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정우(37)는 영화 '허삼관'의 주인공 출연 제의를 받았다. 일단 중국이 낳은 세계적 작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영화화하는 작품이라 매료됐다.
'허삼관 매혈기'는 가족을 위해 한평생 피를 팔아 살아가는 한 남자의 고단한 삶을 풍자적으로 그린 소설. 하정우는 특히 주인공 허삼관의 말투, 즉 위화 작가의 문체에 홀렸다. 주인공이 입체적이고 영화적으로도 충분히 그려낼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출연배우에 이어 '감독 하정우'의 역할까지 제의를 받았고, '당연히'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영화화 제의가 있었을 텐데도, 스크린에서 만날 수 없었던 작품을 드디어 영화화하는 것에 대한 욕심과 열정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하정우는 평범하고 안정적인 길만 좇진 않았다. 연기와 그림, 연출 등에 도전하며 새로움을 찾고 있었던 그이니, '허삼관 매혈기' 영화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도전이었다. 물론 감독 데뷔작 '롤러코스터'에 이어, '허삼관'에서는 연출과 연기까지 함께 선보여야 하니 또 다른 도전이었다. 인간은 도전하면서 삶의 희열을 느낀다고 하는데, 하정우 역시 마찬가지인 듯하다.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하는 것 같아요. 영화 '추격자'를 선택했을 때도 모두가 만류했어요. '히트'라는 드라마를 찍고 난 뒤였는데 주위에서 '왜 살인마 역할을 하려고 하느냐?'고 하더라고요. 전 제가 재미있고 좋아하는 것을 택해요. 항상 '안전빵'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없죠. 한 단계씩 올라가야 하는데 그 올라가는 명분이 새로움과 관련된 것 같아요. 성장의 욕구, 생존의 본능과 직결되는 거죠."(웃음)
욕심과 열정 가득한 그는 철저히 준비해야 했다. '롤러코스터'로 한 번 쓴맛을 본 그이니 연출작이자 출연작인 '허삼관'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영화 촬영에 들어가기 전, 사전 준비 작업에 몰두했다. "하루를 3일처럼 쓰자"는 다짐이었다. 크랭크인 전, 6개월간 사전 준비 작업을 끝냈다. 촬영대본 수정 등을 거쳐 영화 전체 분량의 40%를 테스트 촬영했다. 또 사전 준비 작업을 해놨기 때문에 연출과 연기를 분리해서 나름 수월하게 해낼 수 있었다.
하정우는 "연기와 연출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연출과 연기 두 가지를 잘해낸 건 "엉덩이의 힘"을 믿고, 따랐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계속해서 묻고 따졌다"는 의미다. 그는 "머리에서 쥐가 난다는 게 무엇인지 이번에 처음 느껴봤다"며 웃었다. "영화를 만들다가 갑자기 아무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누가 뭘 물어보면 대답할 게 생각 안 나기도 했죠. '이게 무슨 증상인가요?'라고 친한 감독님들에게 물어봤는데, 특히 김용화'최동훈 감독님이 '아무리 영화를 많이 찍어도 그런 순간이 3번 정도 오는데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여유를 갖고 그걸 넘기면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허삼관'에서 부부로 호흡을 맞춘 하지원과의 연기 호흡도 돋보인다. 하정우에게 하지원은 캐스팅 1순위였다. 사실 하지원은 처음에는 거절하려고 했다. 거절하려고 만난 걸 눈치 챈 하정우는 설득했다. 물론 억지로 꾸미지 않았고, 솔직하게 내보였다. 대답은 "오케이(OK)"였다. 몇몇 인터뷰를 통해 "드라마 '기황후'로 10개월간 주 5일 거의 밤을 새워 녹초가 되고, 걷는 건지 뛰는 건지 모를 정도로 비몽사몽했는데 '허삼관'을 통해 힐링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 하지원이니, 처음과는 다르게 무척 만족했다는 걸 알 수 있다.
현장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다"는 전언이다. "'이런 현장이 또 있을까'라는 분위기였다"는 게 하지원을 비롯한 출연한 배우들의 말이다. 하정우가 배우 생활을 하면서 다른 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지키고 적용하려고 노력했다. "사소한 것들을 지키고 챙기려고 했을 뿐이에요. 시간 맞춰 밥 먹고, 촬영 약속시간 잘 지키는 등 기본적인 것들인 걸요. 뭐."
하지원은 드라마에서는 승승장구하지만, 최근 영화에서는 계속 좋은 성적을 받지 못했다. 함께 작업하기 우려스럽기도 했을 것 같다고 하니, 하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영화가 수치라는 성적으로만 얘기할 수는 없는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원 씨는 대중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생각했어요. 지원 씨가 가진 에너지와 모습이 필요했거든요. 지원 씨가 무게중심을 잡아주고 버팀목이 되어주는 역할,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었죠."
첫 연출작의 흥행 부진에 대해 아쉬움이 있었을 테니, '롤러코스터' 배우들과 다시 호흡을 맞추는 걸 원하진 않았을까. 하정우는 "한 명이라도 더 함께하려고 노력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의 한계점에 대해서도 넌지시 언급했다. '롤러코스터'는 거의 혼자 모든 걸 책임지는 작업이었고, '허삼관'은 여러 관계가 있는 이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데, 관계자들과 많은 논의가 필요했다는 다른 말이다. 그는 "그래도 스태프들은 조명과 미술 부분을 빼고는 거의 다 함께했다"고 위안을 삼았다.
"'롤러코스터'가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작품이 있기에 '허삼관'이 존재한다. 모든 게 과정과 단계"라고 강조하는 하정우. 그는 이번 '허삼관'의 성공 기준을 뭐라고 생각할까.
"당연히 상업영화니까 관객 동원이라는 수치적인 성공도 중요해요. 하지만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공은 또 다르거든요. '허삼관'이란 영화를 바탕으로 제가 더 열정적으로 살아가게 된다면 이 영화가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물론 모든 것이 지나고 나서 저에게 남겨진 것들을 보면 성공인지 실패인지 그때야 알 수 있겠죠."
이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면 영화 연출하는 것에 대한 생각도 바뀔 것이냐고 물으니, 하정우는 "3년 동안은 (다른 작품 출연으로) 물리적 시간이 안 된다"며 "이후에 생각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허삼관'을 흥행영화로 분류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꽤 많은 관객들(2일 기준 누적관객 94만여 명)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관객 50만 명도 동원하지 못하는 영화가 수두룩한 한국영화계에서, 하정우는 이번에는 선방했다. '롤러코스터'의 누적관객은 27만여 명이었으니까. 다음 연출작이 또 기다려진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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