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의 나를 편집해 사진 올리기 경쟁, 현실보다 더 가혹한 경쟁의 늪서 허덕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면서 어느새 필름 카메라는 자취를 감추었다. 후지필름은 3년 전 필름 생산을 중단했으며 코닥은 이미 오래전 파산을 신청했다. 그러나 디지털 카메라의 운명 또한 오래가지 못할 것 같다. 스마트폰과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해, 여태껏 필름 카메라에 보란 듯이 선사했던 굴욕을 고스란히 맛보고 있는 중이니까 말이다. 이제 사진은 더 이상 추억을 곱씹을 수 있는 액자나 사진첩에 묻히길 거부한다. 여권 혹은 면허증에 넣을 증명사진이 필요치 않다면 굳이 동네 사진관에 갈 이유가 없다. 절약 정신이 투철한 이들은 그 대신 데이터 요금을 한 푼이라도 아끼려 와이파이존을 물색한다.
사진과 전혀 무관했던 장소가 이젠 현상소만큼 중요하게 되었다. 삼발이 대신 셀카봉을 챙기고 맛집이라도 가면 반드시 인증샷을 찍고 수저를 들어야 한다. 찍힌 사진들은 일제히 엄격한 자체 심사(?)를 거쳐 필터로 변환된 뒤 자신의 SNS(Social Net
work Service) 계정에 오른다. 그 순간 사진은 언제 어디서든 누구라도 볼 수 있는 공유물이 된다. 만약 세상에 퍼뜨릴 의도가 없는 사람들도, 소위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면, 야외에서 찍은 사진들을 고스란히 내 컴퓨터 안으로 전송할 수 있다.
이전 세대의 사진이 서랍 속에서 뽀얀 먼지만 받는 신세였다면 SNS 속 사진들은 별표나 하트 혹은 '좋아요'를 받으며 생동감을 얻는다. 바이러스 같은 확산력까지 얻으면 사진은 단순한 가십거리를 넘어 여론 형성의 핵(核)으로 등극한다. 나와 남의 경계를 흐려 서로의 일상을 타임라인이란 한 줄로 얼기설기 묶어낸다.
문제의 발단은 여기서 출발한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는 법인데, SNS에는 최소 몇백만 개 이상의 가지들이 매시간 무한 증식 중이다. 요리조리 돌려대는 여론몰이 바람은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증상은 관계에서 비롯되므로 'SNS 노이로제'에 관련된 기사들이 쏟아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지사다. 여기서 사진은 문제의 핵심이다. 왜곡된 현실이 일관성을 지니면 설득력을 얻는데, 사진은 바로 그 왜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진료실에서 깨달은 사실 중 하나는 또래집단의 SNS 속 사진들이 외로움과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데 한몫했다는 점이다.
작가 수잔 손택에 따르면, 사진은 반쪽짜리 진실에 불과하다. 순간 포착된 피사체가 그 사람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우리 모두는 익히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사진들이 어느 정도의 일관성을 갖추게 되면 의구심은 확신으로 변하기 쉽다. 해외여행이나 비싼 음식 혹은 명품 사진으로 나열된 타임라인을 보고 있노라면 부지불식간에 그 친구의 일상이 언제나 그런 것처럼 믿게 된다. 이미지로 대변된 타인의 삶이 자꾸 비교되면 나의 일상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생채기가 날 수밖에 없는 자존감은 급기야 타임라인을 왜곡하기 시작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고스란히 담아내기보다 누리고 싶은 가짜의 나를 편집해서 올리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외부 현실보다 더 가혹한 경쟁의 늪에 빠지고 만다. 보편과 진실의 갈등은 거의 언제나 신경증(神經症)을 유발한다. 반쪽짜리 진실인 사진이 SNS란 보편과 만나면 사진은 사진 그 이상이 되어 버린다. 어떤 경우 분노 혹은 모멸감의 매개체로 둔갑하여 최근 자주 기사화되는 사건들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우린 누구나 부족한 존재이며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일상이나, 잠시라도 보편적 불행을 자신만의 불행으로 착각하는 순간 문제는 어김없이 발생하는 셈이다.
왜곡된 현실은 허상(虛像)이다. 타인의 SNS를 보며 열등감에 빠지는 건 허상의 잣대로 현재의 나를 질책하려 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상대평가가 당연시되고 절대 행복을 강요하는 사회일수록 이런 성향은 만연하기 쉽다. 그러니 헷갈릴 때는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자. 타인의 흉안(凶眼)을 두려워하는 나를 볼 수 있는 혜안(慧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김현철/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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