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선한 얼굴로 웃고 있는 김경해(51) 씨. 뇌병변장애를 가진 아들과 발달장애 딸을 혼자서 돌보며 유방암 치료까지 받고 있다는 사실을 경해 씨의 표정만 봐서는 아무도 모른다. 자신도 작은 덩치에 40㎏을 훌쩍 넘긴 아들을 매일 같이 안아서 옮기고, 바쁜 시간을 쪼개 딸의 발달장애 치료를 위해 병원을 오가는 통에 엄마의 몸은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다. '아프다'는 말이 사치라는 엄마는 혹시나 아이들을 돌볼 수 없는 상태가 돼버리면 어쩌나 그 걱정뿐이다.
"애들 앞에서 힘든 내색은 할 수 없지만 많이 힘들죠. 그래도 아들이 어제보다 눈에 생기가 돌고, 딸이 예쁜 그림을 그려오면 그걸로 힘을 얻어요.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가진 엄마들의 소원은 역시 그거 하나죠. 아이보다 하루라도 오래 사는 거…."
◆심한 뇌병변장애 안고 태어난 상록이
엄마는 나름 화려한 젊은 시절을 보냈다. 20대에 전자제품을 만드는 대기업에서 일했던 엄마는 직장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고 월급도 풍족하게 받았다. 서른이 다 돼서 만난 아빠는 엄마만큼 안정적이거나 월급을 많이 받는 직장에 다니고 있진 않았지만 성실하고 순진한 사람이었다.
"애들 아빠의 성실함 하나 보고 결혼을 결심했어요. 이 사람 믿고 회사도 그만두고 아이들을 키우며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 생각이었죠."
갓 결혼한 엄마에게는 큰 선물이 찾아왔다. 첫째 아들 상록(21) 이었다. 아이를 유난히 좋아하는 엄마는 아이가 태어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고 예정일보다 몇 주 빨리 상록이가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힘들고 오랜 분만 시간 동안 엄마 뱃속에 있던 상록이에게 산소가 공급되지 않았고 뇌에 큰 손상을 입게 됐다.
"20년이 지난 요즘도 TV에서 출산하는 장면이 나오면 힘들어서 보지 못할 정도로 그때 고생이 심했어요. 상록이도 저만큼 힘들었겠죠."
엄마는 상록이가 태어난 지 6개월이 넘어서자 상록이가 다른 아이들과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어다니기 시작하는 또래 아기들과 달리 상록이는 자주 경기를 일으키며 제대로 움직이지를 못했다. 엄마의 인생은 이때부터 오롯이 상록이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24시간을 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상록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누워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뿐인데 그조차도 서툴고 거칠어서 저 외에는 돌볼 수 있는 사람도 없어요."
◆오빠에게 엄마를 양보한 발달장애 도희
상록이가 다섯 살이 됐을 때 여동생 도희가 태어났다. 엄마는 도희가 건강하게 태어난 것을 보고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도희가 자라면서 엄마는 다른 아이들보다 발달 속도가 많이 느리다는 사실을 알았다. 병원에서는 도희에게 발달장애 진단을 내렸고 엄마는 또 한 번 무너져내렸다.
도희는 항상 오빠에게 양보하며 살아왔다. TV 채널을 돌리다가 오빠가 소리를 지르면 양보해야 했고, 먹는 것도 오빠가 먼저였다. 무엇보다 도희는 엄마를 양보해야 했다.
"오빠를 챙기느라 도희를 제대로 돌봐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죠. 어릴 때부터 오빠한테 다 양보하고 지내느라 기가 죽어 있는 모습을 보면 내가 몸이 2개였으면 싶어요."
혼자서 두 아이를 돌봐야 하는 엄마였지만 등 비빌 집 한 칸이 있고 아빠도 직장에 다니며 월급을 벌어다 준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했다. 하지만 아빠가 다니던 섬유공장이 문을 닫고, 아빠의 실수로 유일한 자산이었던 집마저 잃으면서 엄마는 철거 직전의 허름한 주택에서 두 아이를 돌보게 됐다. 그 후 아빠는 집을 떠났다. 그때가 상록이가 아홉 살, 도희가 다섯 살 무렵이었다. "돈 한 푼이 없어서 상록이, 도희 치료도 받으러 다니지를 못했어요. 3, 4년을 집에서 거의 나오지도 못하고 아이들만 돌봤죠.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든 시기였어요."
◆엄마에게 찾아온 유방암
다행히 기초생활수급 가정으로 지정되면서 셋이 지낼 수 있는 작은 아파트 한 칸은 얻을 수 있었고 아이들의 치료도 비용 부담없이 받을 수 있게 됐다. 큰 변화는 없었지만 엄마의 눈에는 상록이와 도희가 어제보다 아주 조금씩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두 아이와 함께 지낼 수만 있다면 엄마는 더 바랄 게 없었다..
온갖 힘든 일을 다 이겨낸 가족에게 또다시 시련이 닥쳤다. 3년 전 엄마가 유방암 3기 판정을 받은 것이다. 어깨가 자주 결리고 아팠던 엄마는 '10대 후반이 된 아들을 매일 같이 안아서 옮기느라 무리해서 그런가 보다'라는 생각에 간단한 물리치료만 받아왔었다. 하지만 엄마가 아팠던 원인은 유방암이었다. 암은 림프샘까지 번져 림프샘 절제까지 해야 했다.
"암이라는 소리에 아이들을 두고 먼저 죽는 건 아닐까 겁부터 덜컥 났어요. 내가 죽으면 돌봐줄 사람도 없다는 생각에 펑펑 눈물이 나더라구요."
유방암 수술을 받은 엄마는 병원에 채 일주일도 있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상록이와 도희 걱정 때문에 병원에 누워 있을 수가 없어서였다. 엄마는 여전히 유방암 치료를 받고 있지만 누구도 환자로 보지 않는다. 40㎏이 넘는 20대 아들을 번쩍번쩍 들어 올리는 데다 아이들 앞에서 항상 웃고 있는 얼굴 때문이다.
"힘들다고 하소연할 곳도 없지만 내가 힘들다고 하는 순간 아이들도 그 감정을 느낄까 봐 절대 내색하지 않아요. 그런데 요즘은 자꾸 몸 여기저기가 아파지고 아이들에게 맛있는 반찬 하나 사다주지 못하는 처지까지 겹치면서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와요."
김봄이 기자 bom@msnet.co.kr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주)매일신문사 입니다. 이웃사랑 기부금 영수증 관련 문의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대구지부(053-756-9799)에서 받습니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