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가 왕노릇하는 한반도 먹이사슬, 멸종위기 늑대 복원은 생태계 균형 회복
드디어 로보는 덫에 걸렸다. 두 눈은 인간에 대한 증오감에 파랗게 불타올랐다. 시간이 흐르자 체념의 빛이 떠올랐다. 일체의 음식을 거부하고 털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이 호령하던 커럼포 평원을 쳐다보고 있었다. 죽음을 기다리는 것 같았고 결국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암컷 블랑카를 그리워하는 로보의 몸부림과 사랑, 그리고 장엄한 죽음은 사람들의 마음을 찡하게 했다. 그는 커럼포 평원의 진정한 제왕이었다.
송죽극장이었을까? 아니면 자유극장이었을까? 기억이 희미하다. 초등학교 저학년쯤이었을 것이다. 베어비 부머인 나는 그때 누구나 그렇듯 산골에서 도시로 이사와 학교를 다녔다. 학교는 도심에 있었고 그날은 문화교실이 있는 날이었다. 문화교실, 요즈음 세대가 전혀 알 수 없는 말이다. 1970년대 초'중'고생들에게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단체로 극장 가는 기회가 있었고, 로 불렸다. 두 줄 종대로 나란히 학교에서 출발해 극장까지 대개 한 시간 정도 걸었다. 그날 본 영화는 , 당연히 흑백영화. 어니스트 시턴의 소설이 원작이다. 나는 그날 이후 내 맘속에 한 마리 늑대를 키우게 된다.
무대는 미국 뉴멕시코 북부, 커럼포강이 흐르는 평원이다. 지혜로운 늑대왕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 인간의 능력을 비웃던 로보도 암컷의 죽음 앞에 평상심을 잃고 스스로 덫에 걸려 죽는다는 단순한 플롯이다. 하지만 관찰을 통한 생생한 묘사로 전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시턴은 동물소설의 개척자다. 1897년 발표한 『야생동물』(Wild Animals I have known)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이야기가 바로 였다. 곧이어 할리우드 영화로 제작되었다. 그가 그려낸 동물들은 본능에 따라 단순히 행동하는 것이 아닌, 거친 야생의 세계에서 지혜롭게 삶을 영위하는 자연의 피조물들이다. 그는 인간들의 횡포로 목숨을 잃어가는 야생동물 보호를 위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야생동물은 그 자체로 소중한 유산이며 인간이 파괴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로보의 이야기는 당시 지구촌에 큰 울림을 주면서 동물보호운동이 시작된 계기가 된다.
뜬금없이 늑대 얘기를 끄집어낸 것은 멧돼지 때문이다. 늑대, 범 등 포식자가 없는 탓에 멧돼지들이 한반도의 왕처럼 군림하고 있다. 한반도의 자연은 기형적이다. 균형을 잃은 먹이사슬은 위험하다. 늑대의 복원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인명 피해를 이유로 힘을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멸종위기 생명체에 대한 복원은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위한 것이다. 미국 옐로 스톤의 늑대 복원 사업에서 보듯이 복원은 생태계 전체의 건강성과 자연성을 회복시킨다. 그러나 이 같은 복원에 가장 필요한 것은 당국의 정책에 앞선 국민적인 공감대 형성이다. 늑대가 살 수 없는 한반도는 궁극적으로 인간도 살기 어렵게 된다.
호주 양떼목장에 독수리가 날아들어 수십 마리의 양떼를 물고 달아났다. 화가 난 목장주가 엽사를 동원해 독수리 사냥에 나섰다. 그러자 이듬해 양떼목장에 전염병이 돌아 양들이 전멸하게 된다. 독수리는 매양 병든 양을 채어 갔던 것이다. 인간이 이렇게 어리석다. 이 같은 자연의 오묘한 원리를 가이어 이론(Gaia theory)이라고 한다. 가이어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이다. 1978년 영국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이 주장했다. 지구에 살고 있는 생물, 바다, 공기, 흙을 하나의 범지구적인 유기체로 보는 것이다. 즉, 서로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생명체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가이어 이론은 생물 복원의 논거가 된다. 지구는 사람만이 사는 별이 아니다. 자연은 사람이 없어도 존재할 수 있지만 사람은 자연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오늘 문득 늑대가 보고 싶다. 그리고 로보의 죽음에 울적해하던 그 시절의 내가 몹시도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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