던 문명의 새 아침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옛날 고려시대에 세계문명의 중심을 꿈꾸었던 한 위대한 시인이 있었음을 우리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진화가 살았던 시대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도 세계문명사의 일대 전환기다. 과거 오랫동안 세계의 중심은 미국이었으나, 이제 바로 그 세계의 중심이 동북아 지역으로 빠른 속도로 옮겨오고 있다. 이러한 전환의 시대에 우리 모두가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히는 세계사의 당당한 밀알이 되어, 진화가 이루지 못했던 꿈을 이루어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종문 시인'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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