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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상륙 대포통장…통장 모아오면 개당 50만원

점조직 형태 '은밀한 유혹'

대구 아파트 분양 시장이 과열양상으로 흐르면서 불법적으로 유통되는 점프 통장이 시장을 어지럽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매일신문 DB
대구 아파트 분양 시장이 과열양상으로 흐르면서 불법적으로 유통되는 점프 통장이 시장을 어지럽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매일신문 DB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결혼 2년차 신혼부부 A(37) 씨는 지난주 태아보험 가입 상담 차 만난 중년의 보험설계사로부터 은밀한 제안을 받았다. A씨 소유의 1순위 청약통장을 500만원에 사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친지나 직장 동료가 갖고 있는 통장을 모아다 주면 개당 50만원씩 수수료를 주겠다고 했다. A씨는 "대구에 불법 청약통장이 판친다는 얘기는 들었어도 실제 모집책을 만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점조직의 은밀한 유혹

타인 명의의 아파트청약 대포통장(점프 통장)을 취급하는 브로커들은 먹잇감을 쫓는 승냥이와 비슷하다. 돈 되는 곳이라면 지구 끝까지라도 간다는 게 전직 브로커의 증언이다.

이들은 청약통장을 수백만원에서부터 많게는 수천만원을 주고 사들인다. 이 때문에 해당 지역 부동산 시장에 거품을 인위적으로 조장하고 헛살을 찌운다.

자금력을 가진 전주나 재정이 튼튼한 기획부동산이 '점프 통장' 생태계의 최고 포식자로 군림한다. 그 아래 먹이사슬엔 지방 총책이 있고 일명 현장 모집책 '발통'(바퀴의 은어)이 통장을 사들인다. 실수요자는 생태계의 제일 아래에 있는 봉인 셈이다.

현장의 모집책은 보험 설계사, 자동차 판매원 등 개인정보를 다수 보유한 이들이 주로 맡는다. 최근에는 대규모 단체나 협회 간부도 모집책으로 활동한 사례가 포착되기도 했다.

이들은 모집 수당을 받고 현장을 누빈다.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며 주로 대포폰 등을 이용해 연락을 주고받는다. 단속이 쉽지 않은 이유다.

수백대 1의 청약경쟁률을 보이며 최근 분양한 대구역유림노르웨이숲 아파트 10채를 한꺼번에 청약 받은 '64*0' 번호를 가진 이도 몸통이 아닌 종범일 가능성이 크다고 경찰은 전했다.

요즘 들어선 브로커들의 수법도 대담해지고 또 교묘해지고 있다.

브로커들은 일반적으로 청약통장 보유자에게 대가를 선지급하고 청약통장을 매수해 청약통장 가입자의 명의로 위장전입 하는 수법을 썼다. 하지만 최근에는 청약통장 보유자를 모집, 이들이 직접 위장전입을 해 분양권을 받게 한 뒤 전매차익의 일부를 분배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대규모 협회 등 사단법인이나 재단법인의 개인 정보를 빼내는 간 큰 브로커들도 있다. 지난해 부산에선 장애인 협회에 등록된 장애인 통장으로 특별 분양을 받아 수억원의 차액을 챙긴 브로커와 협회 관계자가 검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전직 점프 통장 브로커로 활동했다는 한 남성은 "브로커들은 분양 열기가 있는 지역이면 전국 어디든 찾아가고 그곳에 직원을 상주시키며 지사형태로 운영한다"며 "분양 시장이 과열돼 초토화된 뒤에야 비로소 그 지역을 떠난다"고 귀띔했다.

◆실수요자만 봉.

점프 통장 브로커들은 인기있는 분양단지마다 '청약폭탄'을 안기고 차액을 챙겨 빠지는 수법을 쓴다. 결국 수천만원의 웃돈을 줘야 하는 실수요자에게 피해를 떠안긴다.

얼마 전 분양한 중구 수창동 센트럴자이는 1천여 가구 중 560개의 전매 매물이 한 유명 포털에 올라왔다. 다른 온라인 사이트와 부동산 사무실 등에 내 논 오프라인 물량까지 합치면 매물의 80~90%에 이를 것이란 추정이 나온다. 점프 통장으로 차액을 실현하려는 떴다방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대구 부동산 시장이 열기를 뿜을 시기를 즈음해 대구 청약통장 가입자 수도 급증했다. 청약통장 가입자 수가 최근 5년(2010~2014년) 동안 폭발적으로 증가한 가운데 최근 1년간 청약통장 증가 폭이 가장 큰 것으로 조사됐다.

한 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전국 청약통장 가입자 변동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말 대구 청약통장 가입자 수는 80만879명인 것으로 나타냈다. 이는 2013년 12월 말 64만9천447명 대비 15만1천432명이 는 것으로 연간 증가 폭이 지방 도시 중 부산에 이어 2위다.

분양 전문가들은 "대구에서 부동산이 과열되기 시작한 2011년 이후 통상 아파트 분양 단지에서 실수요자에 이르기까지 손바뀜 현상이 서너 번은 일어난다"면서 "떴다방은 아파트 분양 열기를 상승시키는 긍정적인 효과를 내지만 난립하면 최종 수요자들이 피해를 본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청약통장 거래는 엄연한 불법으로 처벌대상이다. 청약통장 매매는 거래당사자, 알선한 자, 광고행위를 한 자 모두 처벌대상으로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불법거래 청약통장으로 주택을 청약, 당첨되더라도 발각되면 해당 주택공급 계약은 취소된다. 10년 이하 범위에서 청약자격도 제한된다.

통장소유자들이 수백만원의 이익을 취하려다가 몇 배에 달하는 벌금과 수년간의 청약 기회를 잃을 수 있다는 점에서 처벌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이득을 취하려는 전문꾼들에 비하면 처벌 체감도가 높다.

브로커들은 한탕의 유혹을 쉽사리 떨치지 못한다. 전직 브로커 이모(45) 씨는 "청약통장 거래가 불법이긴 하나 큰돈을 만질 수 있다는 점에서 포기하기 힘들다"고 했다. 잘만하면 청약통장 거래 최대 벌금(3천만원)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설명을 보탰다.

임상준 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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