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월성원자력발전소(이하 월성)1호기가 다음 달 12일 재가동 여부 결정을 앞두고 진통을 겪고 있다. 앞서 이달 15일 결정이 유보되면서 그 배경에 대한 의문까지 더해지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는 월성1호기에 대한 안전평가에서 최종 결정을 미뤘다. 전문가검증단의 의견이 엇갈린 때문이다.
대부분 시각은 '계속운전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반발을 잠시 피하고 보자'는 임시방편으로 보고 있다. 5천600억원을 들여 설비개선을 마친 한국수력원자력과 국가에너지기본계획상 계속운전만을 고려한 정부의 압박, 그리고 월성1호기 안전이 크게 우려된다는 주민들의 반발 사이에서 결정해야 하는 원안위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당초 18개월 내에 끝내야 했던 결정을 5년이나 끌어온 것만 봐도 월성1호기 재가동 여부 판단은 매우 어려운 문제다. 국내가 골머리를 앓는 원전 재가동 문제. 외국은 어떤 방식으로 풀었을까?
◆미국, 폐로에 성공하다
사우스다코타(South Dakota)주 수폴스(Sioux Falls)에 자리한 엑셀 에너지(xcel energy)의 화력발전소(앤거스 앤슨 파워 플랜트). 원전(당시 패스파인더 원전)에서 성공적으로 변신한 모델로 꼽힌다.
이 원전은 1963년부터 4년간 운영된 60만㎾급 연구용이다. 1960년대 폐로 결정할 당시만 해도 주민들이 원전에 대해 무지(無知)한 상태여서 폐로 진행에 어려움이 없었다.
행정관리자 제임스 윌콕스는 "원전은 경제적으로는 합격점을 받았으나 운전 과정에서 발생한 열을 용기가 견디지 못하는 결함으로 인해 폐로가 결정됐다. 폐로 이후에는 기존 시설물을 그대로 활용, 화력발전소(3기'60만㎾급)로 바꿨다. 핵폐기물은 정부가 테네시주로 가져감으로써 원전 폐로가 완전하게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티모시 브라운 총관리자는 "원전 정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완벽한 공개다. 폐로 이후 산업을 전환할 때 주민들의 참여는 대단했고, 이 신뢰를 기반 삼아 화력발전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주변이 공업지역으로 확대되면서 에너지 공급사에 대한 이미지가 좋았다는 점도 성공적인 폐로의 밑거름이 됐다.
현재는 폐로 된 원전에 자리한 화력발전소 역시 폐쇄돼 사무실로 활용되고 있다. 대신 40만㎾급 화력발전소 3기가 주변에 둥지를 틀었다. 원전 당시 근무하던 인력 60명 가운데 8명은 이곳에 남고 나머지는 미네소타 지역 원전으로 자리를 옮겼다. 천연가스를 활용한 화력발전이 미국의 새로운 에너지 공급원으로 떠오르고 있어, 미국은 원전보다 화력으로 발전방식을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기술담당자 리차드 바버 씨는 "3년가량 사용한 원전이었지만 당시 방사능 노출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했다. 이를 제염처리하고 옮기는 데에도 상당한 비용과 노력이 투입됐다"면서 "한국처럼 30년 넘은 원전을 폐로 한다면 시간적'경제적'비용 및 위험성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폐로 원전 가운데 엑셀에너지 사례는 매우 희귀하다. 대부분 녹지상태로 남아 도시를 죽이고 있다. 메인주 위스카셋 지역에 자리한 메인양키 원전(90만㎾급)은 1972년 가동을 시작해 경제적인 이유로 1997년 폐로 했지만, 1천434개의 핵폐기물처리를 못 해 도심이 죽어버렸다. 돈이 모자란 시는 폐로 이전보다 세금을 5배 이상 올렸지만, 여전히 배고프다.
한해 120억원씩 거둬들이던 세금이 95%로 확 줄어들자, 2년에 한 번 교체하던 소방차 등 소방안전시설물도 10년째 돌아볼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원전가동에 따른 막대한 경제혜택이 한순간에 없어진 것은 물론, 핵폐기물과 살아야 하는 주민들도 하루라도 도시를 빨리 떠나고 싶어한다.
◆캐나다, 계속운전을 해야 한다.
캐나다는 월성1호기와 같은 중수로를 개발'수출한 나라이기에 계속운전을 고집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수출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중수로 안전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를 굉장히 불편해한다. 그렇다고 영구정지'폐로(6기)가 진행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안전성과 경제성을 따져 주민들의 의견 수렴 후 과감하고 빠르게 원전정책을 결정한다.
사전에 모든 주민의견수렴이 마무리됐기 때문에 국내처럼 갈등을 겪지 않는다. 여론수렴은 주변 주민뿐만 아니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 혜택만큼 위험성도 크다는 판단이 의견수렴의 폭을 넓힌 것이다.
원전발전과 관련된 일체의 지원금도 주지 않는다. 국내처럼 수천억원의 지원금을 주는 경우는 아예 없다. 원전 주변 지역에 일거리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혜택을 모두 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대신 폐로 자금 확보를 위해 일정한 기금을 적립한다.
캐나다는 국내에서 큰 갈등을 겪고 있는 월성1호기 재가동에 대해 찬성 입장이다. 월성1호기를 직접 점검한 결과, 안전하다고 판단됐다는 것이 캐나다의 주장이다. 또 한국의 원전 안전관리 기술이 기술보유국인 캐나다보다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도 내렸다. 특히 TG테크놀리지(압력관 외부 전체를 점검)로 알려진 기술을 높게 평가했는데, 다름 아닌 한수원 서대교 차장이 중수로 고장원인을 찾아 해결해내면서 붙은 이름이다. 이 기술은 전 세계 중수로에 모두 적용되고 있다.
캐나다 주민들도 신규 원전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만 기존 원전의 재가동은 호의적이다. 많은 주민은 영구 정지된 원전에 대해서도 '다른 용도'로 활용하라고 아우성이다. 일거리를 찾기 위해서다.
토론토에서 2시간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한 피커링 원전 주변에는 종사자나 노인들이 많이 산다. 원전에 근무하는 파커 씨는 "피커링 원전이 오래되긴 했지만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하고 있는데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해주고 있어 만족스럽다"며 "일본 후쿠시마 사고가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요즘에는 이를 계기로 안전점검이 보다 강화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잭슨 씨는 "44년을 이곳에 살았다. 원전 관련한 공청회가 많을 때는 1주일에 한 번씩 열릴 정도로 주민과의 교류가 다양하다. 원전이 이곳에 있건 없건 특별한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카롤 씨는 "원전건설에 직접 참여했고, 우리는 50년을 넘게 아무런 문제없이 잘살고 있다. 다만 달링턴에 새로운 원전을 짓고 있는 것은 우려스럽다. 큰 사고가 없어 인식을 못 할 뿐이지 원전이 위험하다는 것은 안다. 그들이(원전회사) 보내오는 책자는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듯 입으로 떠들어대기만 할 뿐이다. 우리가 원전 가동에 찬성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나와 자식들의 일자리가 보장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조지 올슨 씨는 "현재 사용하지 않는 원전을 천연가스를 사용하는 화력발전소로 변화시키길 바란다. 우리 원전(중수로)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믿고 있기에 지역에서 큰 위협을 느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소식지를 통해 원전정보를 긍정적으로 접하고 있긴 하지만, 만약 사고가 날 경우 '주변 주민들은 모두 죽게 될 것'이라고 했다.
글 사진 포항 박승혁 기자 ps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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