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업했다고 지원 끊겨 가계부 '적자'…누가 일하려 하겠나

복지 사각지대 내몰리는 장애인들

지적장애인 언니를 돌보던 20대 여성의 자살 사건과 관련해 대구 지역 장애인단체들이 29일 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 10여 명도 국화꽃을 들고 이 자리에 참여했다. 한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지적장애인 언니를 돌보던 20대 여성의 자살 사건과 관련해 대구 지역 장애인단체들이 29일 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 10여 명도 국화꽃을 들고 이 자리에 참여했다. 한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몇 시간 돌봐준다고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도 않구요."

최근 지적장애인 언니를 돌보던 20대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장애인 가족의 실상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드러내놓지는 않지만 장애인이 있는 가족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치료'재활에 드는 비용은 물론이고 가족 중 한 명은 하루 종일 장애인 옆을 지키며 돌봐야 해 일자리도 갖기 쉽지 않다.

◆빈곤으로 몰아넣는 사회안전망

지적장애 1급인 아내를 돌보는 지체장애 3급 김장수(가명'74) 씨가 차리는 밥상에 올라오는 건 밥과 김치뿐이다. 겨울이 끝자락을 보이지만 여태 보일러는 한 번도 틀어보지 못했다. 그저 작은 전기장판 하나에 두 사람은 이 겨울 몸을 녹였다. 월 50만원 남짓한 장애인연금과 김 씨 앞으로 나오는 20만원의 기초연금이 둘의 한 달 생활비 전부다.

기초생활수급비라도 받아보려 여러 번 신청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주민센터는 부양의무자인 아들이 근로능력이 있고 현재 돈을 벌고 있어 요건이 맞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하지만 아들은 이미 20년 전 부모와 연을 끊고 집을 나가 연락조차 닿지 않는다.

김 씨는 "몇 년 전까지 폐지를 주워 반찬 값을 했는데 이제는 몸이 다 망가져서 집사람 밥도 겨우 챙겨준다. 요즘에는 밤에 잠도 못 잘 만큼 무릎이 아프지만 돈이 들까 봐 병원을 가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장애로 빚어진 빈곤의 늪은 깊다. 김 씨처럼 근로능력이 없지만 부양의무자 요건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하거나 어렵사리 일자리를 구해도 각종 지원이 끊겨 차라리 일을 하지 않는 게 낫다. 장애인과 그의 가족이 빈곤을 벗어나려 해도 빠져나올 수 없는 구조다.

2년 전부터 복지관에서 일하고 있는 지체장애 1급 이모(29) 씨. 일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 각종 지원이 끊어지면서 심각한 생활고를 겪게 됐다. 취업 전 월 60만원가량의 기초생활수급비와 교통안전공단재활지원금 등을 포함해 한 달 110만원을 받았지만, 취업 후 한 달 120만원가량의 월급이 1인 가구 최저 생계비(월 60만원)를 훌쩍 넘어서는 바람에 수급비는 물론 각종 지원금이 끊겼다. 더욱이 무료였던 의료비와 교통비 등도 부담하게 됐다. 그렇게 50만원을 쓰면 남는 돈은 70만원. 일을 하기 전보다 매달 40만원이나 적은 돈으로 생활을 꾸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 씨는 "월급이 160만원은 돼야 예전만큼 생활이 되는데 움직임이 불편한 장애인에게 그런 일자리는 흔치 않다"며 "일한다는 자부심으로 생활하고 있지만 생계유지가 너무 힘들어 일을 그만둬야 할지 고민된다"고 했다.

◆가족의 몫인 장애인 돌봄

오롯이 집에서 장애인을 돌봐야 하는 가족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은 심각하다.

뇌병변 1급 아들을 집에서 돌보고 있는 김모(54) 씨는 몇 년째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다. 김 씨의 생활은 아들에게 맞춰져 있다. 아들의 기저귀를 갈고, 씻기고 먹이는 일이 반복돼 다른 일은 할 수 없다. 10대 후반의 아들을 매일같이 안아서 옮기다 보니 관절염까지 앓게 됐다.

최근에는 한밤중에 깨어난 아들이 계속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이웃들로부터 쓴소리까지 들어야 해 김 씨의 우울증은 심해지고 있다. 이웃들은 "이사를 가라" "아들을 장애인시설로 보내라"고 쉽게 말을 내뱉지만, 김 씨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임대아파트에 살아 마음대로 이사를 갈 수도 없고, 장애인시설은 아들을 맡았다가도 며칠 만에 데려가라며 돌려보낸다.

김 씨는 "좀 더 전문적으로 돌봐주는 시설에 보내고 싶지만 소리를 지르고 몸부림이 심한 아들을 아무 곳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정부가 중증장애인의 활동보조 급여를 지원하는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용 장애인들은 지원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24시간을 누워서 지내야 하는 지체장애 1급 정모(60) 씨는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활동보조인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은 하루 5시간 정도. 나머지 19시간은 62세 아내의 몫이다. 아내도 당뇨병과 고혈압 등을 앓고 있는데다 최근에는 허리디스크 때문에 고생하고 있어 활동보조인이 떠나고 나면 앞이 막막해진다.

활동보조인이 좀 더 머물러줬으면 좋겠지만 장애인이 혼자 살거나 18세 미만, 65세 이상 장애인 가족구성원인 경우에만 이런 지원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정 씨는 "아내가 65세가 되려면 3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데 그동안 아내가 버텨줄지 모르겠다"며 "활동보조인을 몇 시간만이라도 더 이용할 수 있다면 나나 아내나 조금은 생활이 수월해질 것이다"고 했다.

김봄이 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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