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의 짝궁뎅이
지난 토요일 직장에서 오전 근무를 끝내고 모처럼 친정으로 나들이를 갔다.
왜관으로 해서 가산을 지나 군위. 내가 태어나서 줄곧 자랐고, 보고 싶으면 언제든 나를 반겨주는 엄마 아빠가 계신 곳, 그곳에 도착했다.
늘 대문 앞에만 서면 큰소리로 "엄마"라고 부르는 나. 그날도 어김없이 "엄마"라고 부르면서 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방문이 열리면서 밖으로 급하게 나오시는 엄마.
"그래 우리 공주, 큰딸 이제 오나"라면서 주름진 얼굴에 미소 가득한 모습으로 나를 반긴다.
"점심 아직 안 먹었제" 하시며 부엌으로 들어가시는 엄마. "으응 성주에서 먹고 왔다"고 대답하면서 부엌으로 따라 들어갔다.
"토요일 뭐 배운다더니 그건 우짜고 왔노?"
"수업 다 마치고 왔지. 수업 마치고 점심 먹고 바로 출발했다 아이가."
나는 부엌에 앉으며 대답을 했다. 내일 성주 갈 때 보낼 밑반찬을 미리 준비하고 계신 모양이었다.
그렇게 화창한 봄날 토요일 오후를 엄마와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일요일, 아침부터 엄마는 꽃단장하기에 바빴다.
마을 사람 중 한 사람의 딸 결혼식이 있어서 거기에 가신다고 했다.
옷을 입고는 내 앞에서 물으신다.
"어떠노? 괴안나? 안 보기 싫나?"
"어, 위에 옷이 좀 이상한데 다른 거 없나?"
"그렇제. 가만히 있어보자. 다른 게 있나? 내 다른 거 입고 와보께."
이렇게 엄마가 오늘 결혼하는 신부처럼 이리 보고 저리 본다. 시골에선 이렇게 큰 잔치 아니면 예쁘게 차려입고 외출할 일이 많지 않다. 그래서 엄마의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안다.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오신 엄마 "아까 그 옷보다 이게 낫제?" 하신다.
"으응. 근데 엄마 궁뎅이가 짝궁뎅이다."
"그렇제. 그래도 우야노? 내 이것만 아니면 좋겠는데 이래서 바지를 못 입는다. 아레 장날 치마 하나 살려고 보니 이쁜 게 없더라. 마이 보기 싫으나?"
"괴안타. 엄마가 결혼하나. 그냥 가서 축하해주고 맛난 거나 마이 묵고 온나."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몇 번 비춰보더니 나가시면서 "볼일만 보고 퍼뜩 올게. 놀고 있어레이" 하신다.
비록 짝궁뎅이라고 말했지만 엄마의 뒷모습은 그 누구보다도 예뻤다.
그도 그럴 것이 몇 해 전 엄마는 자궁암 판정을 받았다. 내가 둘째를 낳고 산부인과에 입원해 있을 때였다.
엄마가 오셨길래 산부인과 진료를 받아보라고 권했다. 엄마는 "다음에 받지 머"라고 하셨고, 나는 "병원에 왔을 때 받지 다음에 언제 받을래? 일 철 나면 또 언제 병원 올지, 그냥 함 받아라"라고 해도 엄마는 극구 사양하셨다.
나는 엄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접수를 했다. 마침 산모가 입원해 있으면 가족은 20% 할인해준다고 했다.
엄마는 그 20% 할인해준다는 말에 "그라면 받지 머" 하고 머쓱해하시면서 진료를 받았고 자궁암 판정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첫째 낳을 때도 안 그랬는데 둘째 낳고 진료받기를 권했던 걸 보면 무슨 예감이란 게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빨리 치료해야 함에도 엄마는 나에게 친정엄마로서 산후조리를 다 해주셨다. 엄마로서는 이미 판정난 병,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산후조리 못 하면 평생 온몸이 아프다시면서 오히려 내 몸을 걱정하셨고 오로지 몸조리에만 신경 쓰셨다. 나는 눈물이 흘렀다. 내가 당신이라면 내 몸부터 걱정할 터, 아무것도 눈에 안 들어올 텐데…. 엄마는 딸이 더 중요했던 모양이다. 가끔 집 한쪽에서 눈물을 훔치시는 모습을 몰래 보긴 했지만 어떻게든 내 앞에선 태연하시려고 안간힘을 쓰셨다. "하필 내가 왜 이런 병에…" 하시며 한숨은 쉬셨지만, 곧 마음을 추슬렀고 평소처럼 씩씩하셨다. 아무 병도 아닌 것처럼….
당시 엄마는 지금 산후조리가 아마 당신이 살고 있는 동안에는 마지막일지도, 앞으로 더는 딸을 위해서 못할 것을 걱정하셔서 더욱 신경 써서 해주셨던 같다. 딸에게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내가 어느 정도 몸조리를 끝내고 엄마는 다시 큰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고, 자궁경부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기로 했다. 다행히 다른 곳으로는 전이가 안 되어서 자궁적출술만 하고 방사선 치료받고 약만 먹으면 괜찮다고 했다. 물론 지금도 약은 드시고 계신다.
물론 당신한테는 이제부터가 시작이겠지만 그나마 다행이었다.
수술은 다행히 잘 끝났지만 한쪽 다리가 심하게 붓는 후유증이 남아 있었다. 발목부터 엉덩이까지 붓기 시작하면서 엄마의 엉덩이는 어느새 짝궁뎅이가 돼버렸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짝궁뎅이라고 했지만 엄마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싶다.
엄마가 나가고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건 냉장고와 부엌, 방 청소라는 생각에 냉장고 문을 열었다.
예전 같으면 정말 깨끗하게 해놓고 사실 엄마지만 몸이 불편한데다 마음 또한 늙으신 모양이다.
냉장고 청소를 다 끝내니 마음이 뿌듯했다. 엄마를 위해 뭔가를 했다는 성취감과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기분 좋아질 엄마를 생각해서 여기저기 쓸고 닦고 대충 마무리할 즈음 엄마가 오셨다.
"밥은 먹었나? 미안하데이. 딸내미 왔는데 결혼식 가고 없어서."
"그게 뭐 미안하노? 내가 세 살짜리 어린애가! 그냥 엄마 쪼매 도울려고 청소하고 있었다."
"그런 거 머하러 하노? 그냥 쉬기나 하지. 나도 옛날엔 맨날 쓸고 닦고 했는데 그런 거 지나고 보니 다 부질없더라. 내 몸이 건강해야지. 아프고 나니 그런 거 다 소용없드라. 귀찮고, 나는 대충 살란다. 그라고 몸도 안 따라주고."
"그냥 심심해서 했다 아이가. 또 이제 일 철 나서 바빠지기 시작하면 엄마가 할 시간도 없을 것 같고 해서."
"니도 너그 집 가면 맨날 청소하고 밥하고 일 다니느라 힘들고 바쁠 텐데 여기 와서만이라도 쉬고 가거라."
이렇게 엄마와 커피 한잔 마주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 날 따뜻해지니깐 겁이 난다. 밭일 또 우예 하노 싶다. 휴~~."
"이제 바쁘겠네. 가을까지 계속 일 아이가."
"으응, 양파도 심어야 되고, 심는 것도 심는 거지만 또 어떻게 캐노? 일할 사람, 품앗이할 사람도 없는데. 그렇다고 너그 아빠가 일을 잘하나 그것도 아이고, 다 내 몫인데. 보다시피 촌에 다 늙은이들뿐이라 부탁할 사람도 없다. 가을 되면 사과가 걱정이고, 할 일은 천진데…" 하시면서 긴 한숨을 내쉰다.
자식들이 다 잘 되어서 용돈이라도 푹푹 주고, 이제 그만 그동안 가꿨던 밭과 논에서 손 떼게 해드리고 싶지만 마음뿐이다. 5월 초부터 양파를 심어야 하는데 손이 모자란다고 한숨 쉬는 엄마의 걱정 어린 얼굴이 눈에 아른거린다.
이제 그만 쉬셔도 될 법한데 자식들 밑천 대느라 밤낮으로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한꺼번에 늙어버리신 엄마. 내 마음도 무겁기만 하다. 내가 가서 도와주는 건 고작 일요일 하루뿐이다.
조금만 움직여도 퉁퉁 붓는 다리는 씩씩하고 부지런하던 엄마의 마음마저 무너뜨린다. 엄마의 긴 한숨을 뒤로한 채 느지막한 오후에 나는 다시 성주로 발길을 옮길 준비를 한다.
엄마는 꺼꾸정한 자세로 이것저것 담기 바쁘다. 하나라도 더 챙겨 보낼 욕심에서다.
"이것 가져 갈라거든 다 가져가서 먹어라."
"엄마 아빠는 뭐 먹고? 그냥 조금만 도."
"우리야 뭐 해먹고 싶으면 다시 해먹으면 되고, 없으면 먹지 말지 머, 안 먹어도 되고."
이렇게 몇 가지의 반찬을 챙겨서 차에 올랐다.
"잊아뿐 거 없이 다 챙겼나?"
"으응, 없다. 엄마 간데이, 또 올께."
"으응 자주 온네이. 오늘은 딸 덕에 재미있었다. 덜 지겹고. 고맙데이."
나는 엄마의 목소리를 뒤로한 채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끝까지 손을 흔드는 엄마의 모습이 백미러로 보였다. 늘 나에겐 바다보다 넓고 깊은 엄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엄마의 모습이 작게만 느껴진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왠지 무겁고 가슴 한구석이 저며온다. 참으로 길게 느껴진 하루. 이렇게 나의 친정 나들이는 끝이 났고 집에 와서 엄마를 되뇌어 본다.
결혼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정작 친정엄마는 잊고 살았던 것만 같아 죄송스럽기 짝이 없다. 지금도 양파 걱정에 밤잠 못 주무시고 뒤척이실 엄마를 생각하니 나도 따라 잠을 설친다. 언제쯤 엄마는 그런 걱정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두 다리 뻗고 잠을 청하실까?
엄마, 짝궁뎅이라고 놀려서 미안해. 엄마에게 짝궁뎅이는 어떤 의미인지 알면서도.
엄마의 궁뎅이가 나에겐 그 무엇보다도 예쁘고 멋지다는 걸 엄마는 알까? 오늘만큼이라도 편안하게 잠자리에 드셨으면 좋겠다.
늘 나에게 큰 그늘이 되어준 엄마, 이젠 딸이 엄마가 쉴 수 있는 그늘이 되어줄게. 비록 엄마만큼 큰 그늘은 아니지만, 그 그늘 밑에서 가끔 투정도 부리고 울고 싶으면 눈물도 흘리시고, 속상한 일 있으면 다 속삭여도 돼. 내가 이젠 다 받아줄게. 이젠 내 차례인 것 같다.
감히 오늘은 용기 내어 사랑이란 말을 건네고 싶네요. 엄마가 제게 보여준 사랑보단 모자라겠지만…. 엄마가 내게 해준 사랑의 반이라도 내가 해드릴 수 있을까. 은근히 걱정부터 앞선다.
이미향(대구 달서구 이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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