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CCTV가 능사는 아니다

참 많이도 맞았다. 우리들 학창시절 이야기다. 옆 친구와 쑥덕거리다 "너 나와!" 소리에 불려나가 양쪽 볼때기가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맞았다. 쉬는 시간 복도에서 떠들다가 수업종 소리에 선생님 별명을 부르며 "○○○ 온다!"고 고함쳤다가 40여 분간 교실 온 사방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맞기도 했다.

한 대라도 덜 맞아보겠다고 개소주집 앞에서 목줄 팽팽하게 버티는 개처럼 낑낑거리다가 "어디서 반항하노?"라며 눈을 부라리는 선생님에게 원 없이 매를 벌어보기도 했다.

그때 맞던 모습을 부모님이 봤더라면 학교를 뒤집어놓았을 거다. 다행히 그때는 CCTV도 없었고, 동영상을 몰래 찍을 휴대폰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맞을 빌미를 줬다면 집에 가서 맞았다는 소리도 못했고, 행여 억울하게 맞았다 싶어 집에서 부모님에게 말씀드려도 "네가 뭐라도 잘못했겠지"라며 오히려 머리를 쥐어박혔다. 지금부터 30년도 더 지나버린 이야기다.

자식이 맞고 들어오면 부모는 피가 거꾸로 치솟는다. 다 큰 자식도 아니고 제 몸 건사하기도 어려운 아이가 무방비 상태로 두들겨 맞았다면 부모 속은 새까맣게 타버린다. TV만 켜면 힘없이 나동그라지는 아이 모습이 격투기 중계하듯 수없이 반복된다. 얼핏 봐도 거구인 교사가 온 힘을 다해 날리는 손찌검은 끔찍할 정도다.

인천 어린이집 폭행사건 이후 부모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폭발했고, 어린이집에 몰려간 부모들은 "왜 때렸느냐?"며 따져 묻다가 분에 못 이겨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비슷한 피해 신고도 잇따르고 있다.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22개월 된 아이의 입에 휴지'물티슈 등을 쑤셔넣은 40대 어린이집 원장이 구속됐고, 밥 먹던 5살 아이가 토하자 조리사가 소리를 지르며 토사물을 먹으라고 강요했다는 진정도 제기됐다. 20대 유치원 교사는 아이들의 배와 허벅지 등을 꼬집고, 아이들이 장난치면서 교사의 다리를 붙잡으면 귀찮다는 듯이 걷어찼다는 이유로 고발당했다.

정치권도 벌집 쑤셔놓은 듯 시끄러웠다. '연말정산 세금폭탄' 문제가 터지면서 국민적 관심이 분산된 틈을 타 한숨 돌리긴 했지만 행여 어린이집 사태로 촉발된 파편이 자기 쪽으로 튈까 봐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았다. 결론은 CCTV 설치란다. 나중에 학교 폭력이 불거지면 교실마다 설치하고, 가정 폭력 문제가 이슈가 되면 안방에 설치할지도 모를 일이다. 대책 소식을 듣고 가장 반가워한 사람은 부모들이 아니라 CCTV 생산업체와 설치업체라는 말도 들린다.

온 국민이 감시자가 되면 폭력이 사라지고 범죄가 줄어들까. 과연 그것이 답일까. 몇 해 전 통계치를 봤더니 전국에 설치된 민간 CCTV만 250만~450만 대라고 한다. 이렇게나 많았나 놀라기도 했지만 정확한 설치 대수조차 모른다는 사실이 더욱 걱정스러웠다.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예언했던 '빅 브라더'의 시대가 찾아왔다. 소설 속 주인공 윈스턴은 좁디좁은 방구석의 감시카메라 사각지대에서 비밀일기를 쓰며 '빅 브라더' 체제에 대한 반란을 꿈꾸었다. 사각지대가 없었더라면 윈스턴은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히지 않고, 비극적 결말을 맞지도 않았을 것이다. 김치 조각 뱉었다는 이유로 보육 교사의 손찌검에 나동그라진 아이의 모습을 담은 것은 방송국 카메라도, 휴대폰도 아니라 바로 어린이집 CCTV였다. 어린이집 화장실에 몰래 데려가 때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 화장실 CCTV 설치법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때리나 안 때리나 지켜보겠다는 으름장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제발 양은냄비 끓듯이 부랴부랴 민심달래기식 대책을 내놓는 일은 사라졌으면 좋겠다. 고단한 삶 속에 맞벌이 부부들은 지쳐간다. 지친 부모를 대신해 아이를 돌봐주고 있는 그 사람도 결국 삶의 무게에 짓눌린 맞벌이(또는 예비) 주부다. 물론 아무리 힘들어도 때린 짓은 잘못이다. 엄정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 벌을 내리고 감시한다고 해서 결코 범죄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데도, 이런 대책이 대책이랍시고 나오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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