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머리 염색보다 마음을

근 20년 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다음 날 오전 대구 시내 모 본당의 보좌신부로 부임했습니다. 시차 적응도 안 된 상태에서 비몽사몽 간 주일을 보내고 필요한 물품을 사기 위해 대구 시내로 나갔습니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면서 우리 사회가 참 많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우선 사람들의 외적 모습이 많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눈에 띈 것은 바로 사람들의 머리칼색이었는데, 한국 사람이라면 으레 까만 머리칼이 기본이고, 나이가 들면서 차츰 흰 머리칼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머리칼색은 유럽에서 자주 보던 노랑, 빨강, 갈색 등 너무나 다양하였습니다. 머릿결의 색깔을 보고 외국인이려니 생각하고 옆에서 보니 서양 사람이 아니라 한국인 그것도 젊은이들이었습니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본당 신부님께 시내에서 머릿결 색깔을 보고 외국인인 줄 알고 쳐다보았더니 한국인이어서 당황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연세 지긋한 신부님께서는 "요새 아들 머리에 염색을 해서 안 그렇나. 한국사람 머리는 까매야 되는데 멋 부린다고 온갖 색깔을 들이는데 참으로 가관인기라"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젊은이들이 머리에 물을 들이고 나면 어른들은 탐탁지 않게 여겨서, 머리를 물들이고 나면 부모님들과 불편한 관계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머리에 물들이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방학이 되면 청소년들이 머리를 노랑, 빨강, 갈색으로 물을 들이고 개학할 때쯤이면 까만색으로 다시 물들였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의 질타를 받지 않기 위해서였죠.

최근 청소년들의 우상인 아이돌들의 머리 모양과 색은 너무나 다양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취향에 따라 은색, 금색, 분홍색, 파란색, 때로는 두 가지 색으로 머릿결을 염색하기도 합니다. 머릿결을 염색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개성의 표현이며, 타인과 차별성을 드러내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아이돌들의 열혈 팬인 많은 청소년들이 아이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그대로 모방하기도 합니다. 대학에 갓 입학한 새내기들은 그간 억눌렸던 끼를 분출하는 방법으로 갖가지 색으로 머릿결을 염색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한 학기쯤 지나면 시들해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얼마 전 한 청년이 주변머리를 아주 짧게 깎고 중앙부의 머리를 마치 유럽 병사들이 투구를 쓴 듯한 모습을 해서 미사에 참례하였습니다. 그가 독서를 하기 위해 전례복을 입고 제일 앞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사람들의 표정이 아무래도 석연찮은 것 같아 약간의 설명을 했었습니다. 젊은이들이 자신의 개성을 나타나기 위해 머리 모양을 조금은 특이하게 했는데 젊기에 할 수 있는 모습으로 보아줄 수는 없는지요? 그리고 하느님은 우리의 피부색, 얼굴 모양, 머리 모양 등 외적인 모습을 보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판단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을 먼저 보시는 분이시지 않으신가? 우리도 하느님께 기도하기 위해 성당에 오는 사람들의 외적 모습이 아니라 내적 모습을 먼저 생각해야만 할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눈에 조금은 특이한 머리 모양을 했지만, 하느님께 기도하기 위해 성당에 온 모습이 너무나 기특하지 않습니까? 이런 말을 들은 사람들은 더 이상 그의 머리를 쳐다보며 분심에 흔들리지 않고 함께 마음을 모아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청소년들은 머리 염색을 하거나 특이한 헤어스타일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이들의 이런 모습을 질타하거나 억제만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지고 함께 대화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럴 때 우리 아이들이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명현 대구 비산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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