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오호 애재라, 한국 교육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경북대 고고인류학과'경북대 대학원 영문학 석사.대학강사

독일에서 살다 온 지인이 예전에 들려준 재미난 일화가 생각난다. 독일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지인의 아이가 졸업을 몇 달 앞둔 시점에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이가 다니던 독일의 초등학교는 전통적으로 졸업식 날 한 아이가 대표로 연단에 올라 졸업선언문을 낭독하는 행사가 있었다고 한다. 지인은 그 사실을 알게 된 후로 자신의 아이를 바로 그날의 대표자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을 꾸게 된다. 머나먼 이국의 땅에서 한국인인 자신의 아이가 그 단상에 오를 수만 있다면, 그것은 작게는 아이와 가족의 개인적 영광이지만, 더 크게는 국위 선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때문이었다.

일단 이런 숭고한 목표가 정해지자 이 한국 엄마, 사생결단의 각오로 아이를 조련하기 시작한다. 모국어가 아닌 탓에 발음도 악센트도 별로인 아이였지만,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 코치를 하다 보니 아이의 독일어는 제법 유창해지는 듯 보였다. 그 즈음에 들려온 낭보는 어미로 하여금 아이를 더욱 혹독하게 훈련시킬 명분을 주었다. 아이가 결국 최종 후보 10인 안에 포함되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제 삶의 목적이 아주 단순해진 우리의 엄마, 목표를 향해 오직 전진, 전진밖에는 없었다. 그 과정에서 10명이었던 후보는 아홉으로, 다시 일곱으로, 또 넷으로 줄어들어 갔다. 강적들이 탈락해 나가는 와중에도 우리 대한의 아들은 끝까지 버텨나갔고, 그에 따라 마지막 고비에서 탈락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결국은 선정될 것이라는 부푼 희망이 엄마의 마음속에서 격렬하게 회오리쳐 갔다.

그러나 오호 애재라!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어찌 이런 일이 벌어질 수가 있나? 최종 후보 2인까지 포함되었던 우리의 아들은 결국 마지막 관문에서 탈락하고 말았던 것.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낙담한 우리의 엄마, 그러나 아이 앞에서는 짐짓 "노력한 것으로 됐다. 결과는 중요한 것이 아니야"라고 의연하게 위로한 뒤, 이글거리는 분노를 가슴에 숨기고 졸업식장으로 향한다. 이 버림받은 여인의 머릿속은 이제 딱 하나로 채워져 있었다. '뽑혔다는 애가 참말로 우리 애보다 잘하는 녀석인지 내 한 번 보자.'

드디어 졸업선언문 낭독이 시작되자, 여인은 어디서 주저앉아 땅을 치며 펑펑 울고 싶은 심정이 되어 버린다. 그 선언문을 읽는 아이가 밉상이어서가 절대 아니었다. 백 번, 천 번 양보해서 봐도 그 아이는 분명 자신의 아이보다 모든 면에서 실력이 뒤떨어져 보였던 것이다. 그런 엄마에게 번개처럼 든 생각! '우리 아이가 인종차별을 당했다! 한국인이라 무시를 당한 거야.' 여인은 졸업식이 끝난 뒤 용기를 내어 교장 선생의 방을 찾는다. 나는 차별을 당할 수 있어도 우리의 아이만은 절대 차별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에 불타며.

여인은 최대한 예의 바르게, 그러나 단호하게 자신의 분명한 항의를 전달했다. 우리 아이가 선정되지 못해서 화가 난 것이 아니다, 그러나 확연하게 더 못해 보이는 아이가 선정된 것은 부모로서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앞으로는 한국인에게도 공정한 기회가 제공되었으면 한다 등이 그 항의의 대략이었다. 다 듣고 난 독일의 교장, 자상하게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한국의 초등학교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대표를 선정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본교에서는 전통적으로 가장 못하는 아이를 낭독자로 선정합니다. 부족한 아이에게 자신감을 주기 위해서이지요. 귀하의 아이는 처음에는 독일어를 잘 못해서 낭독자로 유력했으나 최근에 부쩍 늘어서 탈락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여인은 소원을 성취했다. 작게는 개인적 영광과 크게는 위대한 대한민국의 맹위를 머나먼 독일 땅에 힘껏 뽐내는 데 성공하였으니.

박지형/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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