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슈틸리케 축구

슈틸리케 축구가 화제다. 현역시절 지칠 줄 모르는 스태미나와 축구 지능으로 유명한 그는 고집 세고 소신 강한 독일인 감독이다. 상대 공격을 놓치지 않는 '더 스토퍼'라는 애칭에서 보듯 별로 빛이 나지 않는 수비수 출신이어서인지 그는 여러모로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다. 골을 넣어도 무덤덤하고 미간을 찌푸리는 장면이 카메라에 더 자주 잡히는 특이한 감독이다.

하지만 팬들은 슈틸리케식 축구에 대한 신뢰를 키우고 있다. 이라크를 넘어 아시안컵 결승 무대에 오른 결과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이기는 법을 아는 감독이고, 자기 색깔을 팀에 물들이는 법을 아는 감독이어서다. 지휘봉을 잡은 지 이제 겨우 넉 달이지만 한국축구 체질과 팀 분위기가 확 바뀐 것은 전적으로 '슈틸리케(Stielike) 효과'다.

물론 그의 축구는 아슬아슬하고 답답하다. 아시안컵 조별리그 세 경기 모두 1대0 스코어로 이겼다. 히딩크의 '오대영'에 빗대 '한(일)대영'이라는 이름까지 생겼다. 현란한 기술축구나 화끈한 공격축구를 기대한 팬은 실망이지만 좀체 실점하지 않고 지지 않는 그의 스타일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다. 한국만 만나면 허우적댄다는 '늪 축구'의 위력을 보아서다. 그는 전술이나 경기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상황에 맞춰 이기는 축구를 구사한다.

그의 축구 철학은 간단하고 명료하다. "공격 잘하는 팀은 승리하지만 수비 잘하는 팀은 우승한다"는 말에서 지론이 분명히 드러난다. 하지만 아무리 철학이 그럴듯해도 선수가 공감하지 못하면 소용없다. 그런 점에서 슈틸리케 용인술과 팀에 대한 자세는 철학보다 더 무겁다. 그는 코치'선수의 의견을 적극 수용한다. 자기식을 고집하지 않고 열려 있다. 무명의 이정협을 내세우고 후보 김진현을 발탁했다. 명분이나 내 사람에 얽매이지 않는 슈틸리케식 '쇄신(刷新) 축구'가 선수의 기를 살린 것이다.

새 총리가 내정되고 청와대 조직이 개편됐다. 그런데 더 쇄신하라는 국민의 목소리가 크다. 곧 나간다는 김기춘 실장의 존재나 연말정산 파동에 "국민께 많은 불편 끼쳤다"는 대통령의 유감 표명에서 왜 쇄신 이야기가 나오는지 알 수 있다. 지금 국민이 세금 더 내게 생겨 불편한가. 국민을 속절없이 불만쟁이로 만드니 터져 나오는 쓴소리다. 팀을 하나로 만드는 힘은 구성원을 알고 마음을 여는 것이다.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한국 정치가 슈틸리케 축구에서 배울 점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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