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호동락-설상훈련] 한라산 장구목 일대 (상)

이번에 가 볼 곳은 제주도 한라산이다. 이번 회에서는 빙벽등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동계 설상 훈련, 설벽 등반,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이런 훈련을 하기 가장 좋은 곳인 한라산 장구목 일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독자들도 TV에서 가끔 나오는 고산등반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에서 산악인들이 장비를 잔뜩 착용하고 헉헉대며 올라가는 모든 것이 하얀 곳, 그런 곳을 가기 위한 전반적인 훈련과 그 대상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요즘은 제주도가 육지와 많이 가까워졌다. 물리적으로 거리가 가까워진 것은 아닐 것이다. 교통이 편리해지고, 왕래가 잦고 쉬워진 데다 인터넷의 발달로 현지 정보도 흔해졌다. 그 덕택에 한라산의 동계산행 인구도 엄청나게 급증했다. 한라산은 우리나라에서 겨울 눈(雪) 산행시 경치가 좋기로 손꼽히는 곳 중 하나이다. 또한 한라산은 외국 등반원정을 앞둔 원정팀들, 혹은 동계훈련을 계획하는 대학산악부팀 등 동계훈련팀들에게도 최고의 설상 훈련 장소로 손꼽힌다. 한라산의 고도 자체가 높은 데다가 섬이라는 제주도의 특성상 한 번 눈이 오면 엄청난 적설량을 나타낸다. 또한 용진각에서 장구목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능선에서 설상 보행부터 설벽 등반까지 다양한 훈련을 소화할 수 있다. 이렇게 훈련하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기에 필자 일행도 불과 일주일 전 이곳에 훈련을 다녀왔다. 그 따끈따끈한 며칠 전의 생생한 기억을 풀어보려 한다.

대구공항에서 출발한 필자 일행은 먼저 공항에서 첫 번째 난관에 부딪혔다. 저가항공을 이용한 관계로 위탁 수하물 무게가 15㎏밖에 허용이 안 되는 것이었다. 위탁 수하물 무게를 15㎏까지 맞추고, 나머지는 기내수하물로 들고 탑승하고, 무거운 겨울용 이중화 같은 경우는 신발 대신 신고 탑승하기로 했다. 훈련을 하기 위한 장비들을 기내용, 위탁용으로 분류하는 것 또한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공항에서 한바탕 짐을 재정비한 후 드디어 제주도에 도착했다. 무게 제한 때문에 식량을 대구에서 가져가지 못해 제주도에서 식량과 연료, 소모품 등을 구입한 후 관음사로 향했다.

한라산을 오르는 길은 영실코스, 성판악코스 등 몇 가지가 되지만 한라산 적설기 훈련을 신청한 모든 훈련팀들은 관음사 코스로만 올라가게 돼 있다. 관음사 야영장 공원관리소에서 훈련계획서와 각서에 날인한 후 등산로로 오른다. 산에서 5박 6일 동안 먹고, 훈련하고, 자야 하기 때문에 짐이 좀 많다. 텐트, 침낭, 훈련장비, 취사장비, 식량, 방한 의류, 여벌 양말, 장갑, 갈아입을 옷은 아예 준비를 하지 않았건만 짐은 막막할 정도로 많다.

배낭 무게가 35㎏ 안팎이나 되는 데다 짐 부피가 사람보다 큰 것이 현실이니 담담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남자 대원의 무거운 배낭은 40㎏도 넘는다. 이 배낭을 들고 관음사에서 용진각까지, 일반 등산객들이 4~5시간이면 오를 거리를 온종일 오른다. 딱 하루만, 베이스캠프 장소까지 딱 하루만 하면 되는 고생인데 이게 만만치 않다. 일반 등산객들은 가벼운 배낭에 간단한 간식, 음료수, 옷가지 한두 개 정도를 넣고 가볍게 오르는데 훈련팀들은 가장 큰 배낭도 모자라서 그 위에 배낭을 하나 더 얹고, 텐트, 매트리스를 덕지덕지 달아매고 올라가니 빠를 수가 없다. 그렇게 힘들게 용진각에 도착한다. 동계 적설기 산악훈련을 하는 훈련팀들은 모두 이곳에 캠프를 차리게 돼 있다. 용진각 오른쪽으로는 장구목, 고상돈 케른 쪽으로 가는 가파른 슬랩(평평하고 매끈하게 경사진 사면)의 하얀 설벽이 보인다. 계곡 쪽에는 눈이 제법 쌓여서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것이 러셀(다져지지 않아 길이 없는 눈밭에서 발자국으로 길을 내면서 진행하는 것) 훈련과 설상 훈련을 하기에 아주 적당한 환경이다.

관음사에서 용진각까지 무겁고 힘든 발걸음을 옮긴 보람이 있다. 텐트를 치고 BC(Base Camp: 베이스캠프)를 꾸리니 힘들었던 하루가 저문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설상 훈련 일정이므로 저녁을 든든히 먹고 침낭 안으로 들어간다. 코끝까지 찡한 냉기가 백록담에서부터 흘러내려 와 용진각을 감싼다. 조용히 침낭 지퍼를 올리며 잠을 청한다.

김재민(대구산악연맹 일반등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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