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원자력 발전소, 갈림길에 서다] ⑥원전 폐로 시장, 해외서는 각광 vs 국내는 아직 낯설

기술 없고, 현금 충당 '6천33억원' 불과…한국 원전 폐로 "자력으론 불가능"

폐로 과정에서 나온 저준위 폐기물이 통 속에 담겨 있다.
폐로 과정에서 나온 저준위 폐기물이 통 속에 담겨 있다.

국내 원전 정책 가운데 가장 큰 골칫거리는 폐로(廢爐)다. 만들고 운영하는데만 집중한 탓에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설계수명 종료는 곧 계속운전'만을 고집한다.

폐로기술 확보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 보니 결국 언젠가는 다가올 원전 폐로 시장을 미국이나 일본 등 원전 선진국에 몽땅 내어줄 판이다. 국내 원전 23기 중 12기가 2030년 설계수명을 다한다. 세계적으로는 450기 중 120기가 같은 시기에 멈춘다.

원전 선진국들이 바라보는 폐로 산업은 이른바 '뜨는 태양'이다. 미국의 폐로 업체인 에너지솔루션 측은 "한국의 폐로 시장은 블루오션이다. 기술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보니 폐로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해외기업들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폐로, 어디까지 왔나

경주 월성원자력발전소(이하 월성) 1호기가 이달 12일 재가동 여부 결정에서, 첫 폐로가 될지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계속운전으로 결정된다면 폐로까지 잠시 시간을 벌게 될 것이고, 반대라면 국내 원전정책은 당장 엄청난 혼란을 겪게 된다.

폐로 비용은 매우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정부와 한수원은 1기당 폐로 비용을 2003년 말 3천251억원으로 잡았다가 10년 만에 6천33억원으로 크게 늘렸다.

이 금액 역시 세계의 평균 폐로 비용인 6천546억원에 크게 못 미치며, 일본(9천590억원)'미국(7천800억원) 추산금액보다도 낮다. 원전 해체비용에 대해 그나마 가늠은 하고 있지만, 실제 보유한 사후처리복구(폐로) 비용은 현금으로 1기 비용에 해당하는 6천33억원이 전부다. 한수원이 경영 효율성을 제고를 이유로 대부분 장부상 충당부채로 폐로비용을 남겨놨기 때문이다. 한수원은 평균 5천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내고 있지만, 사내유보금 대부분을 신규 원전건설 또는 계속운전을 위한 설비개선 등에만 사용하고 있다. 월성1호기를 폐로하려고 해도, 돈이 없다는 말이다.

원전 폐로가 시작되더라도 사고가 나면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뛴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100만㎾급) 1기 폐로비용을 3천680억원으로 추정했으나, 폭발사고 이후 폐로뿐 아니라 복구에 드는 전체 비용은 265조원으로 엄청나게 늘었다.

한국도 지난 1997년부터 3년간 운영한 실험용 트리가원자로 2호기를 폐로한 경험이 있다. 이 원전 용량은 상업용 발전소의 500분의 1인 2㎿에 불과하지만 폐로 기간 5년, 폐로 비용 192억원이 들었다. 이를 월성1호기에 단순 적용한다면 폐로 비용만 9조6천억원에 달한다.

폐로 경험은 있지만 기술력은 원전해체 핵심기반 기술 38개 가운데 절반 정도만 갖추고 있다. 설비용량 100만㎾급 상용 원전 폐로는 현재 기술로는 어려울 전망이다. 게다가 핵폐기물(고준위)을 처리할 공간도 마련되지 않아 폐로는 더욱 험난한 가시밭길이 될 전망이다.

미국에서도 폐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핵폐기물을 놔둔 채 보조시설만 해체하는 것은 발전만 안 할 뿐 원자력 시설은 계속 있다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민간환경감시센터 한 관계자는 "정부가 노후원전에 대한 폐로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라며 "자금과 기술력 확보가 최소 10년 이상은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가 폐로 산업에 대해 하루속히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 원전강국들, 폐로 시장을 잡아라

세계적으로 2030년이 되면 수명만료가 되는 원전이 매년 17기 이상 나올 전망이다. 해외 폐로 전문회사들은 1기당 7천억~1조원을 넘나드는 폐로 시장을 잡기 위해 벌써부터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1970년대 지은 상업용 원전의 첫 폐로조차 시작하지 않은 한국과 달리 선진국들은 폐로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가장 많은 100기의 상업용 원전을 운영 중인 미국에서는 에너지솔루션, PCI에너지서비스 등 원전 폐로'해체를 전문적으로 하는 민간기업들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에너지솔루션은 후쿠시마 폭발사고 당시 현장에 직원들을 내보내 일본 폐로 시장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구축했다. 특히 바다에서 오염물질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시스템을 적용, 40여 종이 넘는 방사능 물질을 제거했다. 이 기술은 18개월에 걸쳐 후쿠시마에 전수됐고, 이후 후쿠시마가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원전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은 폐로 논의와 산업 모두를 뒤로 미룬 채 노후원전의 수명연장에만 골몰하고 있다. 당장 폐로산업과 기술 경쟁에 뛰어들지 않으면 한국은 황금산업을 멀리서 구경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내 폐로는 어떻게 진행하나

국내 원자력안전법은 폐로와 관련, 한수원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해체계획을 수립'시행하고, 방사성폐기물은 방사성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처리하도록 규정돼 있다.

폐로 인허가와 감독은 원자력안전위원회가, 폐로는 한수원이, 방폐물 처리와 원전시설 해체는 원자력안전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가 모두 관여하는 복잡한 형태다.

핵폐기물은 주민 동의가 매우 중요하다. 한국의 총 폐연료봉은 약 1천700만 개로 원전마다 보관 중인데, 저장용량이 오는 2016년 한계에 달한다.

해체의 기본 원칙들은 원자로, 부속 설비 및 건물을 해체 철거해 본래의 대지 상태로 복원하며 원자로 영역은 안전저장(약 10년) 후 해체 철거, 원자로 영역 이외의 부속 설비 등은 안전저장 기간 개시 시점부터 순차적으로 철거한다.

원전 해체방법 중 즉시 해체는 시설의 운전정지 후 단기간 내에 장비'건물'부지의 오염준위를 개방 가능한 수준으로 제염'해체한다. 지연해체는 일정기간 시설을 안전하게 관리한 뒤 오염준위를 개방 가능한 수준으로 제염'해체한다. 차폐격리는 방사성물질을 포함하고 있는 시설 내에 구조적으로 안전한 물질을 넣어 장기간 안전하게 격리(콘크리트)한다. 글'사진 포항 박승혁 기자 ps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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