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완', '정은희'.
자식 가진 부모라면 잊지 말아야 할 이름이다. 부모는 아이 일이라면 한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인천 어린이집 학대사건의 동영상을 보며 많은 부모들이 분노했다. 여자 보육교사의 폭행에 네 살짜리 여자 어린이가 나동그라졌다. 그 아이가 곧 일어나 음식물을 주워담는 장면은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그 아이의 부모는 CCTV라도 있었기 때문에 보육교사의 폭행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김태완 군과 정은희 양의 부모는 사정이 다르다. 십수 년째 자신들의 아들과 딸이 죽은 진실을 알지 못한 채 가슴에 한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1999년 5월 대구에서 학원을 가던 김태완(당시 6세) 군은 온몸에 황산을 뒤집어쓰는 테러를 당해 사건 발생 49일 만에 숨졌다. 대구지검은 지난해 7월 대구 동부경찰서가 '기소중지' 의견으로 송치한 황산테러 사건에 대해 기소중지 처분하면서 사건의 공소시효는 끝났다. 다만 태완 군의 부모가 평소 용의자로 지목해 온 동네 주민을 상대로 대구고법에 낸 재정신청은 심사가 진행 중이다. 대구고법이 재정신청을 인용할 경우 검찰은 기소해야 한다. 반면 기각결정을 내리면 용의자에 대한 공소시효도 끝난다. 태완 군의 부모는 가슴을 졸이며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정은희 양은 1998년 10월 대구 구마고속도로 위에서 23t 화물차에 치여 숨졌다. 대학 1학년생으로, 꽃다운 나이인 18세였다. 시신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됐지만 시신의 위아래 속옷이 없었다. 당시 사고 현장에서 30m 떨어진 풀숲에서 정 양의 속옷이 발견됐지만, 당시 사건을 담당한 경찰은 정 양의 죽음을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했다. 정 양의 아버지는 수사기관을 비롯해 청와대에 민원을 넣었고 청와대는 이 민원에 대해 대구지검에 재조사 지시를 내렸다. 이후 검찰은 정 양이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 A씨 등 스리랑카인 3명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발표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며 15년 만에 억울함을 호소한 유족의 한을 풀어준 대표적 민원 해결사례로 정 양 사건을 꼽았다. 하지만 신년 기자회견이 있은지 몇 달 뒤 열린 1심 재판에서 A씨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검찰이 제시한 증거가 혐의를 입증하기에는 불충분하다고 판결했다. 검찰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사실과 죄를 입증하기에는 충분한 증거가 없음을 알면서도 대통령의 한마디에 무리하게 기소를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현재 A씨에 대한 항소심이 열리고 있지만 검찰은 여전히 뚜렷한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 양의 아버지는 검찰을 믿지 못하고 전면 재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법원과 검찰 인사가 곧 있을 예정이다. 담당 재판부와 검사도 인사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정 양 사건도 서서히 잊힐 것이다.
1년 전 '자화자찬'했던 박 대통령이 아직도 '대구 여대생 정은희 양 사건'을 기억하고 있을까? 정 양의 아버지는 여전히 경찰'검찰'국가의 무능과 무관심 속에서 딸의 죽음과 얽힌 진실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직접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법학을 독학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국민과 진정으로 소통하는 방법은 딸을 잃은 아버지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딸을 잃은 아버지의 재수사 요구에 단순 교통사고라며 일축한다면 국민과의 소통은 요원하다. 대통령의 지시에 무리하게 기소했다가 무죄 판결로 망신을 당한 검찰도 권력과 여론의 눈치만을 살폈다는 비판의 멍에를 벗기 힘들다. 이 사건에 대한 철저한 재수사를 촉구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정 씨 같은 아버지와 정 양 같은 딸 처지에 놓일 수 있다. 자식을 잃고 십수 년째 진실을 찾고 있는 부모의 한을 대통령과 검찰이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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