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동 24시 현장기록 119] 꼭지와 반려(伴侶)를 준비하다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가족의 청을 계속 거부해 오던 나는 애교와 반협박에 마음이 약해지고 있었다. 동네 애견 가게에 자의 반 타의 반 "일단 가보기나 하자"고 아이 손에 이끌려 간 날, 결국 나는 오랜 시간 나에게 공을 들여 유혹하던 아내와 아이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아껴 둔 나의 비상금으로 말티즈 종 강아지인 '꼭지'를 분양받았다. "꼭지한테 사랑을 주든, 평생을 같이하든 아빠는 여기까지다"라고 가족에게 통고한 나는 이 밤에 강아지 기저귀를 챙기고 있다.

나는 직업이 소방관이라 화재진압 출동 이외에 동물구조 출동을 많이 한다. 그중에 고양이 구조가 유독 많이 발생하고 있다. 유년 시절에 기르던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는 충격적인 모습을 보면서 고양이나 동물을 보면 거부감이 있었지만, 하나의 생명을 살리고 직업이라는 생각으로 나름 열심히 하고자 한다.

우리 소방관들은 예전만 해도 화재 진압 부서라도 긴급한 화재 출동이나 단순 민원업무 등 구분이 없었다. 위험한 상태가 아니라도 시민이 요구하고 원하는 신청이 들어오면 거절할 수가 없다. 그래서 소방의 주 업무인 화재, 구조, 구급 등 재난사고 출동만 할 수 없다 보니 위급하지 않은 단순 민원이나 구조활동에도 많은 시간과 소방력을 쓸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소방 활동에 허점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2013년을 전후로 전국 소방서에서는 단순하고 사소한 안전활동을 전담하는 별도의 생활안전대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 동물구조나 안전지원이 아닌 경우에는 직접 119구조대가 출동하기도 한다. 포획한 동물의 처리도 경우에 따라 달라진다. 길에 버려졌다고 포유류를 대표하는 고양이, 개와 비둘기 등을 무조건 구조하거나 포획하지 않는다. 버려졌거나 잃어버린 것으로 보이는 개나 고양이는 동물보호센터로 인계한다. 지방자치단체 소관부서는 그 사실을 7일 이상 공고하고 10일이 지나면 기증, 재분양, 안락사 등의 절차를 통해 동물들을 처리한다. 길고양이는 구조해 다시 놓아준다. 다른 방법이 없다. 보통 반려(伴侶)의 목적으로 키우던 동물이 큰돈이 들어가는 병이 들었거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돌보기가 어려울 때는 매정하게 버리는 일이 다반사다. 그래서 길고양이란 말도 생겼거니 생각을 해본다. 특히 위험에 처해 있거나 다친 길고양이를 구조하는 일이 상당히 많다. 길고양이는 주인이 키우다 버려진 유기 고양이에 비하여 사납고 거칠어서 포획이나 구조활동에 세심한 주의를 해야 한다. 진화용 장갑은 상당히 두꺼운 소재이지만 간혹 사나운 길고양이의 이빨과 발톱은 장갑을 뚫고 손가락을 물어 다치는 때도 있다.

며칠 전 이른 아침 동물구조 출동으로 현장에 도착하니 큰 고양이 한 마리가 폭 15㎝, 깊이 1.5m의 건물 외벽과 내벽 사이에 끼어 옴짝달싹도 못해 꺽꺽거리며 울어대고 있었다. 동네 주민이 밤새도록 잠을 설쳤다고 여러 번 신고가 들어온 상황이다. 고양이 세 모자의 먹을거리를 수시로 챙겨주는 동네 여성이 최초로 신고를 한 모양이다. 틈새 바닥에는 고개도 제대로 들 수 없는 새끼 두 마리가 울지도 못하고 낑낑거리고 있었다. 어미 고양이를 쳐다보는 작은 생명은 울 기운도 없어 보였다. 벽 사이에 긴 막대를 넣자마자 살고자 하는 어미 고양이는 반사적으로 막대기를 잡았지만, 벽체 사이에 끼인 엉덩이와 뒷다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시 고임목을 벽체 사이에 끼워 공간을 확보해 보았으나 벌어진 공간이 어미 고양이를 더욱더 아래로 내려가게 했다.

다시 고양이의 위치를 파악하고, 건물의 주인과 협의하여 내부 패널 벽체 일부를 부수기로 했다. 고양이가 다치지 않는 위치에서 패널로 된 외벽 일부를 잘라내는 작업을 하고 나서야 어미 고양이와 새끼를 구조할 수 있었다. 어미는 장시간 몸이 낀 상태로 있어 제대로 걷지도 못했고 신체 이상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오랜 시간 각종 오물과 축축한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새끼는 탈진 상태였다. 하지만 위험 상황에서 벗어난 고양이와 새끼는 서로 낑낑대며 비비고, 핥으면서 서로 안부를 확인하는 상황이 눈물겨웠다. 동물병원에 이송하고 돌아오면서 '고양이들이 우리 꼭지처럼 좋은 주인 만나 잘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최근 길에 버려진 고양이의 개체수가 늘어나고 있다. 제대로 관리나 통제가 어려우니 어느 곳이나 지천으로 돌아다니는 현실이다. 특히 길고양이는 동물보호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동물이다. 등록대상동물은 주택 등에서 키우는 개 또는 반려의 목적으로 기르는 3개월 이상의 개로 제한하고 있다. 관리기관이나 단체가 없어 해결방안이 없지만, 법령의 개정으로 시민의 생활에 불편을 가져오는 다른 동물도 포함하여 관리할 필요성은 없는지 궁금하다.

이제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한 시기이고, 강아지와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무책임하게 버리는 행동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 반려동물 또한 하나의 생명이다.

곽원희 중부소방서 기동지휘단 소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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