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토요광장] 교육감의 영화 감상법

1966년 대구생. 경북대 석사. 계명대 언론학 박사. 성서공동체 FM 진행 및 제작.
1966년 대구생. 경북대 석사. 계명대 언론학 박사. 성서공동체 FM 진행 및 제작.

"뉴스요? 신문은 쪼가리도 구경 못했어요. (신문이)얼마나 귀합니까. 본다고 읽을 수도 없지만. 그러나 영화는 생각나요. 명주 짜는 직조공장에서 일했는데 사장이 직공 6, 7명을 데리고 가끔 갔어요. 지금의 중앙로 이쪽저쪽에 극장이 있었는데 호락관이던가. 혼자선 갈 엄두를 못 내던 시절이었으니 노동자들을 위한 일종의 위문공연이었지요."

수년 전 만났던 이재기 할아버지가 더듬더듬 풀어냈던 이야기다. 일제강점기 때 섬유노동자로 일하며 경험한 극장구경이다. 그가 말한 호락관은 일본인이 경영하던 영화관으로 옛 한국은행 대구지점 뒤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다다미를 깐 극장에서 사장이 선택한 영화를 본 것이다.

청소년기에 맛본 그의 극장경험은 해방 이후로 이어졌다. 어려운 형편에도 영화나 공연장을 간간이 찾았다. 한일극장의 전신인 키네마극장이나 자유극장, 송죽극장의 기억이 남아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당시 악극 공연을 주로 하던 대구극장에서의 쇼를 본 기억도 있다. 문자를 모르고 가난하고 배고팠던 시절, 그에게 영화는 한 가닥 여가와 희망을 줬다.

'젖먹이 아이를 데리고 영화관을 출입하는 데 있어서 아기 위생상의 문제는 생각지도 않는 부인이 있는 듯하니 이 더운 날씨에 덥고 갑갑함에 못 이겨 우는 울음소리에 조용히 연기에 집중하고 있던 관객의 마음을 소란 시키고 있는 것은 너무나 문화도덕에 어긋난 일이다….'

1947년 5월 25일 자 부녀일보에 실린 흥미로운 기사다. 젖먹이 아이를 안고 문화의 전당인 영화관에 오는 것은 문화도덕에 어긋난다는 훈계조의 기사이지만 영화 열기가 높은 극장가의 풍광을 그대로 비춰준다. 사장의 손에 이끌려 극장을 찾은 노동자나 젖먹이 아이를 안고 영화관을 스스로 찾은 엄마의 영화 감상법은 무엇이 같고 다를까. 아무래도 그들이 영화관을 찾은 이유만큼이나 느낌도 달랐을 것이다.

이는 영화 영상의 특징과도 맞물려 있다. 영화의 여러 특성 가운데는 영화 속의 이야기를 사실적인 것으로 느끼고 거기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영화 속에 스며든 가치관이나 사회적 판단 등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영화적 이데올로기의 효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이를 인정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영화감상법은 다르게 나타난다.

최근 개봉한 영화 '국제시장'을 보며 색 바랜 과거의 영화 감상법을 떠올리게 되는 건 왜일까. 1천만 관객을 동원했다니 대구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큰 호응을 받은 영화다. 6'25전쟁이라는 현대사에서 아버지를 중심으로 가족의 애환을 다뤘으니 의미가 없지 않다고 할 것이다. 밥상머리 교육이 이뤄질 수 없는 현실적인 측면에서는 교육용 영화로 다뤄질 수도 있겠다.

그래서일까. 대구시 교육감이 나섰다. 지역의 중학생들이 '국제시장'을 무료로 볼 수 있도록 지원한 데 이어 대구상공회의소의 교육 기부를 통해 고등학생도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우동기 교육감은 "한국전쟁 이후 현대를 배경으로 격변의 시대를 살아온 평범한 아버지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억척스럽게 자식을 키워내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애국심 및 가족애 함양의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교육감의 그런 생각과 학생들이 꼭 봐야 하는 것과는 다르다. 일회성 행사에 정치적 눈길을 빗댈 일은 아니다. 하지만 2015년의 영화 감상법으로는 썩 어울리지 않는다. 대구출신의 감독이 어머니라는 소재로 '서문시장'을 만들기를 바라다면 더 그렇다. 아이들을 위한다는 선택이 종종 어른들을 위한 선택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교육감의 선택으로 보는 무상영화는 어디에 해당할까. '서문시장'을 교육감이 직접 만들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박창원/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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