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지난주에 우리 가족은 서울 도심을 돌아보는 여행을 했었다. 아이들이 서울시청 광장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싶다고 해서 그리로 갔었는데, 시청 주변으로는 박원순 시장을 비난하는, 혹은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플래카드들이 빽빽하게 걸려 있었다. 그것을 본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이 나에게 물었다.

"아빠, 박원순 시장님은 무슨 잘못을 많이 했나 봐요? 사람들이 불만이 많은 것 같아요."

"음, 저걸 꼭 시장님이 잘못한 거라고 보기는 어려워. 말하자면 이런 거야. 30명 있는 너희 반에서 체험학습 장소 하나를 정하는 데도 모두가 만족하는 것은 아니지 않니? 당연히 천만 명이 넘는 사람이 있는 데서는 어떤 정책으로 불만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억울한 사람도 많이 있을 거야. 중요한 건 그 사람들이 저렇게 시장님한테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야. 그러니까 저런 말들을 힘으로 막지 않는 것은 시장님의 생각이 아직 건강하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지. 힘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이 건강하지 못한 사회에서는 아랫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억누르려고 하는데, 그래서도 안 되지만 그게 억누르려고 한다고 해서 억눌려지는 것도 아니지."

"아하, 방금 생각났는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가 그리스 신화에도 나오고, 삼국유사에도 나오는 이유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닐까요?"

"그렇지. 경한아, 너 혹시 삼국유사에 나오는 당나귀 귀를 가진 왕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나니?"

"경문왕 말인가요? 밤마다 뱀들이 침실에 몰려오고, 뱀을 이불처럼 덮고 자던 왕이었잖아요. 사람들이 뱀을 쫓아내려고 하니까, 뱀이 없으면 잠을 못 잔다고 그랬어요. 아, 그리고 왕이 되는 과정도 재미있었어요. 이전 왕(헌안왕)이 경문왕의 인품에 감동해서 공주를 시집보내려고 할 때, 경문왕은 못 생긴 첫째 공주와 자기가 좋아하는 예쁜 둘째 공주 중에 못 생긴 공주를 택하잖아요. 그래서 나중에 왕이 죽자 맏사위라서 왕위에 오르고, 예쁜 둘째 공주도 왕비로 삼잖아요."

"잘 아는구나. 나중에 삼국유사 골든벨에 나가도 되겠는걸. 그런데 경문왕은 진짜로 뱀들이 우글거리는 방에서 혼자 잤을까?"

"그러기는 힘들 것 같아요. 그럼 혹시 밤마다 몰려오던 뱀이 그냥 뱀이 아니라 호위무사 같은 걸 비유해서 말하는 걸까요?"

"그럴 가능성이 높을 거야. 경문왕은 43대 희강왕의 손자인데, 희강왕은 민애왕이 반란을 일으키자 자살을 했다고 하지. 43대 왕의 손자가 48대 왕이니 그 중간에 반란이 일어나고 왕이 자주 바뀌었는지는 짐작이 가지? 아마 경문왕도 조그만 꼬투리가 반란의 빌미가 된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보아왔겠지.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왕의 자리도 아니니, 다른 귀족들이 호시탐탐 왕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더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닫고 측근들이나 호위무사들에게 의존을 했을 거라고 추측은 해 볼 수 있지. 왕이 측근 말만 듣고 다른 사람들 말은 억압하니까 아마도 사람들은 직접 말은 못하고, 왕이 뱀하고 잔다는 요상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을 수도 있지."

생각해 보면 당나귀 귀라는 게 큰 허물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감추려고 하다 보니 두건을 만들어야 하고, 두건장이를 협박해서 윽박질러야 하고, 소리가 나는 대나무 숲을 마구잡이로 베어야 한다. 그렇게 해도 소리는 막을 수가 없다. 이를 보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의 진짜 교훈은 역사를 통해 겪은 그러한 과정을 되풀이하지 말고 투명한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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