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투르판은 640년 당 태종의 원정으로 망한 고창(高昌)국의 수도이다. 이 투르판에서 원효의 대승기신론소(=원효소, 해동소)가 나왔다. 중국 상하이 사범대 딩위엔 교수가 지난 12일 국내에 들어와서 발표한 데 따르면, 베를린 브란데부르크과학원 소장 투르판 문서에서 발견된 대승기신론소 필사본 조각 2개가 원효의 것이다. 청와대발(發) 잡음이 나라를 뒤흔들어 별 주목받지 못하고 넘어갔지만, 투르판본(本) 원효소의 발견은 한반도의 정체성을 드러낼 역사적 사건 가운데 하나이다.
둔황 북서쪽이자 사마르칸트 동쪽에 있는 실크로드 거점 투르판은 아직도 178개의 유적이 남아있는 고창국의 중심지이다. 투르판은 일 년에 비가 16㎜(우리나라 연 1300㎜) 밖에 오지 않는 강수량 절대부족 지역이지만 100㎞ 밖 천산(天山)의 얼음물을 지하 인공수로(카레즈)로 흘려보내 생명수로 삼고, 그 물을 분수로 퍼올려 세계 최고 당도의 포도를 생산한다. 투르판 한복판은 화염산이다. 태양이 내리쏘는 곳은 여름날 80℃까지 올라간다. 삼장법사 현장도 구법길에 화염산을 지나다가 파초선으로 바람을 일으키고야 지나갈 수 있었다고 서유기는 적고 있다. 가혹한 불'모래'바람 환경을 딛고 동서의 여러 문명을 받아들인 투르판은 '문명의 용광로'로 불리는 곳이다.
투르판 문화의 결정체는 석굴사원 '베제클리크'이다. '아름답게 장식한 집'이란 뜻의 베제클리크 천불동은 벽면마다 불화와 불경을 품고 있다. 석가모니 열반을 담은 베제클리크 33호굴에는 화랑모를 쓴 인물이 그려져 있다. 신라 사신으로 여겨진다.
투르판 베제클리크 유물은 1차 대전 당시 독일 탐험대에게 약탈당해 베를린 등지로 실려나갔다. 이번에 발견된 원효의 대승기신론소도 그때 휩쓸려갔는지 베를린에서 발견됐다. 이는 지난 2010년 둔황본 원효소에 이어 또다시 실크로드 상 중요도시에서 발견된 것이다.
대승불교를 다룬 대승기신론의 해설서인 대승기신론소는 1천여 종이나 되지만 세계적으로 인증받는 '기신론 3소'는 혜원소(中)'원효소(韓)'현수소(中)이다. 혜원소가 원효소보다 빠르기는 하지만 기본 해설만 다루어 원효소에 족탈불급이다. 화엄학의 대가인 법장 스님이 저술한 현수소는 원효소보다 훨씬 뒤에 나왔지만 원효소와 몇 가지 해석상 차이를 지닐 뿐 70% 이상 똑같다.
내용도 최고이지만, 투르판본 원효소는 그 이동성에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둔황을 거쳐 투르판까지 실크로드를 따라 원효의 대승기신론소가 이동해간 것이다. 실크로드의 동단이 한반도까지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다.
경상북도가 지난해 심혈을 기울여 '경주엑스포 인 이스탄불'을 연 데 이어 올 9월 '이스탄불 인 경주'를 여는 것이나 중국 광저우에서 해상 실크로드 세미나를 연 것 등은 문명이 오간 동쪽 기점이 한반도 신라까지 확장됨을 인식시키기 위한 것이다.
중국 내에서는 실크로드를 한반도까지 연장시키는데 반발하는 기류가 있다. 하지만 실크로드의 동단이 중국에서 끊긴다면, 경주 천마총'금령총'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지중해식 로만글라스는 뭐며,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궁전(아프라시압) 벽화에 등장하는 조우관을 쓴 사절은 또 무엇을 나타내는가. 시안에 있는 당(唐)대 묘 내부 벽화에도 새 날개 모양 조우관(鳥羽冠)을 쓴 신라사절이 나온다.
투르판본 원효소는 실크로드가 한반도를 세계와 소통시킨 길임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비록 시진핑이 66개국이 참여하는 새로운 경제정책인 '일대일로'(一帶一路)를 통해 해상 실크로드와 육상 실크로드를 하나로 엮으면서 한국을 뺐지만 우리는 멈출 수 없다. 나라가 신경 쓰지 못하면 경상북도라도 자부심을 갖고 신실크로드를 계속 밀고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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