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영탁 하사 유품 전달이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빠 추운 데서 고생했어요. 부디 좋은 데 가이소…."
6'26전쟁 때인 1951년 1월 15일 전사한 청도 출신 고 김영탁 하사가 65년 만에 애타게 기다리던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유해발굴단)은 28일 오후 김 하사의 고향집인 청도 청도읍 안인리를 방문해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를 가족에게 전달했다. 유해발굴단은 통지서, 국방부 장관 위로패와 함께 유해 수습 때 관을 덮은 태극기, 인식표, 버클, 전투복 단추 등 유품을 김 하사의 여동생 김경남(84) 할머니에게 전했다.
김경남 할머니는 "오빠를 찾을 수 있다는 한가닥 희망을 안고 있었는데, 오늘이 오빠 기일이라 더욱 뜻깊고, 이제야 가슴속에 품었던 한을 풀 수 있게 됐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김 할머니는 "이제 고향에 왔으니 부디 내외간에 좋은 얘기 나누고 행복해야 한다"며 두 손을 모아 빌었다. 김 할머니는 오빠가 군대에 가기 전 심은 감나무가 대문 앞에 그대로 있다며 감나무를 어루만졌다.
장조카 김준섭(43) 씨는 "마침 음력 12월 9일인 오늘을 큰아버지 기일로 정해 제사를 지내고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100번째 신원확인 통보를 받아 더욱 의미 있는 것 같다"고 했다.
2남 2녀 중 장남이었던 김 하사는 23세 때인 1950년 9월 20일 입대해 이듬해인 1951년 북한군 침투부대 격멸작전에 투입됐다. 육군 9사단 29연대 소속으로 강원도 정선 석이암산에서 강릉 자병산 일대 차단선을 점령해 북한군을 격멸하는 임무를 수행하다 1월 15일 전사했다. 국방부는 김 하사가 혁혁한 전공을 세운 것을 인정해 1954년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했다.
유해발굴단은 2013년 9월 강원도 동해시 망상동 일대에서 발굴 작업을 벌인 결과 전사자 7구의 유해를 발굴했고, 이 중 2구의 신원을 확인했다. 유해발굴단은 현장에서 김 하사의 군번 '1136180'이 선명하게 새겨진 인식표와 버클, 단추 등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유해발굴단은 이를 바탕으로 유전자 감식 등 15개월간의 확인 작업을 거쳐 이날 유가족에게 통보했다.
유해발굴단 관계자는 "김 하사의 유해는 올 상반기 중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것이며, 치열한 전투에서 큰 전공을 세운 김 하사를 기다려준 가족에게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날 신원확인 통보식에는 김 하사의 유가족 등 10여 명이 참석했으며, 유해발굴단 및 50사단 관계자도 함께했다. 이승율 청도군수는 "유가족들의 기다리는 마음과 정성이 지극했기에 기일에 극적으로 돌아오게 됐다"면서 "이들의 희생이 나라발전의 밑거름이 되었기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유해발굴단은 15년간 진행된 유해발굴사업으로 국군 전사자 8천477구를 발굴했으며, 이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100명의 유해가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 유전자 시료채취에 동참한 유가족은 3만여 명으로 아직 수습되지 않은 유해 13만여 구에 비해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유해발굴단 관계자는 "유해 소재 제보와 유전자 시료채취에 적극 동참해 달라"면서 "마지막 한 분의 유해를 찾을 때까지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청도 노진규 기자 jgro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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