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 조기통합을 둘러싼 갈등이 새해가 밝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며 칼을 빼든 상황이다. 외부에서는 '밥그릇 싸움', '그들만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법적 규제부터 모뉴엘 사건에 이르기까지 복잡하게 얽혀있는 외환은행 조기통합의 실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 합의서 위반, 단순한 기간의 문제인가?
양 행 조기통합에 있어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적되는 2.17 합의서 제 1조 1항은 '독립법인 유지와 명칭 사용'으로 외환은행의 독립 경영을 보장하는 내용이다.
때문에 하나금융지주의 조기통합 주장은 외환은행을 독립적인 주체로 유지하겠다는 근본적인 내용을 뒤집는 것이다.
조기통합의 걸림돌은 단순히 자존심 싸움이 아니라 '외환은행이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된 직원들이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조기통합을 밀어붙인다 하더라 화학적 결합이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 아닌가?
△규모와 경쟁력은 뚜렷한 관계없어…대규모 은행 수익률 오히려 저조
외환은행·하나은행 통합시 자산규모 340조 원의 기업으로 등극한다. 규모면에서 엄청난 성장이다. 하지만 은행의 규모가 곧 은행의 경쟁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료는 금융감독원과 은행경영통계의 각 년도별 수치를 바탕으로 작성된 그래프다.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이후 은행의 규모와 수익성은 반비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내 초대형 은행의 수익률은 저조한 반면, 소규모 은행의 수익률이 기준치를 상회하며 규모와 수익성의 관계가 비례하지 않음을 증명한다.
외환은행에 비해 규모가 큰 하나은행은 기준치보다 열등한 수익률을, 외환은행은 기준선을 웃도는 수익률을 기록했다.
은행의 규모와 수익성이 체계적 관련이 없다는 것을 하나금융 스스로 체험한 셈이다.
어려운 금융계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은행산업의 평균치에서 수익률을 차감한 초과 수익률을 기준선으로 잡고 있다.
하나금융이 주장하는 경영위기론은 과장이다. 오히려 외환은행은 안정적인 수익을 기록하며 선방했다.
하나금융지주가 조기통합을 위해 내세운 가장 큰 근거는 '규모의 성장'이다. 손익 계산에 잔뼈가 굵은 금융계 인사가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하나지주가 '규모가 성장'을 '경쟁력의 성장'처럼 포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금융지주 경영 이후, 외환은행 수익률 '하락세'
외환은행은 은행산업 침체에도 불구하고 선방한 반면, 최근 2년간 절대적 수익률 지표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표의 하락세가 두드러지는 2012-2013년은 외환은행이 하나금융지주의 자회사로 편입된 시기와 맞물린다. 하나금융의 경영방침 변화가 외환은행 초과수익률 하락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이유다.
외환은행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경쟁력으로 고군분투하고는 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수익률 역시 평균치 이하로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다.
2012년 3월, 당시 김한조 기업사업그룹장(現외환은행장)은 서신을 통해 '질적인 성장보다 규모를 키우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밝혔다. 새로운 경영진 역시, 지난 2년 동안 '외형 부풀리기'에만 전념하는 모습을 보였다. 은행의 내실을 다지기 위해서는 수익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지만 규모가 곧 성장이라는 맹목적인 이념만을 내세우고 강요했다.
수익성 악화에 결국 경영진들은 운영방침을 수정했다. 2014년 신년사에서 윤용로 前외환은행장은 경영 방향을 수익성 제고로 변경하겠다고 발표했다.
하나지주는 한 번 실패한 경험에서 교훈을 얻기는커녕 같은 주장으로 외환은행과의 조기통합을 주장하고 있다.
이미 '규모의 경제'와 수익률 관계를 스스로 입증했음에도 불구하고 반성없는 경영진을 믿고 따라갈 수 있겠는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모뉴엘, KT ENS 사태' 금융위가 책임 방조하나?
지난해 10월 중견가전업체 모뉴엘은 시중은행에 물린 금액이 7,000억원에 달하는 금융사기사건을 저질렀다.
외환은행 역시 이 '모뉴엘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김한조 기업사업그룹장(現외환은행장)은 한도금액을 추가로 늘려가며 부실 대출에 앞장섰다. 특히, 하나지주가 경영권을 가져간 2012-2013년도에 외환은행 모뉴엘 여신은 폭발적으로 급증했다. 새로운 경영진이 내놓은 대출상품이 오히려 금융사기사건에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현재 외환은행은 부실대출과 관련하여 금융당국의 검사 대상에 올라있다.
하나은행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모뉴엘 사건'을 복제한 것처럼 KT ENS에 대한 부실대출 검사 대상에 올라있다.
하나금융그룹의 두 은행이 이처럼 같은 행보를 걷는 이유가 우연일까?
아직 양 행에 대한 금융당국의 검사가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검사가 마무리되면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모두 제재를 피하기 어렵다. 이는 은행법 제 18조, 은행법 시행령 제 13조의 임원 자격 조건에 결격하는 사유다.
하나금융 측이 조기통합을 서두르는 이유 중에이런 법적 제재를 피하기 위한 이유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모뉴엘·KT ENS, 모두 부실대출로 사회에 큰 피해를 유발한 사건이다.
금융당국은 부실대출에 대해 양행에 대한 검사를 모두 마무리한 이후 조기통합을 논하는 것이 금융질서를 확립할 수 있는 올바른 순서다.
△ '조기합병 이익의 절반'은 구조조정으로 발생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의 강점은 각기 다른 뿌리에 의존한다. 외환은행은 기업금융과 수출입 금융에 강한 반면, 하나은행은 소매금융의 확대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지만 국내 가계부채 비율은 나날이 증가하며 소매금융에 치중한 금융기관들을 위협하고 있다. 가계부채가 붕괴된다면 이에 기반한 하나은행은 큰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기통합이 이루어진다고 가정해보자.
소매금융 부분에서 타격이 적은 외환은행에 까지'너 죽고 나 죽자' 식의 피해가 미칠 것이다.
하나은행의 손실마저 외환은행이 떠안아야 한다면 기존 영업 시스템에도 무리가 가게 된다.
때문에 조기통합으로 위험한 상황을 감수하기보다는 외환은행의 독자적인 강점을 고도화 시키는 데 주력해야 하는 게 바람직한 방향성이 아닐까?
장점과 단점을 가진 한 은행 보다는 개성이 뚜렷한 두 은행을 관리하는 것이 금융그룹의 성장을 위해서도 필요한 전략이다.
통합시너지의 비용 역시 의심스럽다.
하나금융지주는 양 행의 통합시너지 효과가 약 3,121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중복된 이익 혹은 외환은행과 무관한 이익들이 포함되어있다.
'외환-하나카드'는 이미 통합이 완료되었기 때문에 은행 간 통합 이익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외화부문 역시 외환은행의 이익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외화부문에 월등한 경쟁력을 가진 외환은행이 미진한 부분을 흡수하는 모양이기 때문에 하나은행과의 통합으로 성장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외화 경쟁력을 하나은행과 나누는 것을 이익 증가로 추정하는 것은 억지스러운 주장이다.
신용카드와 외환부문 경쟁력에 책정된 이익을 제외하면 통합 이익은 1,400억에 불과하다.
그런데 '하나지주가 제시한 통합시너지' 자료를 보면, 기타 구조조정 란에 612억 원의 비용이 책정되어 있다.
남은 통합 이익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가 '구조조정'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하나-외환은행이 합쳐지더라도 중복 점포수가 고작 30개 정도에 불과해 점포를 줄이거나 통합으로 인한 인력 구조조정 계획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고 발언했다. 김한조 외환은행장도 "직을 걸고 고용 안정에 힘쓰겠다"며 직원들을 안심시키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금융연구소 연구위원 임수강 박사는"책정된 금액을 맞추기 위해서는, 사실상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때문에 남은 통합 이익 1,400억 원의 절반은 구조조정으로 인한 것이며 사실상 통합으로 인한 이익이라고 보기 어렵다.
하나지주가 주장하던 '통합 시너지에 의한 이익 증가'는 허상일 뿐이다.
△LG CNS "하나금융지주가 요청한 기한 내, IT 통합 불가능" 작업 포기
하나금융 경영진 측은 2015년 10월로 IT통합 완료일을 공시한 상태다. 하지만 양 행의 정보시스템은 상이한 소프트웨어를 이용하고 있는데다가 프레임워크도 차이가 있다.
일정대로 1년 이내에 양 행 전상통합을 마무리 짓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부분이다.
하나금융 측은 이미 양 행 전산통합 TF팀을 서울스퀘어로 발령했다.
작업 일정을 앞당긴 탓에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사무실에서 직원들은 마스크를 쓰고 근무하는 등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한 외환은행 직원은 "일정이 무리하게 앞당겨지다 보니 작업 환경은 물론 제대로 시스템이 돌아갈 지도 의문이다. 100%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LG CNS 측은 "10월 9일까지 프로젝트를 완료하기에는 일정이 짧다."고 손사래를 쳤다.
또 다른 금융 IT 전문가 역시 "하나·외환은행 IT 통합작업은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9개월 만에 테스트까지 모두 완료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라며 하나금융 측의 무리한 일정을 꼬집었다.
전문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하나금융 측은 자체적으로 IT 전산 통합과정을 진행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고객정보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은행측은 전산통합을 강행하고 관련 업체들이 그들을 걱정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김정태 하나지주회장 연임 위해 '하나-외환 조기통합' 서두르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하나금융이 조기통합을 서두르는 이유에 대해'김정태 회장의 연임' 문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김 회장은 '회장직을 3년 연임할 경우 1년씩 임기가 연장'되던 기존의 원칙을 '기존 회장이 다시 선임될 경우 3년을 잇는 연임 방식'으로 바꾸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하나지주가 연임방식을 바꾼데 이어, 지난 주주총회에서 임기가 끝난 사외이사 5명 가운데 4명을 대폭 교체했다. 이사회에 대해 하나지주의 영향력을 강화하겠다는 목적으로 보인다"며 하나금융회장직의 연임을 염두에 둔 행동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하나금융의 부진한 실적은 김정태 회장의 연임을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하나금융은 2011년 말 1조 3031억 원의 순이익을 기록했지만, 지난 2014년에는 당기순이익이 9430억 원으로 떨어지는 등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다. 이에 연임을 앞두고 '경영 실패론' 과 '리더십 의혹'마저 제기되는 상황에서, 김정태 회장이 조기통합이라는 무리수를 내민 것으로 여겨진다. 외환은행 출신 숭실대 박상기 교수는 "정황상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의 조기통합을 연임에 이용하려는 목적이 뚜렷하다."며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 부실한 통합 계획을 강행하는 것은 금융기업 회장으로서의 책임을 외면하는 꼴이다." 라고 비판했다.
외환은행 조기통합은 외부의 시선처럼 간단하지도, 또 투명하지도 않다.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외환-하나은행의 조기통합 계획이 얼마나 허술한 지 알 수 있다. 직원들은 문제를 일으키는 트러블메이커가 아니라, 파국이 뻔히 보이는 조기통합을 막기 위해 애쓰고 있을 뿐이다.
◆전성인 교수(홍익대 경제학부)
2004 한국계량경제학회 사무국장
2003 한국경제학회 KER 발간위원회 위원
1990~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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