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힘은 놀랍다. 박노해 시인의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시집 제목처럼 사람은 삭막한 곳에서도 희망이라는 꽃을 피워내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사람 냄새'가 좋아 대구에 둥지를 튼 중국인이 있다.
경북대 의학전문대학원에서 성형외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티옌루루(26) 씨다. 4년 전 석사학위 취득을 목표로 대구 유학길에 올랐던 루루 씨. 이제는 대구에서 가정을 꾸리고 메디시티 대구의 주역이 되고 싶어한다. 대구 사람에게서 '대구에 있을 희망'을 찾았다는 그를 16일 오후 경북대병원 성형외과 외래병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황량했던 대구, 이제는 제2의 고향
루루 씨는 중국 동남부에 위치한 허난성 저우커우(周口)시에서 태어났다. 기자가 학창시절 중국 허난성 정저우(鄭州)에서 잠시 머물렀다고 소개하자, 활짝 웃으며 손을 내민다. "우리 동향이네요." 사실 루루 씨는 처음엔 자신의 고향을 허난성 정저우라고 소개했다. 고향에 대해 거짓말(?)을 한 이유를 물어보자 "작은 도시라서 사람들이 잘 몰라 고향을 물어보면 '정저우'라고 말한다"고 귀띔했다. 저우커우시는 정저우 아래에 있다. 작은 도시라고 말했지만 그의 고향은 대구시와 경상북도를 합한 정도의 면적에다 인구는 대구시보다 4배 이상 많다. 대국(중국)의 한 작은 도시에서 한국의 대도시로 유학을 온 셈이다.
루루 씨는 고향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뒤, 의사인 두 부모의 바람대로 천진의과대에 진학했다. 학부과정을 마친 뒤에는 베이징의 한 종합병원에서 1년 동안 인턴을 했다. 이후 대학원 진학을 희망한 그가 발걸음을 옮긴 곳이 바로, 한국의 대구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어요. 이왕 공부를 할 거라면 중국과는 다른 문화 속에서 해보고 싶었죠."
왜 하필 대구일까. 당시 루루 씨의 유학 후보지는 호주-일본-한국 순이었다. 하지만 호주는 중국과 거리가 너무 먼 탓에 선택하기 어려웠고, 일본은 당시 일어난 큰 지진 때문에 부모가 반대했다. 결국 마지막 후보지였던 한국이 유학지로 당첨됐다. 한국에서도 어느 도시를 갈지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본 '교육의 도시, 대구'라는 소갯글 하나에 마음이 끌렸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다. 한국에 지인 한 명 없었지만, 무작정 대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어는 한마디도 못하던 때였다. 자신감 하나면 충분했다.
부푼 가슴으로 찾은 대구의 첫 모습은 '황량' 그 자체였다. 2010년 겨울이었다.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만큼 대구공항의 주변 풍경도 썰렁했다.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마치 시골에 온 듯한 기분이었죠. 순간 '나 잘못 온 건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휙 하고 스쳤어요. 하하."
그리고 4년이 흘렀다. 루루 씨는 경북대 의학전문대학원 정형외과 석사를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고, 2013년 경북대의대 성형외과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이제 그는 대구를 '제2의 고향'이라 부른다. 어렵다는 존댓말과 대구 사투리까지 능수능란하게 구사한다. 털털한 성격과 특유의 쾌활함이 영락없는 대구 아가씨다. 4년간 대구에서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대구의 매력은 인력(人力)이죠!
처음 대구에 왔을 때 루루 씨는 '외톨이'였다. 대학원 합격의 기쁨도 잠시. 한국말이 서툴었던 그가 낯선 외국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밥도 교내 식당에서 혼자 먹어야 했고, 전공수업도 전전긍긍하며 들어야 했다. 밤에는 외로움에 떨어야 했다. 주말에는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아무도 저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에 있어야 할지 말해주지 않았어요. 그땐, 제가 학교에 '남아있는 외톨이' 같았어요."
루루 씨는 그렇게 힘들게 대구에서 1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루루 씨 앞에 거짓말처럼 '키다리 아저씨'가 나타났다. 당시 경북대 의대 이비인후과에서 근무했던 박준식 교수(현 대구가톨릭대 근무)다. "여느 때처럼 교내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었는데 교수님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줬어요. 교수님도 미국에서 혼자 공부했던 적이 있어서 제 기분을 잘 안다며 앞으로 자주 보자고 말씀하셨죠. 그때 처음으로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든든했죠."
박 교수를 만난 뒤 루루 씨에게는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박 교수는 루루 씨를 종종 지인들과 함께하는 식사자리에 초대했다. 그때 알게 된 대구 사람들은 그를 가족처럼 대해줬다. '절친'(절친한 친구)도 생겼다. 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루루 씨는 대구에 정을 붙여갔다. 여유가 있는 날에는 친구와 함께 대구 시내로 나가 맛집 투어를 다녔다. 주말에는 차를 타고 경주'포항'영천 등 대구 근교로 바람을 쐬러 가기도 했다. 지난해 마지막 날은 지인과 함께 평화시장에서 통닭과 '막사'(막걸리와 사이다를 섞은 술)를 먹으며 보냈다고 자랑했다.
루루 씨가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대구를 떠나지 않은 것도 그동안 정을 쌓은 친구와 지인들 덕분이다. 서울의 유명 종합병원에서 러브콜이 왔지만 그는 대구에 머물기로 했다. "대구 사람만큼 좋은 사람들을 다른 곳에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정든 사람들과 헤어지기도 싫었고요.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대구가 최고예요."
◆'메디시티 대구'를 빛낼 의사가 내 꿈
루루 씨는 대구가 '살기 좋은 도시'라고 말한다. 그는 첫 번째로 볼거리가 많다는 점을 꼽았다. 의아했다. 대구는 한때 '관광의 불모지'로 불리던 도시였다. 하지만 그가 느낀 대구는 달랐다. "대구에 근대골목 투어부터 이월드, 팔공산 도립공원, 수성유원지 등 놀러 갈 곳이 매우 많아요. 그중 대구선아양공원에 위치한 아양기찻길을 가장 좋아해요. 기찻길 위에 있는 카페에서 노을을 바라보고 있으면 여기가 천국인가 싶어요."
두 번째는 마음만 먹으면 바다와 산 어디든 놀러 갈 수 있는 접근성이다. 고향에서는 바다를 한 번 보려면 차를 타고 반나절은 가야 했다. 특히 '산해진미'(山海珍味)를 가까운 산지에서 맛볼 수 있다는 점은 식도락 여행을 좋아하는 그에겐 최고의 장점이다. 루루 씨는 지난해 7번 국도를 따라간 영덕에서 맛본 대게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세 번째는 '메디시티 대구'의 잠재력이다. 그는 "대구는 의료기술도 뛰어나고, 다른 지역에 비해 저렴한 비용으로 최상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도시"라고 강조했다. 루루 씨의 꿈은 '메디시티 대구'에서 개원하는 것이다. 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병원에서 한국인은 물론 대구를 찾는 중국인 환자들을 돌보고 싶어한다.
"저에게만 다정다감한 대구 남자를 만나 결혼도 하고 개인병원도 열고 싶어요. 대구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고 많은 도움을 받았던 만큼, 저도 '메디시티 대구'에 큰 보탬이 되고 싶어요." 그가 만들어 갈 대구의료의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다.
기획취재팀 신선화 기자 freshgirl@msnet.co.kr
사진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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