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고지가 바로 저긴데

'세계의 휴양지'로 거듭난 태국, 고가보도 걷는 자체가 구경거리

1954년 대구생. 경북고
1954년 대구생. 경북고'서울대. 뉴욕부총영사. 태국공사.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 우즈베키스탄 대사

우리보다 훨씬 잘살았던 나라, 가난 대물림한 현실은 반면교사

태국을 다녀왔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라면, 태국은 '세계의 휴양지'라 하면 틀림이 없겠다. 물론 첫 출발은 월남전의 '반사적 이익'으로 시작되었지만, 뛰어난 자연조건, 만국 음식, 융성한 문화유산과 더불어 친절-상냥함으로 대변되는 민족성까지 잘 버무려져 세계인들이 사시사철 몰려드는 휴양지로 거듭났다. 도시나 지방이나 외국인들로 넘쳐나고 거리와 골목마다 한 사람 건너 외국인임을 깨닫게 된다. 서양 방문객과 태국 여성으로 합성된 커플이 흔하디흔하게 손잡고 다니는 것을 보게 된다. 이렇게 넘쳐나는 외국인들이지만, 마치 원주민 없는 국제 섬같이 인종이나 민족 간의 갈등은 찾아볼 수가 없다. 어이 이럴 수 있을까!

태국은 관광지답게 세계인을 상대하는 초현대적 유통망을 갖췄을 뿐 아니라, 거리마다 마사지실-마사지라고 하니 바로 퇴폐적인 것으로 인식하겠지만 태국에는 건전한 마사지가 아주 발달해 있다-은 넘쳐나고, 곳곳이 골프장으로 뒤덮여 있다. '전 국토의 골프장화, 전 국민의 마사저(massager)화'라고 표현하면 제격이리라.

즐기면서도 우리와는 많이 다름을 느끼게 된다. 어쩔 수 없는 먹물 근성의 발로인가? 어찌하여 할머니 캐디에다 엄마 캐디, 그리고 딸 캐디까지 대를 이어 캐디를 할 수 있을 것이며, 어찌하여 할머니 마사저에다 엄마 마사저, 그리고 딸 마사저까지 비일비재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웃고 떠들며 마냥 행복하기만 할까?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태국은 관광객들이 몰려와서 마음껏 소비하게끔 도시를 참말 편하게 설계해 놓았음을 본다. 태국은 지상철 아래에 고가보도(skywalk)를 만들어 사람들이 아래 빵빵대며 흘러가는 교통의 혼잡함을 피하게끔 하고, 고가보도에서 바로 백화점이나 쇼핑몰 같은 대형 유통단지나, 관광유적지, 공공기관들과 직접 연결되는 고가다리(skybridge)를 만들어 출입왕래를 아주 편하게 해 주고 있다.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고가보도를 걷는 것 자체가 관광이 되기도 한다. 대구에서 지상철이 운영을 앞두고 있는 즈음이라 방콕의 이러함을 발전적으로 받아들이는 가능성에 대해 한번쯤 고민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국제시장'을 봤다. 어린 시절부터 6'25전쟁이란 혹독한 시련을 겪은 세대, 좁아터진 국토에서 사람들만 바글바글, 지지리도 못살던 시절, 많은 식구들이 숙명처럼 얽혀 살아야 했던 가난들이 수십 년이나 지난 오늘 세대 앞에 명명백백 웅변하고 있다. 우리는 그런 가운데서 못난 현실을 거부하고 잘난 내일을 꿈꾸며 간호사로, 광부로, 군인으로 해외에 나가서 생사의 갈림길에서 몸부림치며 달러를 벌었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뤘다. 한 세대의 지독한 고생으로 후세대들은 남의 나라에서 간호사로 희생당하지 않게 되고, 더 이상 광부로 지하 갱을 헤매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한민족이 가진 끈기와 강인함의 결과이리라.

태국은 한국전쟁 때 우리를 도왔던, 우리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잘살았던 나라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가난을 대물림하는 걸 보며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이유야 여러 가지 생각할 수 있겠다. 우선 '할 수 있다'라는 '캔두(can do) 정신'의 국민교육이 좀 부족하지 않은가 한다. 아니면, 가난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미래를 개척하려는 의욕이나 소신들을 신앙으로 자비롭게 희석시켜 버렸음인가?

자식들이 나와 같이 됨을 별로 안타까워하지 않으니 이를 어쩌랴! 우리라면 대물림의 현실을 거부하며 펄쩍 뛸 일이 아닌가! 우리나라가 태국보다 선진국이고, 우리가 태국인보다 잘났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태국이 반면교사(反面敎師)라는 뜻이다. 우리도 여기 이쯤에서 먹을거리 해결했다고 주저앉을 것인가? 진짜 고지는 이제부터인데 말이다.

전대완/계명대 특입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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