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골이 깊다.
음식점 등 상인들은 "불황도 이런 불황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서민들의 벌이가 시원찮으니 자연스레 외식 수요가 줄고, 이 여파로 크고 작은 음식점들이 휘청거리거나 문을 닫고 있다. 급기야 음식점 업주들은 손님에게 내놓는 물수건마저 없애거나 주문량을 줄이면서 버티고 있다. 아니 물수건을 사용할 손님 자체가 줄어버렸다는 것이 맞는 표현. 음식점 등으로 배달되는 물수건은 또 하나의 서민경제 지표. 본지 기자는 물수건 배달업체 직원을 따라나서 불황의 골을 직접 확인해봤다.
28일 오전 8시 30분. 대구에서 가장 많은 식당에 물수건을 공급하는 한 물수건 업체 직원 A(52) 씨를 만나 배달처로 향하는 그의 트럭에 올랐다. 1t 트럭에 실린 물수건은 모두 4천800장. 이를 30여 곳의 음식점에 배달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대구 남구 앞산네거리의 한 음식점. A씨의 방문에 이곳 주인이 앓는 소리부터 했다. "손님이 없어도 너무 없어요. 물수건 3만원치 주문하기도 손이 덜덜 떨린다니깐."
지난해 1월만 해도 하루 320장의 물수건을 공급했던 이곳은 점차 손님이 줄면서 주문량이 줄었고 요즘은 2, 3일에 한 번 448장씩 공급하고 있다.
오전 11시쯤 도착한 수성구 들안길의 한 고깃집. A씨는 "이 음식점은 장사가 잘될 때 월 매출이 1억원을 수시로 넘었다. 단체손님이 자주 오다 보니 물수건을 하루 500개씩 들였다"며 "지금 이곳은 이틀마다 300장을 주문하는데, 그나마도 남은 게 많다며 100장, 200장만 주문할 때도 있다"고 했다.
이곳 주인은 "예전엔 고기가 모자라 어쩔 수 없이 손님을 못 받을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절여 놓은 돼지갈비를 다 팔지 못해 가족과 직원이 먹어 없앤다"며 "장사 안 되는 꼴을 내비치기가 민망해 물수건 주문을 늦추곤 한다"고 했다.
A씨는 올해만큼 음식점 주인들의 눈치를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음식점을 방문하면 업주들 표정이 어둡습니다. 저더러 장사도 안 되는데 왜 또 왔느냐고 묻는 것만 같아요."
A씨에 따르면 최근 물수건 업체와 음식점 간 '갑을 관계'도 역전됐다. 불황의 골이 너무도 깊어진 탓. 외식 경기가 좋았던 10여 년 전에는 음식점들이 손님에 대한 서비스 질을 높이고자 앞다퉈 물수건을 주문했다. A씨가 새로 개업한 음식점을 찾아 주인에게 명함만 내밀어도 다음 날 주문이 들어올 정도였으니 그땐 어깨에 힘도 들어갔다.
지금은 오랜 거래처마저도 폐점하거나 주문량을 줄이는 실정이니 새 거래처 확보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기존 거래처에서 '그만 가져오라'는 말이 나올까 적잖게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배달할 때마다 음식점 주인들 기분을 맞춰야 하고, 없는 형편에 거래처 매상이라도 올려주자 싶어 일부러 외식도 한다고 했다.
A씨가 다니는 물수건 업체의 거래처는 지난해 2천여 곳에서 올해 1천700곳 정도로 줄었다. 올 1월 매출도 지난해 대비 30% 감소했다.
거래처가 줄어드니 직원 월급도 줄었다. 2000년대 초반 입사할 당시 A씨의 월급은 300만원을 웃돌았다. 지금은 200만원도 채 안 된다. 예전처럼 하루에 거래처 200곳을 들르느라 10시간 넘게 일할 필요도 없다. 지금은 매일 오전 9시에 출근해 8시간만 돌아다니면 거래처 120곳에 배달을 마칠 수 있다.
A씨의 배달 직원 동료는 10명에서 5명으로 줄었다. 줄어든 월급을 견디지 못해 다들 제 발로 떠났다. 남은 5명이 갑자기 늘어난 거래처를 나눠 맡고 있지만 이동 거리만 늘었을 뿐 총 주문량은 오히려 줄었다.
A씨는 "두 딸 모두 시집보내려면 10년은 더 일해야 하지만 체력이 달리는 데다 젊은 음식점 업주들이 나이 든 배달직원을 어려워하는 통에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일도 관둬야 할 것 같다"며 "어쨌든 경기가 빨리 좋아져 음식점에 도착했을 때 업주가 왜 이리 늦었느냐며 호통(?)치는 소리라도 듣고 싶다"고 했다.
홍준헌 기자 newsfor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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