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혜(가명·18) 양은 매달 '마법'의 시간이 돌아오면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도저히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극심한 생리통 탓이었다. 아랫배의 통증과 함께 메스껍고 어지러움을 느꼈고, 때로는 의식을 잃기도 했다. 고3 수험생인데도 학교에 가지 못하고 배를 마사지하며 견디는 경우도 잦았다.
생리통의 고통과 수능시험에 대한 긴장감이 맞물리면서 편두통까지 겹쳤다. 이 양은 병원에서 처방받은 진통제를 꾸준히 복용하며 상태가 호전됐다. 생리통은 월경을 하는 여성의 60% 이상이 경험하는 흔한 질환이다. 특히 출산을 하지 않은 여성들이 심한 생리통을 겪는 경우가 많다. 생리통은 원인이 다양하고 만성적으로 지속되는 경향 때문에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사회 활동을 방해하는 원인이 된다.
◆사춘기부터 40대까지 이어지는 고통
생리통은 1차성 생리통과 2차성 생리통으로 구분된다. 1차성 생리통은 골반 내에 특별한 질환이 없는데도 나타나는 생리통이다. 대개 초경 후 1, 2년 이내에 발생하고, 드물게는 40대 후반까지 지속될 수 있다.
특히 여성 청소년의 15%는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심한 생리통에 시달린다. 캐나다에서 가임 여성 1천5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60% 정도가 심각한 생리통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증 생리통에 시달리는 여성 중 절반은 행동에 제약을 받았고, 17%는 학교나 직장에 가지 못할 정도였다. 1차성 생리통은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오랫동안 지속되지만 출산을 하면 호전되는 경우가 많다. 임신과 함께 생리가 중단되면서 생리혈이 자궁 내로 역류하는 현상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2차성 생리통은 자궁내막증이나 선근종, 자궁근종 등과 같은 골반 질환에 의해 나타나는 생리통이다. 초경이 지난 후에 주로 생기고 배란이 되지 않은 주기에도 나타날 수 있다. 여러 자궁관련 질환 가운데 자궁내막증이 가장 주된 원인으로 꼽히지만 자궁내막증의 중증도와 생리통의 유무 및 심한 정도의 관계는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2차성 생리통은 골반 내 질환이 치료되면 곧 호전된다.
◆비정상적인 자궁 수축이 원인
생리통은 월경 기간 전후에 자궁 수축으로 인해 발생한다. 자궁이 수축되면 자궁 내에 압력이 높아지고 이로 인해 자궁 속 혈류량이 줄면서 허혈성 통증이 나타난다. 특히 자궁 수축 과정에서 생성되는 호르몬인 프로스타글란딘은 극심한 통증의 원인이 된다. 이 호르몬은 월경 직전에 두꺼워진 자궁 내막이 수축하면서 만들어진다.
1차성 생리통은 보통 생리 직전이나 직후에 시작돼 48~72시간 정도 지속된다. 통증의 양상은 아이를 낳을 때 겪는 진통과 비슷하고 치골 위쪽에 경련과 통증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대개 하복부에 치우쳐 나타나지만 허리나 넓적다리 앞쪽으로 통증이 퍼지기도 한다. 메스꺼움이나 구토, 설사를 겪기도 하고, 심한 경우 정신을 잃는 경우도 있다. 2차성 생리통은 월경 시작 1~2주일 전부터 시작돼 월경이 끝난 후까지 지속된다.
◆통증 시작되기 전에 진통제 복용해야
생리통의 치료제는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제와 먹는 피임약이 주로 쓰인다. 치료약은 정확한 복용 시기와 용법이 중요하다. 생리통 진통제는 생리 시작 1, 2일 전이나 통증을 느끼면 복용해야 한다. 약은 한 번 복용하면 6~8시간 동안 약효가 유지된다. 통증이 심할 땐 약효 지속 시간에 맞춰 다시 약을 먹어야 통증이 줄어든다.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제는 내성이 없어 꾸준히 복용해도 문제가 없지만 소화장애를 일으키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음식과 같이 먹어야 한다. 또 최소한 4~6개월간 꾸준히 먹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먹는 피임약도 생리통의 치료에 효과적이다. 피임약은 배란을 억제하고 자궁내막의 증식을 억제해 통증 유발 호르몬인 프로스타글란딘이 거의 분비되지 않도록 한다. 생리혈의 양과 월경 기간도 줄어든다. 피임약은 1차성 생리통을 가진 환자의 90%가 통증이 줄어드는 효과를 본다. 저용량 복합경구 피임약의 경우 고혈압이나 혈전색전증 같은 부작용이 거의 없어서 비교적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대구가톨릭대병원 산부인과 고석봉 교수는 "많은 여성 환자와 부모들이 생리통 진통제나 피임약이 나중에 임신에 문제를 일으킬 봐 걱정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임신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안심하고 치료받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생활습관 개선도 중요
생리통을 줄이려면 생활습관 개선도 중요하다. 생리 기간에는 꽉 끼는 스키니진이나 짧은 반바지, 미니스커트는 피하는 것이 좋다. 하복부를 압박하면 자궁근육이 경직돼 통증 유발물질이 몸 밖으로 빨리 배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체온이 떨어지면 혈관이 수축하면서 생리통이 심해질 수 있다. 하이힐 역시 골반에 무리를 줘 생리통을 유발한다.
식생활도 생리통과 관련이 있다. 육류와 피자, 치킨, 햄버거 등 인스턴트식품을 많이 먹을 경우 생리통이 더 심해질 수 있다. 섬유질이 풍부한 채소나 과일, 해초류, 생선, 콩 등은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된다. 칼슘과 비타민B군, 마그네슘, 오메가3를 챙겨 먹고, 술과 초콜릿, 카페인 등 자극성 음식은 피한다. 스트레스 관리도 중요하다. 스트레스는 면역력을 낮추고, 여성호르몬에 영향을 준다.
도움말 대구가톨릭대병원 산부인과 고석봉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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