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옛날에도 '불금'이 있었다는데…궁궐 밖 삶의 현장 아하!

뜻밖의 한국사/김경훈 지음/페이퍼로드 펴냄

김홍도의 서당 그림. 조선시대 아이들은 글자를 익힌 후 맨 먼저 동몽선습과 명심보감을 배웠다. 학문을 배우기 전에 먼저 인간의 도리부터 배웠던 것이다.
김홍도의 서당 그림. 조선시대 아이들은 글자를 익힌 후 맨 먼저 동몽선습과 명심보감을 배웠다. 학문을 배우기 전에 먼저 인간의 도리부터 배웠던 것이다.

왕이나 궁궐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시콜콜한 한국사를 다룬 책이다. 왕조실록은 다루지 않았지만 우리 선조들의 삶을 채웠던 이야기들이다. 오늘날 '불금'처럼 남녀노소가 어울려 밤새워 놀던 이야기, 서당 훈장의 월급, 선조들의 목욕습관, 질투심으로 무서운 사디스트로 변한 선비의 아내, 근친혼, 왕을 귀양 보낼 정도로 셌던 내시의 힘 등 지금까지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내용이다.

세종 9년. 집현전 관리 권채는 종이었던 덕금을 첩으로 삼았다. 본처는 덕금을 괴롭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어느 날 덕금의 할머니가 아프다는 전갈에 덕금은 잠시 집에 다녀오겠다고 허락을 구했다. 권채가 허락하지 않자 덕금은 몰래 할머니 집에 다녀왔다. 본처는 "덕금이 다른 남자와 간통하기 위해 몰래 집을 빠져나갔다"고 거짓으로 일러바쳤다. 화가 난 권채는 덕금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쇠고랑을 채워 방에 가뒀다. 남편의 분노를 확보한 본처는 본격적으로 덕금을 괴롭혔다.

처음에는 칼로 죽이려고 했으나 남들이 알까 두려워 서서히 죽이는 방법을 택했다. 음식을 주지 않고 똥오줌을 먹인 것이다. 구더기가 생긴 똥오줌을 덕금이 먹으려 하지 않자 항문을 침으로 찔러가며 억지로 먹게 했다. 이렇게 수개월이 흘러 덕금은 거의 죽음에 이르렀다. 그러나 마침 고발하는 사람이 있어 이 잔인한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권채는 좌천되었고, 부인 정씨는 곤장 아흔 대를 맞는 형벌에 처해졌다.

여인들이 희고 깨끗한 얼굴을 선호해서 미안수(로션)나 꿀을 발랐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실은 남자들도 용모에 무척 신경을 썼다고 한다. 분을 바르기도 했지만 가장 큰 멋내기는 향료 주머니, 즉 몸에서 향기가 나도록 향낭(香囊)을 달고 다닌 것이다. 향낭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꾸준히 유행했다. 신라의 남자들은 신분에 관계없이 향낭을 차고 다녔다. 종교 행사나 제사 때 향료를 사용한 것은 물론이고, 기도나 맹세를 할 때, 부부가 함께 침실에 들 때도 향료를 사용했다. 주로 향기가 진한 식물을 말려 가루로 낸 다음 옷고름이나 허리춤에 차고 다녔다고 한다. 고려 사람들은 신라의 향기문화를 계승발전시켰다. 그들은 향료를 끓는 물에 담그고 거기서 나오는 향을 옷에 배게 하기 위해 박산로(博山爐)라는 화로를 만들어 사용했다. 조선시대에도 향낭 풍습은 이어졌다. 다만 신분이 높은 사람, 특히 벼슬아치들이 향낭을 차고 다녔다. 특히 임금과 자주 만나는 승지들은 의무적으로 향낭을 찼다고 한다.

여자들의 시집살이는 조선 중기 이후부터 생긴 풍습이다. 그전에는 남자들이 처가살이를 했다. 시집살이가 고된 노동과 고독의 나날이었다면 남자들의 처가살이는 굴욕과 고통의 나날이었다. 고구려에서는 혼인이 결정되면 신부 집 뒤에 작은 사위집(서옥: 壻屋)을 지었다. 혼인하고 나면 신랑과 신부는 서옥에서 첫날밤을 보낸 뒤 신랑은 본가와 처가를 왔다 갔다 하며 살았다. 신부는 자식이 장성할 때까지 친정에서 살다가 시댁으로 갔다. 고려시대에도 자식이 장성할 때까지 신랑이 처가살이를 했다. 이런 풍습은 16세기 말에 들면서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으나 17, 18세기까지 이어졌다.

사극이나 그림에서 상투 튼 모습을 보다 보면 저 사람들은 무더운 여름을 어떻게 견뎠을까 궁금해진다. 우리 예상과 달리 옛 사람들은 지혜로웠다. 상투를 틀 때 열기를 피하기 위해 정수리 주변의 머리카락을 동그랗게 깎아 냈던 것이다. 이것을 '백호친다'라고 했다. 정수리 주변의 머리카락을 깎아낸 다음 주변 머리카락을 모아 올려 상투를 틀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정수리 부근은 비어 있었던 것인데, 만약 머리를 풀어헤치면 정수리 부근이 원형탈모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처럼 '뜻밖의 한국사'는 거대한 역사가 아니라 삶의 현장 이야기를 담고 있다. 풍습, 삶, 음식, 지혜, 정치, 경제 등 여섯 개 주제 60여 가지 이야기를 통해 그 시대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다. 익숙한 거대 담론에서 벗어나 조금 가볍게 우리 역사를 들여다보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04년 처음 펴냈던 '뜻밖의 한국사' 개정판이다.

266쪽, 1만2천500원.

조두진 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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