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포털 사이트에 '인문학'이라고 단어를 입력하자 참 많은 연관어들이 나온다. 각종 인문학 도서에서부터 인문학 카페, 그리고 인문학을 처음 시작하려는 이들의 질문들과 그들에 대한 추천 목록, 제안의 글들까지. 사진인문학, 이미지인문학, 광고인문학, 디자인인문학…. 인문학적 시각으로 재해석된 인접 학문들과 세부 영역들도 참 다양하다. 가히 인문학의 시대라 불릴 만큼 인문학에 관한 담론이 넘쳐나는 요즘이다.
하지만 이렇게 인문학에 대한 열망과 욕구가 많다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배워오고 살아왔던 과정들이 인문학에서 소외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테다. 입시와 취업 중심의 교육, 그리고 실무 위주의 삶의 매뉴얼과 비인간성에 많은 이들이 염증을 느끼게 된 것일 테다. 그리고 또 앞으로 살아갈 날들, 다가올 시대가 인문학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동력을 찾으려는 것에도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근대적 성장이 한계에 다다르자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 창조적인 개인의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시대로 전환되고 있는 시점이 아마도 지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인문학이 다소 실용적으로 변질되려는 우려 또한 갖게 된다.
인문학의 한 분야인 문학 역시 마찬가지이다. 문학이라는 담론은 넘쳐나지만 그 속에서 문학으로 미래를 살 수 있다는 문학적 전망의 부재에 시달리며, 진정한 문학을 열망하는 이들이 정신적 빈곤에 처해진 시대. 문학에 대한 애틋한 감성만으로 철학을 비롯한 인접 인문학에 목말라 하던 때와 달리 지금은 문학에 대한 기술적 능력을 배양하는 문학 기술자들은 많아졌을지언정, 이에 비해 삶과 시대의 가치에 맞닿아 있는 문학이 지닌 진정한 본질을 찾으려 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가 않은 때인 것 같다.
브레히트는 파시즘의 폭력이 난무한 자신의 시대를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라고 이야기했다. '처녀들의 젖가슴은 예나 이제나 따스한데, 왜 나는 자꾸 40대의 소작인 처가 허리를 꼬부리고 걸어가는 것만 이야기하는가?'라고 한탄했던 그. 브레히트를 통해 다시금 읽게 되는 소중한 경험은 현실적인 폭력 앞에서도 그가 그토록 열망하였던 것이 바로 서정시였다는 역설이다.
서정시를 쓰고 싶은데 서정시 쓰기가 힘든 그 시대와 달리 지금 우리는 서정시가 넘쳐나지만 서정시가 제대로 읽히지 않는 생소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바로 삶과 인간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실용주의의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다.
삶의 많은 도구들을 내려놓고 그저 목적 없이 읽을 수 있는 따뜻한 서정시 한 편이 그리운 날이다. 서정시를 읽는 동안 만끽하는 사유의 시간, 이것이 어쩌면 개인적 자유를 위한 진정한 인문학적 향연의 시작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성호 문화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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