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신지체 언니 돌보다 스스로 목숨 끊은 20대 "너무 힘들었어요"

보호시설 자해 언니 데려와 생활, 마트 알바하며 뒷바라지

"너무 지쳤어요. (돌아가신) 아버지와 할아버지, 할머니 곁으로 가고 싶어요. 내가 죽더라도 언니는 좋은 시설에 보내주세요. 그리고 제 장기는 기증하고 월세 보증금은 사회에 환원해주세요."

24일 오전 10시 10분쯤 수성구 한 식당 주인은 자신의 식당 주차장에 있던 승용차에서 A(28) 씨가 숨진 것을 발견했다. 차 안에는 번개탄을 피운 흔적이 있었다. 경찰은 A씨가 생활고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A씨에게는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언니(31'정신지체 2급)가 있다. 언니의 상태는 나이가 들수록 악화됐다. A씨는 혼자 언니를 보살펴야 했다. 아르바이트 등으로 근근이 생활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태에서 A씨는 삶에 지쳐갔다. 결국 세상을 등지는 길을 택했다. A씨 휴대폰에 저장된 4쪽 분량의 메모는 유서가 됐다. 거기에는 벼랑 끝에 몰린 그녀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경찰과 남구청 등에 따르면 A씨 자매는 2살 때 아버지가 숨졌고 몇 년 뒤 어머니도 집을 나갔다. 이후 자매는 광주에 있는 할머니와 생활했다. 하지만 8년 전 언니가 가출했고, A씨도 집을 나와 대구에 정착했다. 언니는 2001년 정신지체 2급 판정을 받았다. A씨는 대형마트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장애인보호시설에 있는 언니를 뒷바라지했다.

2012년 7월 대구의 한 장애인보호시설에 있던 언니는 자해를 했다. 그 바람에 몇 차례 정신과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언니는 동생과 함께 살고 싶어 했다. A씨는 이달 13일 자신이 살던 남구 봉덕동의 한 빌라에 언니를 데려왔다. 보증금 500만원, 월세 36만원짜리였다. 하지만 생활비가 바닥나 월세가 2개월치 밀렸다.

경찰은 이때부터 A씨가 자살을 결심한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 관계자는 "언니 진술에 따르면 15일쯤 A씨는 자매가 제주도 여행을 할 때 같이 죽자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또 20일 오후 2시쯤 A씨는 자신의 집에 번개탄을 피워놓고 언니와 자살을 시도했는데, 언니가 깨어나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생명을 건질 수 있게 됐는데, 결국 A씨는 혼자 죽음을 선택한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전창훈 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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