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글픈 서민 역주행 대한민국] 서민 고용정책

50만원 vs 300만원…1천만원 대출 年 이자도 '親부자 反서민'

개인 신용등급 9등급의 한 직장인이 시중은행 대출창구를 찾아 상담했지만,
개인 신용등급 9등급의 한 직장인이 시중은행 대출창구를 찾아 상담했지만, '대출 불가' 판정이 나 고개를 떨어뜨렸다.

서민들에게 현 대한민국의 금융정책은 야속하기만 하다. 금융권에서 정한 신용등급(10등급) 자체를 아예 없애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1천만원을 빌릴 경우, 신용 1등급 최상류층은 1년 이자가 50만원 안팎인데 반해 신용 10등급의 서민 극빈층은 300만원 안팎의 이자를 내야 한다. 아예 금융권과 거래조차 하지 못하는 신용불량자들은 300만∼500만원의 이자를 내야 하는 무허가 대부업이나 사채를 써야 할 형편이다.

이런 고금리의 이자를 내면서 서민들이 헤어날 길은 없다. 일반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일용직으로 일하는 근로자들이 대체로 더 비싼 이자를 내며 근근이 살아간다. 연간 2천만원을 버는 저신용자가 갑자기 목돈이 필요해 1천만∼2천만원을 은행권에서 빌린다고 가정하면, 원금은커녕 이자 때문에 가처분소득은 '0원'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대구의 한 직장인 저신용자의 한탄

10여 년 전 타지에서 대구로 온 직장인 강용술(가명'43) 씨는 현재 연봉이 3천만원 정도 되지만 신용등급은 9등급이다. 제1금융권 대출은 더 이상 대상이 못된다.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에서 1천만원 짜리 마이너스 통장을 쓰고 있는데, 한도가 거의 다 찼다. 마이너스 통장의 이자율도 신용등급이 좋지 못해 매년 오르고 있다. 현재는 이자만 12∼13%를 내고 있다. 제2금융권 대출도 있다. 고려저축은행에서 1천만원을 대출받았는데, 이자율이 25%에 이른다. 이렇게 강 씨가 내는 금융권 이자만 매월 50만원이 넘는다. 지난해부터는 학자금 대출의 원금까지 갚아야 할 처지라 매월 금융 비용만 100만원이 통장에서 빠져나간다.

그는 "5년 전 아버지가 암에 걸려 2천만원 가까운 돈이 필요했고, 당장 통장에 돈이 없어 은행에서 빌렸는데 이후로 신용등급(6등급→9등급)도 계속 나빠졌다"며 "한 번 어려워지자 신용등급을 올릴 방법이 없다. 매월 200만원은 집세와 교육비, 우리 가족 생계비로 쓰이니 통장 잔고에는 수년째 몇십 만원만 남아있다"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강 씨와 같은 이들이 바로 '워킹 푸어'(Working Poor)다. 직장은 있지만 사는 것은 가난한 서민들과 다를 바가 없다. 맘 편히 가족들과 근사한 곳에서 외식할 처지도 못된다. 그는 향후 경제적으로 넉넉해지는 길은 '로또복권'밖에 없다고 믿고 있다.

◆국민의 3분의 2, 신용 중'하등급

개인 신용등급은 금융권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다. 주민번호 등 개인정보를 입력하면 그 사람의 신용등급을 비롯해 은행에서 그 고객을 평가하는 항목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1∼3등급 정도면 별 무리 없이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필요한 서류도 더 간단하다. 심지어는 고객의 사회적 직위에 따른 신용대출 차별도 있다.

금융권의 신용등급은 가진 자들에게 완벽하게 유리한 제도다. 한 번 저신용자로 떨어진 사람들은 5년이나 연체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에 신용등급을 올리기가 어렵다. 햇살론, 미소금융 등 정부의 저신용자들을 위한 대출조차도 이 신용등급 때문에 가로막힌다.

대한민국 국민의 3분의 2는 중'하등급의 신용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 3대 신용평가기관의 하나인 코리아 크레딧뷰로(KCB)가 2010년 10월 말을 기준으로 대한민국 경제활동 인구 중 신용등급을 보유한 3천895만 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신용이 중'하등급(4∼10등급)에 해당하는 수가 2천733만 명이나 됐다. 상급에 해당되는 1∼3등급은 1천162만 명이었다. 다시 말하면 연 10% 이내의 이자로 대출이 가능한 사람이 1천만 명 남짓이라는 얘기다. 결국에는 나머지 3천만 명 가까운 중'하등급 국민이 바로 서민들이다. 서민 중에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이들이 드문 이유이기도 하다.

◆시중은행도 금리 차등, 최대 2.7배

시중은행 일반 신용대출의 신용등급별 금리 격차가 최대 2.7배나 됐다. 이 격차는 해마다 더 벌어지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이 같은 금리 양극화가 신용도가 낮은 서민들의 이자 부담을 가중시키고, 신용도를 더욱 하락시키는 악순환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전국은행연합회가 지난해 5월에 공시한 '16개 국내 은행의 신용등급별 일반 신용대출 금리 현황'에 따르면 1∼3등급의 우량 고객들의 평균 금리는 연 4.64%인데 비해 7∼10등급인 저신용자인 경우 연 8.93%로 2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북은행의 경우 1∼3등급의 평균 금리는 4.80%인데 7∼10등급은 12.78%로 격차가 2.7배에 달했다. 지역의 대표 은행인 대구은행도 1∼3등급은 5.04%, 7∼10등급은 9.6%로 2배 가까운 금리 차등을 뒀다.

고금리로 인한 서민들의 이자 부담은 연체율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8월 말 가계의 신용대출 연체율은 1.07%로 12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개인 신용등급은 주택 담보대출에도 반영된다. 신용대출과 비교하면 금리 격차가 작은 편이지만 대출금액이 늘어날 경우 저신용자의 이자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서민들이 많이 활용하는 마이너스 대출의 금리도 신용등급에 따라 최대 2배까지 차이가 난다. 등급별로 적용되는 은행의 평균 최저금리는 4∼6%, 최고금리는 7∼12%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획취재팀 권성훈 기자 cdrom@msnet.co.kr

신선화 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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